푸에르토리코

푸에르토리코

다른 표기 언어 Puerto Rico 동의어 푸에르토리코 자유 연합주, Commonwealth of Puerto Rico, Estado Libre Aso-ciado de Puerto Rico
요약 테이블
위치 서인도제도 대앤틸리스제도
인구 2,860,853명 (2020년 추계)
수도 산후안
면적 8,868㎢
공식명칭 푸에르토리코 연방, Commonwealth of Puerto Rico
기후 열대성 기후
민족 구성 백인(81%), 흑인(8%), 혼혈인
언어 에스파냐어, 영어
정부/의회형태 자치연방제 / 양원제
종교 가톨릭(85%), 개신교
화폐 US달러 ($)
대륙 남아메리카

요약 서인도제도에 있는 미국 자치령.
공식 이름은 Estado Libre Aso-ciado de Puerto Rico/Commonwealth of Puerto Rico.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
  6. 역사

북카리브 해 서인도제도의 섬들 중앙에 있다. 수도는 산후안이다.

대체로 직4각형 모양으로 동서로 약 179km, 남북으로 약 64km 뻗어 있으며, 동쪽 해안 앞바다의 비에케스 섬과 쿨레브라 섬도 포함한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지도
푸에르토리코

자연환경

푸에르토리코는 평지가 적고 산지가 많은 섬이다. 지형적으로 내륙산지, 북부고원, 해안평야 등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센트랄 산맥으로 알려진 중앙 산계가 푼타 산(1,338m)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산맥은 남동쪽으로 가파르게 경사져 있으며, 경사가 완만한 북쪽 사면은 강줄기에 의해 침식되고 있다.

북부 고원에는 작은 구릉들이 가로놓여 있으며, 내륙 쪽은 낮은 산과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평야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곳에 따라 끊어진 형태이다. 특히 산줄기가 바다 쪽으로 뻗어내려가는 섬의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해안평야가 심하게 단절되어 있다. 푸에르토리코에는 강과 시내가 많이 흐른다. 강우의 대부분이 북쪽에 면해 있는 산사면에 내리기 때문에 북부를 흐르는 강은 규모가 크고 수적으로도 우세한 반면, 남부의 해안을 흐르는 강은 연중 대부분 말라 있다. 낮은 해안평야 곳곳에는 습지·황무지·호수등이 있다. 기후는 카리브 해와 그 난류의 영향을 크게 받아 쾌적한 편이다. 동부와 북동부에서는 불어오는 습기찬 바람 때문에 겨울 동안 우기가 잦다. 평균 연강우량은 남부해안의 폰세에서 914㎜, 북부해안의 산후안에서 1,500㎜까지의 분포를 나타낸다. 저지대에서 평균기온은 27℃이며, 19℃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좀처럼 많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최고 1일평균기온은 32℃, 최저 1일평균기온은 16℃이다. 6∼11월에 허리케인이 강타하기도 하며, 지진도 가끔 발생한다. 엘윤케 산의 열대우림에 난초와 거대한 고사리가 자란다. 이 산 대부분은 섬에 한때 풍부했던 열대 활엽수를 보존하는 보호구역인 카리브 국립삼림(116㎢) 영역 내에 있다. 야자나무와 홍수림이 해안을 따라 울창하게 자라며 대나무가 도로와 시내를 따라 커다란 덤불을 이루고 있다. 야생동물로 독이 없는 뱀, 도마뱀, 몽구스, 많은 종류의 새 등이 서식한다. 해안이 아름답고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지만 푸에르토리코는 자원이 빈약한 편이다. 국토의 1/7이 경작할 수 있는 토지이며, 국토의 2/5가량이 소와 양의 방목에 이용된다. 1970년대초에 구리 광상과 니켈 광상이 발견되었으나 아직 미개발 상태에 있다.

국민

푸에르토리코의 국민은 다양한 소수민족, 주로 스페인인과 아프리카인의 혈통이 섞인 동질적인 혼혈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페인어와 영어가 모두 공용어이지만 스페인어가 많이 사용된다. 국민 대부분이 로마 가톨릭교도이다. 가족계획 프로그램과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해, 2000년대 이후로는 전체 인구가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미국 본토로의 이민으로 인구성장률이 둔화되었으며, 섬의 과밀현상도 다소 완화되었다. 위생상태의 개선으로 사망률이 어느 정도 감소했다. 국민은 대부분 해안저지대에서 생활한다. 푸에르토리코는 고도로 도시화된 곳으로서 산후안 수도권에만 15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2018년 추계인구는 319만 명이며, 전체 인구의 18%는 15세 이하의 유소년 인구이다.

경제

푸에르토리코는 자유시장경제체제의 개발도상국가이다. 국민총생산(GNP)이 인구증가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1인당 GNP가 카리브 해에 있는 나라들 가운데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제조업·무역·금융업 등이 GNP를 구성하는 주요부문이며, 가장 많은 노동력이 종사하고 있다. 한때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농업은 이제 GNP에서 미미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40년대까지 설탕 플랜테이션이 국내 경제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그후 비중이 큰 사탕수수 외에도 커피, 담배, 녹말함유 채소, 파인애플, 감귤류 등 농산물이 다양하게 생산되었다. 주요가축은 소·돼지·가금류 등이다. 공업이 푸에르토리코의 주요수입원이며, 주력 업종은 석유화학제품·가공식품·의류·직물·전자전기장비·기계류·금속제품 분야이다. 수출품의 7/8이 푸에르토리코 최대의 교역국인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며, 나머지는 카리브 해 국가들로 수출된다.

대표적인 수출품은 석유제품·식품·화학제품 등이고, 주로 미국에서 식품·기계류·수송장비 등을 수입한다. 관광업도 중요한 수입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수입한 석유로 내수용 전력의 9/10를 생산하고, 나머지는 수력발전으로 충당한다. 도로는 대부분 포장되어 있으며, 현지 및 국제항공편이 섬의 여러 곳으로 연결되어 있다. 국제교역은 대부분 선박수송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요항구는 산후안·폰세·마야궤스 등이다. 산후안은 카리브 해에서 가장 훌륭한 항구로 꼽힌다. 주요세입원은 수입관세·국내소비세와 미국의 보조금 등이며, 주요 지출부문은 위생·교육·복지 등이다.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정치와 사회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자유연합 관계에 있는 연방이다. 따라서 주민은 미국 시민으로 규정된다. 행정권은 1952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4년마다 직선제로 선출되는 총독에게 있다. 양원제의 입법부는 27명의 상원의원과 51명의 하원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임기는 둘 다 4년이다. 4년마다 직선제로 뽑히는 주재 장관이 미국 의회에서 푸에르토리코를 대표하지만 표결권은 없다. 사법부는 상급법원과 지방법원의 단일체제를 관할하는 대법원을 정점으로 한다. 총독은 푸에르토리코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얻어 각급 재판관을 임명한다.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 하나의 연방으로서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국민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미국 연방사회복지 프로그램 대부분의 혜택을 받는다. 보건수준은 일반적으로 미국 본토와 필적할 만하다. 이러한 근거는 지역평균보다 낮은 유아사망률과 남자 71세, 여자 79세인 선진국 수준의 평균수명 등에 잘 나타나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문맹률이 10%라는 점에서도 명백히 볼 수 있듯이 교육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입학률이 초등·중등 교육 단계에서 높게 나타난다. 고등교육은 국립대학교 체제로 이루어진 푸에르토리코대학교를 위시한 30개의 기관에서 분산하여 담당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문화

주요언어는 스페인어이지만 앤틸리스·아프리카·스페인·북아메리카 문화 등의 영향이 생동감 있게 혼합되어 있다. 푸에르토리코 문화연구소와 푸에르토리코 협회에서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 시대 아라와크(타이노) 인디언 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의 전통과 인공유물을 보존하고 있다.

본섬 또는 인근지역을 중심으로 문학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로, 19, 20세기의 교육자이며 수필가인 에우제니오 마리아 데 오스토스가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카리브 해 지역의 정치적 독립과 사회개혁을 이끌었다.

음악공연도 널리 행해지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잘스 축제(1956∼)에 고무되어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기리는 카잘스 박물관이 산후안에 세워졌다. 극장과 텔레비전 등을 통한 다른 공연예술도 활발하다.

역사

푸에르토리코의 초기 주민은 플로리다 남부와 남아메리카 오리노코 강 유역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었다.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유순한 아라와크 인디언이 호전적인 카리브 인디언에게 시달리며 살고 있었다. 1508년 후안 폰세 데 레온은 카파라 마을을 세우고 처음으로 금을 채굴하고 농사를 지으려는 시도를 했다.

16세기말 동안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의 공격 때문에 스페인은 섬에 견고한 요새를 세웠으나 18세기말까지 푸에르토리코는 대체로 경제적으로 미개발 상태에 있었다. 1830년 이후부터 사탕수수·커피·담배 등의 3가지 수출농작물에 바탕을 둔 플랜테이션 경제가 점차 발달했다. 19세기말 푸에르토리코는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1897년 스페인으로부터 자치정부의 방대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듬해 미국-스페인 전쟁 동안 미국군이 푸에르토리코를 점령했으며, 전후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에게 양도되었다. 초기에 미국정부는 스페인 치하에서 자치권을 얻기 위해 투쟁했던 많은 푸에르토리코인의 원성을 사면서 푸에르토리코와 그 주민들을 미국화하려고 시도했다. 1917년 제한된 자치정부가 승인되었으며, 푸에르토리코 주민은 미국 시민이 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930년대 푸에르토리코의 정당은 섬의 향후 위상에 대해 독립을 지지하는 쪽과 미국의 주로 편입되는 것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누어졌다. 1946년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최초의 푸에르토리코 원주민 총독을 임명했다. 1948년부터 국민투표로 총독을 선출했고, 1952년에는 정식으로 푸에르토리코 연방이 성립되었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말까지 푸에르토리코 경제는 농업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에서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기반을 둔 경제로 변모했다. 노동자들은 사탕수수 밭과 커피 농장을 떠나 사회 서비스와 근로 조건이 좋은 도시로 이주해갔다.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운동은 트루먼 암살 시도와 미국 의회에서의 저격소동 등 미국 내에서의 산발적인 테러 행위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1970, 1980년대 이후 중요한 정치적 쟁점은 독립 문제가 아니라 연방의 위상을 유지할 것인가 또는 미국에서 완벽한 주의 위치를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