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럴드 R. 포드

제럴드 R. 포드

다른 표기 언어 포드 , Gerald R(udolph, Jr.) Ford 동의어 미국 제38대 대통령, Leslie Lynch King, Jr, 레슬리 린치 킹 주니어, 제럴드 루돌프 포드 주니어, Gerald Rudolph Ford Jr
요약 테이블
출생 1913. 7. 14, 미국 네브래스카 오마하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제38대 대통령(1974~77).
본명은 Leslie Lynch King, Jr.

포드(Gerald Rudolph Ford Jr)
포드(Gerald Rudolph Ford Jr)

제40대 미국 부통령으로서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자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미시간 주의 그랜드 래피즈로 옮겨가 제럴드 R. 포드와 재혼했다. 이때 의부에게 입양되어 그의 성을 물려받았다. 미시간대학교 재학중에는 미식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1941년에는 예일대학교에서 법학사학위를 받았다. 1948년 미국 하원에 처음 진출해 그후 계속 당선되었고 1965년에는 하원 소수당 지도자가 되었다. 1973년 10월 12일 스피로 T. 애그뉴 부통령이 사임하자 닉슨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되었다. 같은 해 12월 6일에 부통령직에 취임했는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에 부통령에 취임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포드는 닉슨 대통령의 사임에 따라 1974년 8월 9일 대통령에 취임했는데, 미국 역사상 선거에 의하지 않고 대통령이나 부통령직에 오른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포드는 닉슨 행정부 말년의 밀실정치를 불식하기 위해 '공개와 솔직'을 정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포드 행정부 출범 초기의 편안한 시대도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1974년 9월 8일 포드가 닉슨이 대통령직에 있을 때 "미국을 상대로 저지른 모든 잘못"을 전적으로 사면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면으로 인해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모든 형사소추로부터 면책되었다. 그 사면에 대해 국민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포드는 이를 의식하여 1974년 10월 17일 자진하여 하원 소위원회에 출두, 자신의 조치를 해명했는데 현직 대통령이 의회의 위원회에 나와 공식 증언을 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포드 행정부는 닉슨 행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높은 물가상승률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포드는 1976년말까지 의회가 제출한 법안을 50여 건(이중 40건은 결국 부결)이나 거부했는데 이것은 당시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던 의회와의 불편한 관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1975년 4월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 시절 포드는 총 23만 7,000명에 달하는 반공 베트남 난민의 공수를 지시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수송되었다. 그후 몇 주 뒤에 캄보디아가 미국의 화물선인 마야게스호(號)를 나포하자 포드는 그 행위를 '해적행위'로 규정하고 해병대를 보내 그 배를 되찾았다. 그해말 경호원과 청중을 가장한 사람이 그를 암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76년 8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강력한 대통령후보 경쟁자인 로널드 레이건의 도전을 물리치고 가까스로 당의 지명을 획득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민주당 후보인 지미 카터와의 공개 토론에 나섰는데 이로써 그는 야당 대통령 후보와의 공개 토론에 동의한 첫번째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 유세 초기부터 열세에 놓였던 포드는 그해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지미 카터에게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