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제도

8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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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만주족이 17세기에 중국을 점령·통제하기 위해 이용한 군사조직.

만주족 지도자인 누르하치(1559~1626)는 1601년에 각각 300명의 전사로 구성된 4대 군단으로 기병(旗兵)을 조직했다.

이때 각 군단은 황(黃)·홍(紅)·백·남(藍)의 4가지 깃발로 구별되었다. 1615년 4개의 기병이 추가되었는데, 황기·백기·남기에는 홍색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홍기에는 흰색 선을 둘러 구별했다. 만주족의 점령지가 늘어나자 군단의 규모도 계속 커져, 후에는 1개 군단이 7,500명에 이르렀다. 7,500명의 병력은 5개 연대로 구분되었고, 연대는 다시 4개 중대로 나뉘었다. 누르하치의 신하들은 몇 명의 왕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병에 편성되었고, 기병은 행정기능도 맡았다. 과세·징병·주민등록은 기병조직을 통해 이루어졌다. 기병들은 평상시에는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전시에는 각 기병에서 일정한 수의 병력을 제공했다.

만주족은 한족(漢族)과 몽골족을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포로들을 기병조직과 유사한 군단으로 편성했다. 1634년 몽골족으로 구성된 8개 군단이 만주 기병에 추가되었고, 1642년 한족으로 구성된 8개 군단이 추가되었다. 결과적으로 기병은 모두 24개에 이르렀다.

만주족은 이 군대에 힘입어 중국을 점령하고 청(淸:1644~1911)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운 뒤 경찰의 역할을 하는 녹기군(綠旗軍)이 전역에 배치되어 소수집단의 소요를 진압했는데, 이 군대는 주로 명대(1368~1644)의 군인과 지방 병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만주족의 주력부대는 여전히 24개 기병이었으며, 이 부대는 수도인 베이징과 전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에 배치되어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소집될 수 있었다. 건국 초기에는 3개의 기병만이 황제의 직속이었고 다른 5개는 여러 황족들이 지휘했다. 그러나 1722년 옹정제(雍正帝)가 황위를 계승한 후 8개 기병의 지휘권을 모두 장악하여 다른 형제들이 반역할 기회를 막았다. 이때부터 황제가 8개 군단을 독점하게 되어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기병은 일종의 귀족으로 취급되어 해마다 받는 녹봉과 토지 및 쌀·옷감 배급에서도 우대를 받았다. 만주족 기병은 대체로 몽골족이나 한족 기병보다 나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기병의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모든 기병은 상업이나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또한 법률을 어긴 기병은 민간인 행정관이 아닌 만주족 장군에게 재판을 받았다. 청이 세워진 뒤 평화가 지속된 150년 동안 기병의 전투력은 쇠퇴했으며 훈련도 해이해졌다. 백련교도의 난(1796~1804)과 태평천국운동(1850~64)이 일어났을 때 기병이 이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정부는 결국 다른 군대를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 19세기말에 이르자 근대적인 훈련과 무기로 무장된 수천 명을 제외한 나머지 기병조직은 완전히 쓸모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