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케

트라케

다른 표기 언어 Thrake
요약 테이블
위치 발칸 반도 남동부 지역
국가 그리스, 터키, 불가리아

요약 발칸 반도 남동부의 고대 및 현대 지역.
(라). Thracia. (영). Thrace. 현대 그리스어로는 Thráki.

트라케(Thrake)
트라케(Thrake)

역사적으로 지역의 경계선은 변화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발칸 반도에서 북쪽으로 도나우 강, 남쪽으로 에게 해, 동쪽으로 흑해와 마르마라 해, 서쪽으로 바르다르 강 동쪽의 산맥들에까지 미쳤다. 로마 시대의 트라케 속주는 더 작아서, 동쪽으로 흑해와 마르마라 해까지 이르렀으나 북쪽으로는 발칸 산맥, 서쪽으로는 네스토스 강까지만 미쳤다. 로마 시대 이래로 서쪽의 그리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트라케는 네스토스 강을 경계로 삼았다.

오늘날의 트라케는 불가리아 남부, 그리스의 트라키 주, 겔리불루 반도를 포함하는 유럽권 터키에 해당한다. 북쪽 경계선은 일반적으로 불가리아 중부에서 동서로 뻗어 있는 발칸 산맥으로 보고 있다. 트라케의 약 1/4은 터키에 있으며, 그리스가 약 1/10, 불가리아가 나머지 2/3를 차지한다. 지형학적으로 트라케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크기가 다양한 분지와 깊이 파인 하곡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마리차 강이 이 지역을 흐르는 가장 큰 강이다.

트라케(Thrake)
트라케(Thrake)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가들은 트라케인들이 인도유럽인으로서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며 뛰어난 투사들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들간의 끊임없는 정치적 분열 때문에 지중해 북동부 주변지역을 침략·정복할 수 없었다. 역사가들은 트라케인들이 단순하고 개방된 촌락을 이루고 살았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이 원시적이었다고 규정했지만, 사실상 이들은 상당히 진보된 문화를 가졌으며 특히 시와 음악으로 유명했다. 트라케의 군인들은 마케도니아와 로마를 비롯한 외부에서 용병으로 환영을 받았다. 그리스인들은 트라케 해안에 여러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그중 비잔티움이 가장 중요했다. 그밖에 보스포루스 해협, 프로폰티스, 케르소네소스트라키아에 세운 식민지도 있었다.

에게 해 연안의 네스토스 강 삼각주 근처에는 압데라가 있었으며, 알렉산드루폴리스 근처에는 아이누스가 있었다. 더 북쪽으로 흑해의 부르가스 만에는 BC 7세기에 밀레투스인들이 아폴로니아를, BC 6세기말 칼세돈인들이 메셈브리아를 세웠다. 대부분의 트라케인들은 BC 516~510년경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오드리사이족은 한패인 트라케인들과 함께 제국을 형성했으나, 이 제국은 BC 360년에 3개로 분열되었고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 의해 쉽게 동화(BC 356~342)되었다. 트라케인들은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기 동안 경무기로 무장한 훌륭한 군대를 제공했다. BC 197년 로마는 트라케 대부분을 페르가뭄 왕국에게 양도했으나, 마리차 강 서쪽의 해안지역은 로마의 속주 마케도니아에 합병시켰다.

BC 1세기에 로마는 트라케 지역 전체에 직접 관여하게 되었다. 그즈음에 이르러 로마의 종속국이 된 트라케의 지역별 통치자들간에 다툼이 일어나자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는 46년에 전(全)트라키아 왕국을 합병하게 되었다. 그후 트라케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황제 트라야누스와 그의 후계자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케에 사르디카(지금의 소피아)와 하드리아노폴리스(지금의 에디르네)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을 건설했다. 약 300년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도나우 강 하류와 에게 해 사이의 지역을 트라케 교구로 재정비했다. 3~7세기에 고트족·서고트족·슬라브족의 침입과 계속된 이민으로 인구 상황이 크게 변동했다. 7세기에 불가리아인들이 국가를 수립했으며 결과적으로 비잔티움은 발칸 산맥 북쪽의 트라케 전지역을 불가리아인들에게 잃었다.

하드리아누스(Hadrianus)
하드리아누스(Hadrianus)

14세기에 비잔틴 내전을 겪으면서 피해를 입었으며 조금씩 오스만 투르크에게 넘어가 1453년부터 400년간 그들의 지배를 받았다(오스만 제국). 러시아의 발칸 반도 동부지역의 침범은 러시아-투르크 전쟁(1828~29, 1877~78) 때 절정에 달했으나, 투르크를 몰아내고 트라케 북부지역을 포함하는 '대(大)불가리아'를 수립하려고 했던 러시아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따라서 트라케 전체가 터키의 지배하에 남게 되었다.

발칸 전쟁(1912~13) 동안 이곳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그리스·불가리아·터키 경계선이 뇌이 조약(1919), 세브르 조약(1920), 로잔 조약(1923)에 따라 성립되었으며,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비록 아직도 그리스령 트라케와 불가리아령 트라케에 다수의 터키 소수민족이 있기는 하지만, 전쟁과 이주의 결과 트라케의 민족적 특성은 20세기 동안 더욱 동질화되었다. 그리스 쪽(서부) 트라케의 터키인들은 1923년에 이루어진 그리스-터키 간 인구 교환에서 배제되었다. 한편 아나톨리아에서 그리스인들이 많이 이주해와 정착했다. 불가리아 출신의 터키인은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동부 트라케에 정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