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테니스

다른 표기 언어 tennis

요약 테니스 구장은 보통 길이 23.77m이고 너비 8.23m이며, 네트 높이는 0.9m이다. 공의 지름은 6.35~6.67㎝, 무게는 56.7~58.5g이다.
선수들은 한 게임씩 걸러 서브한다. 서버는 공을 네트 너머로 쳐서 상대선수의 오른쪽 서비스 코트로 넘긴다. 2회 연속 서브에 실패하면 포인트를 잃는다. 리시버는 공이 땅에 2번 닿기 전에 상대선수의 코트 안으로 쳐서 보낸다. 2포인트 차로 4포인트를 얻어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타이 브레이커는 듀스의 연속으로 시합이 길어지거나 선수의 체력이 소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채용되었다.
테니스 용어로는 그라운드 스트로크, 네트 플레이, 더블 폴트, 드라이브, 랠리, 매치 포인트, 백핸드, 보디 오버, 스매시, 스트레이트, 스핀, 언더 커트 등 다양하다.

목차

접기
  1. 개요
  2. 경기 시설과 용구
  3. 경기방법
  4. 테니스 역사
    1. 기원과 전파
    2. 세계 각국의 테니스 대회
  5. 한국의 테니스
    1. 시초
    2. 발전
    3. 현황
테니스(tennis)
테니스(tennis)

개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잔디구장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원래는 론 테니스(lawn tennis)로 알려졌다.

테니스는 12~13세기 프랑스의 핸드볼 경기인 죄 드 폼(jeu de paume : 손바닥 경기)에서 비롯되었는데, 여기에서 라켓과 공을 갖고 하는 복잡한 실내 경기인 리얼 테니스(real tennis)가 유래했다. 이 오래된 경기는 아직 제한적이나마 행해지고 있는데 영국에서는 리얼 테니스, 미국에서는 코트 테니스(court tennis),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로열 테니스(royal tennis)로 불린다.

주요 테니스 경기대회가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1960년대 후반에 테니스는 보고 참여하는 스포츠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이런 추세는 테니스 대회가 텔레비전에 방영되어 대중을 끌어들인 1970년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경기 시설과 용구

테니스 구장의 크기는 단식의 경우 길이 23.77m, 너비 8.23m이고, 복식은 길이 23.77m, 너비 10.97m이다(코트). 네트의 높이는 0.9m이며 이것은 구장의 양쪽 밖 0.9m에 설치된 1.2m의 말뚝에 의해 지지된다. 테니스는 원래 론 테니스로 불렸고, 지금도 잔디구장이 쓰이기도 하나,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구장의 재료는 진흙, 시멘트와 각종의 연성화한 아스팔트 부산물, 합성 표면 등이다.

올림픽 테니스 경기장
올림픽 테니스 경기장

테니스 공은 압축된 고무 핵에 고급 천을 씌운 것인데, 이때 천의 재료는 최고 35%까지 나이론을 혼합한 모직물이다. 국제 테니스 연맹(International Tennis Federation/ITF)규정에 의하면 공의 지름은 6.35~6.67㎝이고, 무게는 56.7~58.5g이다. 공의 탄성은 254cm(100인치) 높이에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135~147cm의 높이로 튀어올라와야 한다.

테니스 라켓과 공
테니스 라켓과 공

1977년 도입된 이중 줄(double-strung) 또는 스파게티 라켓은 1981년 제정된 라켓에 관한 규정에서 금지되었다.

경기방법

경기자들은 라켓을 돌리거나 동전을 던져 서비스와 코트의 어느 쪽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한다.

이긴 사람이 먼저 서브를 할 것인지 또는 리시브할 것인지 결정하면 그의 상대 선수는 코트의 어느 쪽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한다. 반대로 이긴 사람이 코트의 어느 쪽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면 상대 선수는 먼저 서브 할 것인지 또는 리시브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선수들은 한 게임씩 걸러 서브하며 경기의 매 홀수회 다음에 코트를 바꾼다.

서버는 매 게임마다 코트의 오른쪽 뒤에서 시작하는데 베이스라인 뒤쪽에 발을 딛고 공을 네트 넘어 대칭으로 쳐서 상대선수의 오른쪽 서비스 코트(service court)로 넘긴다.

서브한 공이 정확한 서비스 코트에 떨어지기 전에 네트의 꼭대기를 치면 그것은 레트(let)가 되고 다시 플레이하게 된다. 서버에게는 네트에 공이 맞거나 상대선수의 서비스 코트 밖으로 공이 나가는 경우 등의 실수(폴트)가 1번에 한해 허용된다. 2회 시도에서 정확한 서브를 하지 못하면 포인트를 잃게 된다.

리시버는 공이 땅에 2번 닿기 전에 네트 위로 넘겨 상대선수의 코트 안으로 쳐서 보낸다. 서브한 공이 되돌아오면 두 선수는 공을 발리(valley : 공이 바운드되기 전에 침)하거나 한 번 바운드 한 뒤에 치며, 한 선수가 잘못 되받아치기 전까지는 포인트가 지속된다.

공을 네트 위로 넘기지 못할 때, 공이 상대편 코트의 경계 밖으로 나갔을 때, 자신의 코트 안에서 공이 2번째 바운드 되었을 때에는 포인트를 잃게 된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선수는 2포인트 차이로 4포인트를 얻어야 한다. 득점은 '15, 30, 40게임'으로 기록되는데, 이 방식은 리얼 테니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왜 3번째 포인트를 15의 배수인 45가 아닌 40으로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이유가 명쾌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0점은 러브(love)라고 흔히 부르는데 이것은 달걀을 뜻하는 프랑스어의 'l'oeuf'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서버의 득점을 먼저 부르므로 30 : 15의 점수는 서버가 2포인트, 상대가 1포인트라는 의미이고, 15 : 30은 리시버가 2포인트, 상대가 1포인트라는 뜻이다. 만일 양 선수가 포티(40)가 되면 스코어는 듀스(deuce)라 하고 한 선수가 먼저 어드밴티지(advantage)를 취한 후 2포인트 차이로 게임을 얻을 때까지 경기를 계속한다.

듀스가 결정되기 전까지 한 게임은 횟수에 제한 없이 계속되는데, 몇몇 대회에서는 이른바 노애드(no-ad)가 적용되어 2포인트 차이를 요구하지 않으며, 4포인트를 먼저 얻는 선수가 게임에서 이기게 된다. 포인트가 모여 1게임을 만들고, 게임이 합해져 1세트를 이루며, 세트가 더해져 1시합(match)이 된다.

6게임을 먼저얻는 선수가 전통적으로 세트를 따는데 여기에도 2게임의 차이가 요구되고 있다. 게임이 듀스의 연속으로 시합이 길어지는 것을 막고 선수의 체력소모를 방지하기 위하여, 1970년대초 이후에 거의 모든 대회에서는 타이 브레이커 시스템(tie breaker system)을 채용했다. 타이 브레이커는 6게임 올이 되었을 때 시작하여, 한쪽의 선수가 2포인트의 차를 만들어 7포인트를 먼저 얻었을 때 게임과 세트가 끝난다. 6포인트 올이 되었을 때는 2포인트 차가 날 때까지 게임이 지속된다.

이때 포인트는 원·투·쓰리…… 식으로 부르며 이렇게 하여 이겼을 때는 7 : 6 또는 9 : 8로 기록된다.

테니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는 다음과 같다.

그라운드 스트로크 : 1번 코트 면에 바운드한 공을 치는 것이다.

그립 : 라켓의 손잡이 또는 라켓을 쥐는 방법으로 라켓을 쥐는 방법에는 잉글리시 그립, 웨스턴 그립, 이스턴 그립 등이 있다.

낫 레디 : 리시버가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서브를 넣었을 때 심판이 선언하는 말이다.

네트 플레이 : 네트에 바짝 붙어서 하는 경기이다.

더블 폴트 : 서비스를 2번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이다.

드라이브 : 코트에 바운드한 공의 위쪽을 라켓 면으로 감싸듯이 쳐서 순회전(順回轉)을 주는 타구이다.

드로 : 경기의 대전(對戰)을 짜는 방법이다.

드롭 숏 : 역회전을 주어 네트 가까이에 떨어지게 하는 타구이다.

랠리 : 계속하여 서로 치고 받는 것이다.

러너업 : 결승전에서의 패자이다.

롭 : 공을 높이 치는 스트로크이다.

루프 드리블 : 공이 급히 아래로 떨어지게 치는 타법이다.

매치 포인트 : 시합의 승부를 결정 짓는 마지막 1포인트이다.

바이 : 추첨에 의해 부전승(不戰勝)이 된 선수이다.

백핸드 : 라켓을 쥔 손등이 향하는 쪽, 또는 라켓의 배면으로 치는 타법이다.

보디 오버 : 공을 칠 때 몸의 일부가 네트를 넘거나 네트에 닿는 것이다.

브레이크 포인트 : 상대방의 서브를 빼앗을 수 있는 포인트이다.

서비스 에이스 : 서브가 강하여 리시버가 라켓에 대지 못한 서비스 공이다.

스매시 : 높은 공을 머리 위에서부터 강하게 내려치는 공격적인 타구이다.

스트레이트 : 1세트도 빼았기지 않고 이기는 것 또는 사이드라인에 평행으로 치는 스트로크이다.

슬라이스 : 코트에 바운드한 공의 아래쪽을 상향으로 쳐서 역회전이 되게 하는 타구이다.

스핀 : 공의 회전으로 톱 스핀(top spin)과 백 스핀(back spin)이 있다.

어프로치 숏 : 네트 가까이 다가서며 공을 치는 것이다.

언더 커트 : 공의 아래쪽 부분을 깎아 치는 방법이다.

에이스 : 상대의 실수가 아닌 자기가 친 공으로 점수를 얻는 일이다.

위닝 숏 : 경기자가 가장 잘 칠 수 있는 스트로크이다.

캐논 볼 : 대포탄환처럼 매우 빠른 서비스 공이다.

포싱 숏 :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공이다.

패싱 숏 : 네트 가까이 다가온 상대방의 옆으로 빠져나가게 치는 타법이다.

포치 : 복식에서 일반적으로 파트너가 쳐야 할 공을 다른 파트너가 치는 것으로 인터셉트라고도 한다.

플랫 드라이브 : 라켓의 면을 공에 직각으로 대어치는 스트로크이다.

테니스 역사

테니스
테니스
기원과 전파

현대 테니스는 1872년 영국의 해리 젬 장군이 그의 동료들과 즐겼던 공 놀이와, 비슷한 시기인 1873년에 북웨일스 출신의 W.C. 윙필드 장군이 고안했던 경기를 기원으로 본다. 1973년의 공식적인 100주년 기념제는 1873년 북웨일스 출신의 W.C. 윙필드 소령에 의한 이 경기의 도입을 축하한 것이었다.

윙필드는 1873년 경기규칙에 관한 최초의 책을 발간했으며 이듬해에는 경기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윙필드의 코트는 배드민턴 경기에서 이용되었던 것과 같은 모래시계 모양이었다. 그의 저서 <스파이리스티케 또는 론 테니스(Sphairistiké, or Lawn Tennis)>가 발간된 후 일단의 사람들이 경기의 발명자임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그들의 경기장은 대부분 직사각형이었다.

당시 메릴레번 크리켓 클럽(MCC, Marylebone Cricket Club)은 리얼 테니스의 관리단체였는데, 그들의 경기규칙은 최근에 개정되었다. 뛰어난 리얼 테니스 선수인 J.M. 히스코트가 고무를 흰 플라넬로 싼 좀더 개량된 테니스 공을 개발한 후 MCC는 1875년 테니스를 위한 일련의 표준화된 규칙을 제정했다.

한편 이 경기는 1870년대에 미국으로 전파되었는데, 뉴욕의 메리 아우터브리지가 스탠튼 섬의 크리켓과 야구 클럽의 감독인 그녀의 형제에게 라켓과 공을 갖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연구에 의하면 매사추세츠 주 내핸트의 윌리엄 애플턴이 론 테니스 장비를 갖고 있었으며, 그의 친구들인 제임스 드와이트와 프레드 시어스가 널리 퍼뜨렸다고 한다.

올잉글랜드 크로케 클럽(All-England Croquet Club)이 윔블던에 있던 잔디구장의 하나를 테니스 전용구장으로 바꾸기로 한 결정은 테니스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후 이곳의 테니스는 매우 인기가 있어 이 클럽의 명칭은 올잉글랜드 크로케 앤드 론 테니스 클럽(All-England Croquet and Lawn Tennis Club)으로 바뀌었다.

1877년 이 클럽은 테니스 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3명의 선수권대회 소위원을 임명했다. 또한 구장의 규격을 길이 23.77m, 너비 8.23m의 직사각형으로 정하고 실제적인 경기 득점방법(15, 30, 40, 게임)을 채용했으며 서버(server)에게 1폴트(fault)를 허용했다. 이러한 결정은 현대의 경기규칙으로 남아 있다. 22명이 참가한 최초의 윔블던 선수권대회의 첫 우승자는 스펜서 고어였다.

세계 각국의 테니스 대회

1878년에는 스코틀랜드 선수권대회가, 1879년에는 아일랜드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1880년 올잉글랜드 클럽과 MCC가 현재 쓰이고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한 개정된 경기규칙을 출판하기까지는 경기규칙에 몇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당시에는 올잉글랜드 클럽이 주도 세력이었으며 브리티시 론 테니스 어소시에이션(BLTA, British Lawn Tennis Association)은 1888년에야 조직되었다.

1880년에는 최초의 미국선수권대회가 스탠튼 아일랜드 크리켓 앤드 베이스볼 클럽에서 열렸으며, 우승자는 영국의 O.E. 우드하우스였다. 미국에서 테니스가 대중화되고 경기규칙에 자주 문제가 생기자 1881년 전미(全美) 론 테니스 협회가 창설되었고 후에 미국 론 테니스 협회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1975년에는 미국 테니스 협회(USTA)로 개칭했다. 이 협회의 후원 아래 1881년 영국 규칙에 따른 첫번째 공식 전미선수권대회가 로드아일랜드 주 뉴포트의 뉴포트카시노에서 열렸다. 이 대회의 우승자인 리처드 시어스는 미국선수권대회를 7년 연속 우승했다.

1880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테니스가 깊이 뿌리를 내렸고, 1905년에는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지금의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로 발전했고, 1904년에 창설된 오스트랄라시아(뒤에 오스트레일리아로 바뀜) 론 테니스 협회는 이후 테니스 오스트레일리아(Tennis Australia)로 개편되었다. 1886년에는 전뉴질랜드 선수권대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최초의 전프랑스 선수권대회는 1891년 스타드프랑세에서 열렸는데 이것은 단지 클럽간의 토너먼트였으며, 이 대회가 국제적인 경기로 성장한 것은 1925년부터였고, 이때 명칭을 프랑스 챔피언십으로 변경했다. 프랑스 챔피언십은 이후 1968년 아마추어 선수와 프로 선수 모두가 참가할 수 있는 오픈 대회로 확장되었으며, 지금의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밖에 선수권대회가 개최된 국가는 캐나다(1890)·남아프리카(1891)·스페인(1910)·덴마크(1921)·이집트(1925)·이탈리아(1930)·스웨덴(1936) 등이다. 1884년에는 여자선수권대회가 윔블던에 도입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전국여자선수권대회가 1887년부터 개최되었다(→ 스포츠기록 : 테니스).

한국의 테니스

시초

한국에 테니스가 소개된 것은 1900년대 초에 미국인 선교사 뱅커와 제중원의 약사 앤더슨에 의해서였다. 1908년 4월에는 탁지부 관리들이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회동구락부를 조직하고 테니스 경기를 열었다고 하는데, 이 경기는 일본으로부터 파생된 연식정구였다. 정식 테니스가 시작된 것은 그후 1926년 경성제국대학 정구부장이었던 강성태가 연식정구부를 테니스부로 전환하면서 테니스가 정식으로 한국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최초의 정식 테니스 경기는 1927년 9월 일본 오사카[大阪] 마이니치신문사 경성지국 주최로 서울의 용산 철도국 코트에서 열린 제1회 테니스 선수권 대회였다,

발전

1930년 9월 국내 최초의 테니스 동호인 단체인 서울 경구구락부가 조직되었다. 1945년 경식과 연식이 통합된 조선정구협회가 결성되었고, 1946년 7월에는 제1회 전국 경식정구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다. 1948년 9월 세계정구연맹에 정식으로 가입했으며, 1955년 조선정구협회가 대한테니스협회와 대한연식정구협회로 분리되었고, 1960년부터 데이비스 컵 동양 예선에 출전하기 시작해 이후 매년 이 대회 예선전에 참가하고 있다.

1970년대초부터는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크게 향상되어 1974년 제7회 아시아 경기대회를 시작으로 1982년의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 1986년 서울 아시아 경기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1972년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에 출전했던 이덕희는 한국인 최초로 그랜드 슬램 대회에 출전했으며, 호주 선수인 팸 휘트크로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첫 승을 기록했다.

이후 2000년 이형택이 ATP투어에서 US 오픈 16강에 진출하면서 그 뒤를 이었다. 이형택은 같은 해 프랑스 오픈 대회에서도 16강에 진출했으며 이후 2007년 세계 랭킹 36위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2018년 1월 정현이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4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경신되었다. 정현은 남자 단식 8강전에서 테니스 샌드그렌을 3대 0으로 완파하고, 역대 한국 선수로서는 최고 기록인 세계 랭킹 29위에 올랐다.

현황

한국에서 테니스계를 대표하는 단체는 대한테니스협회이다. 테니스의 보급과 경기 규칙의 입안, 각종 대회들을 주관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여자 프로 테니스 대회인 코리아 오픈 테니스 대회가 2004년부터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 대회는 여자테니스연맹(WTA, Women's Tennis Association)이 주관하는 국제 대회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