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벗

캐벗

다른 표기 언어 John Cabot 동의어 존 캐벗, 조반니 카보토, Giovani Caboto
요약 테이블
출생 1450경
사망 1499경
국적 이탈리아

요약 이탈리아 태생의 항해가·탐험가.
(이). Giovani Caboto.

캐벗 (John Cabot)
캐벗 (John Cabot)

그가 주도한 1497, 1498년의 항해는 나중에 영국이 캐나다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의 생애와 항해에 관한 정확한 세부사항은 아직까지도 역사가와 지도제작자 사이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1461년(또는 그보다 더 일찍) 베네치아로 이주해 1476년에 베네치아 시민이 되었다. 무역회사에 다니면서 지중해의 동부해안을 여행했으며, 동양과 서양의 상품이 교환되던 거대한 무역 중심지 메카를 방문했다. 항해술에 능숙해진 그는 콜럼버스와 별도로 서쪽으로 항해하여 아시아에 도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던 것 같다. 1484년 가족을 데리고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후 10년간의 행적과 활동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런던과 리스본 및 세비야에서 대서양 횡단을 위한 항해 찬조금을 모집했던 것으로 보인다.

1496년 3월 5일 잉글랜드의 헨리 7세는 캐벗과 그의 아들에게 특허장을 발부해 미지의 땅을 탐색하도록 항해를 허락하고, 브리스틀 항에 상품을 하역하도록 했으며, 그곳에 무역독점권을 확립할 경우 이를 향유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콜럼버스가 당시 스페인을 대신해 미지의 나라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자극제가 되어 영국은 탐험사업에 박차를 가했으며, 캐벗이 브리스틀 상인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게 주선했다.

1496년 캐벗은 1척의 배로 브리스틀 항을 출발했으나 식량부족, 악천후 그리고 선원들과의 분쟁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1497년 5월에 18명의 선원과 '매슈'라는 작은 배를 타고 브리스틀 항에서 항해를 시작했다. 아일랜드를 돌아서 북쪽과 남쪽으로 계속 항해해 6월 24일 아침 육지에 도달했다. 정확한 착륙지점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래브라도 남부, 뉴펀들랜드 또는 케이프브레턴 섬 중에 어느 한 지점일 것이라는 추측만 있었다. 해안에 닿았을 때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있었지만 주민은 발견하지 못했다. 잉글랜드 소유로 만들면서 땅에 잉글랜드 기와 베네치아 기를 모두 꽂았다.

그는 배를 타고 해안을 따라 탐사작업을 하면서 디스커버리 곶, 세인트존 섬, 세인트조지스 곶, 트리니티 제도, 그리고 잉글랜드 곶 등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이름을 붙였다. 이 지역들은 각각 지금의 노스 곶, 세인트폴 섬, 레이곶, 생피에르앤드미클롱, 레이스 곶 등으로 모두 캐벗 해협에 있다. 자신이 아시아의 북동해안에 도착했다고 잘못 생각한 캐벗은 1497년 8월 6일 브리스틀 항으로 회항했다. 그는 그곳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육지는 매우 비옥하며 기후는 온화하고, 바다는 잉글랜드가 더이상 아이슬랜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물고기가 풍부하다고 알렸다.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지내다가 그는 착륙지점으로 되돌아가서 그곳에서 서쪽으로 일본에 닿을 때까지, 그 유명한 향료와 보석들을 찾을 때까지 계속 항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498년 2월 3일 제2차 탐사를 위한 새로운 특허장을 받았다. 제2차 탐사는 5척의 선박과 200명의 선원으로 구성되었다. 1498년 출항 후에 곧바로 선박 1척이 피해를 당해 아일랜드에 정박했다. 캐벗이 다시 아메리카에 닿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몇 증거가 있지만, 당시의 한 자료에는 이 탐험대가 조난되었다고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