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

지휘

다른 표기 언어 conducting , 指揮

요약 관현악·합창·오페라·발레 등 여러 종류의 합주음악에서 단원 전체를 음악적으로 통솔하는 일 또는 이에 부수되는 기술들.

지휘자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연주자들이 모두 같은 리듬을 따라갈 수 있도록 박자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것이다.

박자를 정확히 짚어주기 위해서는 팔과 손에 의한 일련의 움직임들이 1마디에 2박(폴카)·3박(왈츠나 마주르카)·4박(행진곡) 등과 같이 일정한 틀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어느 경우든지 강박은 하행동작으로 표시한다.

거의 2세기에 걸쳐 지휘자는 박자의 윤곽을 강조하는 도구로 오른손에 지휘봉을 즐겨 사용했고, 지휘봉을 잡지 않은 왼손은 오른손이 지시하는 성부 이외에 성부들의 도입 시기나 미세한 표정을 나타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지휘자들은 무반주 합창 지휘의 오랜 전통을 따라 지휘봉 없이 지휘를 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편 오늘날의 연주자들이 지휘봉이라는 특별한 시각적 도움없이도 대체로 음악의 지시 내용들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또한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손과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악보로 연주함으로써 몸의 동작과 얼굴 표정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프레이징이나 셈여림 관계, 미세한 표정, 개별 성부들의 도입 등 연주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표현들을 보다 자유자재로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지휘는 19세기에 와서야 독립적인 전문 음악행위가 되었다(이전에는 단원을 대표한 실제적 리더였던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 연주자, 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장이 지휘를 겸했음). 15세기 바티칸의 시스틴 성가대는 연습 때 대표자(오르간 또는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둘둘 말은 종이나 길다란 막대를 소리내어 두드림으로써 연주자들이 박자를 소리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관습은 계속 하다가 박자를 짚는 소리가 음악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함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바흐와 헨델 시절(17세기말에서 18세기 중엽까지)에 와서 리더는 주문에 따라 작곡을 하는 일 뿐 아니라 지휘의 역할도 같이 맡았고, 이때 지휘는 대개 특별히 마련된 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 연주석에서 했다. 한편 파리 오페라단에서 지휘는 악장이 맡아, 대개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석에서 연주와 지휘에 따르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을 수행했다.

그렇지만 당시까지 '지휘자'는 주로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그쳐, 가장 중요한 일은 다른 연주 단원들과 함께 합주하는 것이었고 단원들을 이끄는 일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19세기에는 지휘자 겸 작곡가라는 새로운 음악가 유형이 나타났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나 엑토르 베를리오즈, 펠릭스 멘델스존, 리하르트 바그너 등의 지휘자 겸 작곡가들은 연주를 엄격히 통제했을 뿐 아니라 작품에 독특한 해석의 관점을 세움으로써 개성과 감수성을 중시했던 19세기 음악의 전형적 특징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지휘자는 커다란 영향력으로 인해 당시 인기없던 작곡가와 그 작품을 성공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가령 멘델스존은 당시 구식이고 너무 현학적이라 무시되던 J. S. 바흐의 음악을 부활시켰다. 지휘자는 이처럼 작곡가·연주자·청중 사이를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맡음으로써 다른 음악가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몇몇 뛰어난 지휘자들은 완벽한 해석에 대한 단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아울러 그들에 대해 거의 전설적인 통제력을 발휘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사람들은 지휘자를 고독하고 독재적인 인물로 신격화하던 사고에서 벗어나, 양식적인 철저함과 더불어 관현악단 통솔 능력을 더욱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20세기의 능력있는 지휘자들은 한결같이 재능과 마력을 지닌 예술가인 동시에 숙련된 전문 기술인이기도 하며, 전문 연주자들을 권위로 통솔할 뿐 아니라 경제적인 후원자와 청중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데도 능숙했다. 또한 20세기 중반부터는 여성 지휘자가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