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초등학교

다른 표기 언어 primary school , 初等學校

요약 만 6~11세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초등학교의 역사는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교육제도를 도입하면서 생긴 소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894년 지금의 교동초등학교 자리에 최초의 관립소학교인 한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가 설립되었다. 1906년 소학교의 명칭은 보통학교로 바뀌었다. 1926년에는 보통학교와 소학교의 구분없이 심상소학교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으며, 수업연한도 4년에서 6년으로 연장되었다. 1941년 명칭이 국민학교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충량한 일본국의 신민'을 만들려 했던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의 일환이었다. 이 명칭은 8·15해방 이후에도 반세기 가까이 유지되다가 1995년에 개명 논의를 거쳐 1996년 3월 1일부터 초등학교로 개칭되었다.

만 6~11세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대포초등학교
대포초등학교

교과목은 도덕·국어·사회·수학·자연·체육·음악·미술·실과 등 9개이다. 1992년 9월 30일 교육부 고시 제19921-16호로 성립된 제6차 교육과정은 1~2학년이 1995년부터, 3~4학년이 1996년부터, 5~6학년이 1997년부터 적용되었다. 연간 총 수업시수는 1학년 790시간, 2학년 850시간, 3학년 952시간, 4학년 986시간, 5~6학년 1,054시간이며, 1수업시수는 40분으로 이루어진다.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학교장의 재량시간이 3학년 이상부터 연간 34시간씩 주어짐으로써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대폭 확대되었다.

1996년 현재 학교수 5,732개교, 학생수 380만 540명, 교원수 13만 7,912명, 취학률 97.1%이다. 이중 국·공립학교는 5,656개교로 전체의 98.7%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립학교는 전체의 1.3%인 76개교이다. 학생수는 국·공립학교가 98.4%인 373만 9,640명, 사립학교가 1.6%인 6만 900명으로 구성된다.

전체 초등학생 중 여학생의 비율은 47.7%인 178만 3,673명이며, 여교사의 비율은 57.2%인 7만 8,872명이다.

초등학교의 역사는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교육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긴 소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894년 지금의 교동초등학교 자리에 최초의 관립소학교인 한성사범학교 부속소학교가 설립되었고(1897년에 관립고등소학교가 됨), 1895년 8월 1일 '소학교령'이 시행되면서 한성에는 수하동소학교를 비롯한 8개의 관립소학교가 세워졌고, 각 도(道)에 약 50여 개의 관찰부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소학교의 취학연령은 만 8세에서 15세로 했고, 교육과정은 보통과와 고등과로 나누었다. 보통과는 수신·작문·습자·산술·체조 등을 가르쳤고, 고등과는 보통과의 교과목 이외에 한국지리·역사·외국지리·이과·도화·외국어 등을 추가했다(여학생을 위해 재봉을 가르치기도 했음). 1906년 8월 27일에 공포된 '보통학교령'에 의해 소학교의 명칭은 보통학교로 바뀌었다.

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은 과거 소학교의 2~3년에서 4년으로 길어졌고, 교과목도 일본어와 실과(수공·농업·상업) 등이 추가되었다. 학교수는 1910년 한일합병 당시 101개교였다. 보통학교의 명칭은 1911년 8월에 발표된 '제1차 조선교육령'에도 그대로 사용되었으나 4년제 보통학교와 4년제 고등보통학교(남학교와 여학교로 구분)로 나뉘게 되어, 보통학교만이 초등교육 단계에 해당되었다. 또한 일본인 자녀들은 조선인들이 다니는 보통학교와 구분하여 소학교라 불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1919년에는 보통학교수 482개교, 학생수 8만 4,306명이고, 소학교수 380개교, 학생수 4만 2,732명이었다.

1926년 7월 1일 '소학교령'에 의해 보통학교와 소학교의 구분없이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으며, 수업연한도 6년으로 연장되었다. 1941년 3월 31일 '국민학교령'에 의해 학교 명칭이 국민학교로 변경되었다. 이는 '충량한 일본국의 신민(臣民), 곧 국민(國民)'을 만들려 했던 일제강점기의 일관된 초등교육정책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명칭은 8·15해방 이후에도 행정편의 등의 사유로 반세기 가까이 유지되어오다가 1995년에 와서야 명칭 개명 논의를 거쳐 1996년 3월 1일부터 초등학교로 개칭하기에 이르렀다.

8·15해방 당시에는 초등학교 2,884개교에 186만 6,024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다. 1946년 11월 조선교육심의회는 일제의 교육제도를 청산하고 새로운 학제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식 6·3·3·4제를 제안했고, 조선어학회나 진단학회 등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교과서 대신에 한국어로 된 교재를 편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으로는 6년간의 초등교육기간이 비교적 길었던 탓으로 의무교육 시행이 지체되었고, 교과서도 일제강점기의 교과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수준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 교육이 어느 정도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1950년 6월 의무교육제도가 실시되고, 1954년 4월 20일 '교육과정 시간배당 기준령'(문교부령 제35호)이 발효되면서부터였다.

8·15해방 이후 폭발적으로 증대하는 교육열 때문에 초등학교 교육시설과 재정이 부족하게 되어 1963년에는 2부제 수업 학급이 1만 5,000개, 3부제 수업 학급이 800개였고, 1970년에도 2,672개교에 7,457개 학급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과밀현상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집중적인 시설투자와 학령인구 감소의 덕택으로 해소되고 있으며, 1996년 현재 2부제 실시 학교수 209개교, 학급수 1,395개로 급감했다. 농어촌에서는 인구감소에 따른 학교의 소규모화와 통폐합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996년 현재 12학급 이하의 소규모 학교는 전체의 56.5%인 3,242개교에 이르고 있으며, 6학급 이상의 경우도 41.9%인 2,404개교로 나타나고 있다.

학생수 규모로 볼 때는 10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가 30.4%인 1,741개교에 달하고 있으며, 학생수 2,001명 이상의 과대규모 학교는 전체의 7.4%인 422개교로 1995년의 8.5%에 비해서도 많이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