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전쟁

종교전쟁

다른 표기 언어 war of religion , 宗敎戰爭 동의어 성전, 聖戰

요약 종교전쟁은 종교와 관련된 모든 전쟁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신·구 양교파의 대립이 국제전쟁으로 발전한 경우를 지칭한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네덜란드 독립전쟁, 30년전쟁 등이 속한다. 종교전쟁은 많은 정치사상을 낳았는데 이것들은 왕권을 재주장하는 데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주었다. 장 칼뱅의 사상에는 세속적 권위에 대한 수동적 복종이 강조되었는데,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사건 이후 위그노교도들은 이것을 지지할 수 없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이후 일단의 가톨릭 집단이 위그노교도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교황지상주의자들과 위그노교도들을 모두 제압하기 위해 강력한 군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로써 왕권신수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종교전쟁은 종교와 관련된 모든 전쟁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신·구 양교파의 대립이 국제전쟁으로 발전한 경우를 지칭한다. 여기에는 ①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1562~98), ②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1648), ③ 30년전쟁(1618~48) 등이 속한다.

종교전쟁은 많은 정치사상을 낳았는데 이것들은 왕권을 재주장하는 데 강력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해주었다. 장 칼뱅의 가르침에는 세속적 권위에 대한 수동적 복종이 강조되었는데 바르톨로메오의 참살 사건 이후 위그노교도들은 이것을 지지할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왕이 그들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경우 왕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에 위그노교도들이 한 가장 중요한 공헌은 익명의 소책자 〈독재에 반한 주장 Vindiciae contra tyrannos〉(1579)으로 이것은 왕의 권한과 백성의 권리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거기에는 만일 왕이 신의 율법을 무시하고 그의 백성을 정당하게 다스리지 않을 때는 백성들이 반역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전개되어 있다. 이에 대립하는 정치이론으로는 교황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이론가는 이탈리아의 고위성직자인 로베르트 벨라르미노이다.

바르톨로메오의 참살 이후 일단의 가톨릭 집단이 국가의 단결과 평화를 위해 위그노교도들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교황지상주의자들과 위그노교도들을 모두 제압하기 위해선 강력한 군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로써 왕권신수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왕권신수설의 요점은 백성의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사람에 의해 부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신만이 그런 권위를 위임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신이 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나바라왕 앙리는 이 이론에 힘입어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여기에 장 보댕은 〈국가론 Six Livres de la République〉(1576)을 써서 백성을 왕권에 복속시키는 정치적 계약은 종교적 차이를 우선한다고 주장해 그의 왕권을 한층 공고히 했다.→ 30년전쟁, 위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