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

헨리 제임스

다른 표기 언어 제임스 , Henry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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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43. 4. 15, 뉴욕시
사망 1916. 2. 28, 잉글랜드 서식스 라이
국적 미국

요약 제임스는 1915년 영국 시민으로 귀화했으며, 대서양 횡단 문화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근본적인 주제는 구세계의 부패, 지혜와 충돌하는 신세계의 순진함과 활력이었으며, 이는 <데이지 밀러>(1879), <어느 부인의 초상>(1881), <사자들>(1903) 같은 작품에 나타나 있다.
뉴욕에서 태어나 파리, 제네바, 런던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 이후에도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오랜 외국 생활을 했다. 20대 중반에 미국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난 단편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로마에 온 한 미국인 바람둥이 여인의 이야기 〈데이지 밀러〉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미국 문학사상 가장 화려하고 영향력 있는 소설가 중 하나이다. 51년 동안 20편의 소설과 112편의 단편을 비롯하여 희곡, 여행기, 평론집, 기고문을 남겼다.

목차

접기
  1. 개요
  2. 초기생애와 작품
  3. 초기경력
  4. 중기경력
  5. 말기경력
  6. 평가

개요

1915년 영국 시민으로 귀화했으며, 대서양 횡단 문화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근본적인 주제는 구세계의 부패, 지혜와 충돌하는 신세계의 순진함과 활력이었으며, 이는 〈데이지 밀러 Daisy Miller〉(1879)·〈어느 부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1881)·〈보스턴 사람들 The Bostonians〉(1886)·〈사자(使者)들 The Ambassadors〉(1903) 같은 작품에 나타나 있다.

초기생애와 작품

제임스는 활동적인 형 윌리엄 곁에서 조용한 관찰자 역할을 했던 수줍음 많고 독서광인 소년이었다.

그들은 어렸을 때 외국으로 보내져 가정교사에게 교육받았으며, 사춘기 이전에는 그 당시 아직 지방이었던 맨해튼에서 보냈다. 제임스 형제는 10대에 다시 외국으로 나가 제네바·파리·런던에서 지낸 덕분에 그 시대의 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유럽의 언어들과 지식을 습득하는 특혜를 누렸다. 남북전쟁 직전에 제임스 일가는 로드아일랜드의 뉴포트에 정착했으며, 헨리는 그곳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보스턴에서 뉴잉글랜드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뉴포트에서 소방수로 자원했다가 입은 등의 부상 때문에 그는 몇 년 동안 줄곧 앉아서 생활해야 했고, 이로 인해 동족상잔의 남북전쟁을 회피했다는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한때 전문적인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환상을 품고, 19세 때 하버드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으나 공부시간을 샤를 오귀스탱 생트 뵈브, 오노레 드 발자크, 너새니얼 호손을 읽는 데 바쳤다.

그의 첫 소설은 2년 후 익명으로 뉴욕의 〈콘티넨털 먼슬리 Continental Monthly〉에 발표되었고, 첫 서평은 〈노스 아메리칸 리뷰 North American Review〉에 실렸다. 〈애틀랜틱 먼슬리 The Atlantic Monthly〉의 편집자가 된 윌리엄 딘 하우얼스는 제임스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출판해준 그의 친구이자 성실한 조언자가 되었다. 제임스와 하우얼스는 친교를 나누면서 미국의 '사실주의' 시대를 열어갔다.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제임스는 미국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난 단편작가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행위보다 정신생활에 대해 쓰려고 하는 그의 경향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이 초기의 소설들은 뉴포트가와 새러토가에 사는 부유층의 한가로운 생활을 그린 것으로, 조르주 상드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는 영국작가 중에서는 조지 엘리엇을, 미국작가 중에서는 호손을 모범으로 삼았다. 그의 습작은 철저했다. 그는 거의 10년에 걸쳐 단편·서평·논설 등을 쓴 뒤에야 본격 장편소설을 시도했다. 또 상류층 자제들이 그러하듯 '유럽 대륙 대여행'도 빠뜨리지 않아, 1869년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유럽을 만나기 위해 국외로 나갔다. 1년간 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방랑하면서, 평생에 걸친 여정의 무대를 마련한 그는 이들 나라에서도 항상 자신이 잘 알고 또 많이 다닌 길로만 여행했다.

제임스는 결혼한 적이 없었다. 그는 천성이 다정하고 사교적이기까지 한 사람이었지만, 사교모임이나 자신의 문학세계 내에서는 적극적인 관찰자이며 참가자였던 반면, 중년 말기까지 사람들과의 관계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었고 '연루되는 것'을 조심스럽게 기피했다.

초기경력

국제적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유럽의 매력을 인식하고 있었던 제임스는 자신이 미국에서 살며 일할 수 있을지를 알아내기 위해 신중한 노력을 했다.

보스턴에서 보낸 2년, 주로 로마에 체류하면서 유럽에서 보낸 2년, 그리고 뉴욕 시에서 끊임없이 고되게 일했던 한 해 겨울을 통해 그는 자신이 국외에서 글을 더 잘 쓸 수 있고 생활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로써 그의 오랜 외국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1875년 티베르 강변에서 예술과 열정으로 갈등하는 한 미국 조각가의 이야기인 〈로더릭 허드슨 Roderick Hudson〉과 첫 기행문 〈대서양 횡단 스케치 Transatlantic Sketches〉 및 한 이야기 모음집의 출판에서 예고되었다.

이 3편의 중요한 작품은 다음 40년간 100여 권의 책을 출판한 그의 경력의 시발점이었다(기행문학).

1875~76년 제임스는 파리에 살면서 문학과 시사 문제를 다룬 글을 〈뉴욕 트리뷴 New York Tribune〉 에 기고하는 한편, 장편소설 〈미국인 The American〉을 썼다. 그는 러시아의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에 흥미를 느껴 그를 찾아나섰고, 그를 통해 귀스타브 플로베르 세나클을 소개받아 거기서 에드몽 드 공쿠르, 에밀 졸라, 도데 및 그당시 아직 작품이 출판된 적이 없었던 기 드 모파상을 알게 되었다.

제임스는 프랑스 작가들의 강렬함에 찬사를 보냈으나 그들의 '순수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 유감을 나타냈고, 투르게네프를 가장 가깝게 느꼈다. 그는 러시아 출신의 세계주의자로부터, 소설가는 '줄거리'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작중인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주인공의 인생경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의 견해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제임스는 프랑스를 매우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곳에서는 영원한 이방인이 될 것이라고 느껴 1876년말 런던으로 건너갔다. 피커딜리 번화가에서 떨어진 볼턴가의 작은 방에서 중년기의 주요소설들을 썼다. 1878년 로마에 온 한 미국인 바람둥이 여인의 이야기 〈데이지 밀러〉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주도적인 작가들의 주목을 받아 호턴 경의 아침식사에 정기적으로 초대받았으며, 그곳에서 앨프레드 테니슨, 윌리엄 글래드스턴, 로버트 브라우닝 등을 사귀었다.

사교계의 명사가 된 제임스는 1878, 1879년에 140번이나 정찬에 초대받았고, 빅토리아 시대의 수많은 명문 집안과 시골 귀족들의 저택을 방문했다. 또한 런던의 여러 클럽에 임원으로 선출되었고, 영국과 미국의 정기간행물에 소설을 동시에 출판했으며, 조지 메러디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에드먼드 고스 같은 작가들과 교제하는 한편, 제임스 맥닐 휘슬러와 존 싱어 사전트의 작업실에도 자주 들르는 친구였다. 이렇듯 제임스는 그의 친구인 시인이자 수필가이고 1880년대에 영국 주재 미국 대사가 된 제임스 러셀 로웰과 함께 영미 문단과 예술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았다.

제임스의 명성은 미국 여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기초해 있었다. 기지 넘치는 연작 이야기에서 그는 유럽 사회에서 미국적 표준을 고집하는, 대담하고 무모하며 순진한 '자수성가' 미국인을 그려냈다. 제임스는 그의 활동의 초기 단계를 걸작 〈어느 부인의 초상〉을 써냄으로써 마감했다.

이 작품은 편협한 지방색과 허세뿐만 아니라 독립심과 '자유 정신'까지 유럽으로부터 도입해, 빅토리아 시대 사회에서 단지 결혼대상으로서 취급받는 것을 거부한 올버니 출신의 한 젊은 여성을 그렸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국외자 사회로 이주해온 미국인들의 초상으로서, 이 소설은 현대소설사에서 필적할 대상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소설은 일군의 자기중심주의자들에 대한 뛰어난 연구이며, 동시에 미국적 인물에 대한 통찰력있는 평가를 제공했다. 또한 역사에 관한 맹목성과 자부심으로 제한된 자유와 평등의 이상, 종종 관용적인 형태를 취하는 사리추구, 이 관용이 권력행사로 해석되었을 때의 피해의식 등 미국의 신화적 통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인간관계에서의 힘에 대한 제임스의 이해는 심오했다.

중기경력

1880년대에 제임스는 사회개혁가와 혁명가를 다룬 2편의 소설 〈보스턴 사람들〉·〈캐서매시머 공작부인 The Princess Casamassima〉을 썼다.

보스턴 생활을 다룬 소설에서는 북부에 살고 있는 남부인을 통해 구현된 보수적인 남성기질과, 이에 격분해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참정권론자 사이의 갈등을 분석했다. 〈보스턴 사람들〉은 괴짜, 일시적 유행을 좇는 사람, '공상적 사회개혁가'들의 연구에 있어서 가장 풍부하고 원숙한 미국 사회소설로 남아 있다.

〈캐서매시머 공작부인〉에서는 당대 무정부주의자들의 폭력을 탐구하고, 경솔하게 혁명을 시도하다가 그것 때문에 파멸해가는 한 인간의 투쟁을 묘사했다. 이 두 소설 이후 발표한 〈비극의 여신 The Tragic Muse〉은 런던과 파리의 화단과 연극무대, 예술과 '세속' 사이의 갈등을 연구한 작품이다. 1890~95년 무대에서의 성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후 몇 년 간은 극작가로서의 경험을 소설에 적용해보려고 노력하면서 보냈다.

그결과 그의 이야기 서술방법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포인턴 저택의 수집품 The Spoils of Poynton〉(1897)·〈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What Maisie Knew〉(1897)·〈나사못의 회전 The Turn of the Screw〉(1898)·〈새장 안에서 In the Cage〉(1898)·〈미숙한 사춘기 The Awkward Age〉(1899) 등에서 제임스는 '묘사'와 극적 장면의 교체, 주어진 시각에 대한 긴밀한 집착, 등장인물들이 보는 것만 독자에게 알려주는 정보 억제하기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주제는 어린이의 발달된 의식과 도덕 교육인데, 이것은 사실상 부패한 세계 속의 순진성이라는 예전의 국제적 주제가 영국으로 무대를 옮긴 것이다.

말기경력

이러한 '전환기'의 실험은 제임스로 하여금 새로운 세기의 초반에 3편의 웅장한 소설을 쓰게 했는데, 이 작품들은 그의 말기의 '중요한' 시기를 대표한다.

이 소설들에서 제임스는 20세기 소설이 나아갈 길을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로 가득찬 무대를 자세히 묘사하는 사실주의자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에는 무대를 비교적 썰렁하게 내버려둔 채, 긴박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시각을 통해 그들의 극적 사건을 회상적으로 풀어가는 소수의 등장인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었다. 이러한 기술적 장치 외에 점차 암시적인 문체에 의존했는데, 이러한 문체는 압축되고 상징적인 비유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의 말기 '양식'은 타이피스트에게 직접 글을 받아쓰도록 한 사실에서 비롯되기도 했고, 또 일부는 융통성있는 산문 속에 주관적 경험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을 부단히 찾은 데서 비롯되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개인적 갈등 및 개인간의 갈등에 대한 협소한 연구로부터, 등장인물이 그속에서 자아확인과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와 문명에 대한 가치관으로 그의 독창적인 주제를 확대시켰다.

이 3편의 소설 중 첫번째가 〈사자들〉(1903)이었다. 이 소설은 부유한 가족이 보기에 외국에 장기간 체류하고 있는 한 젊은이를 매사추세츠의 산업도시로 다시 데려오기 위해 파리로 간 한 중년 미국인을 다룬, 미국-유럽풍의 본격희극이다.

이 소설은 나이 지긋한 주인공의 지각과 인식의 성장에 대한 연구이며, 뉴잉글랜드의 편협한 완고함과 대륙의 느슨한 도덕적 기준을 비교하고 있다. 2번째 소설은 〈비둘기의 날개 The Wings of the Dove〉로, 〈사자들〉보다는 나중에 씌어졌지만 1902년에 먼저 출판되었다. 런던·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멜로드라마적 주제를 다룬, 기품과 이성이 있으나 동시에 맹금이기도 한 선의의 인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연구이다. 마지막 소설 〈황금의 잔 The Golden Bowl〉(1904)은 간통에 관한 연구이다.

4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하는 이 이야기의 전반부는 귀족적인 남편의 눈을 통해, 후반부는 그 아내의 발전하는 의식을 통해 조명된다.

이 세 소설들은 단순한 '줄거리'나 '등장인물' 또는 멜로드라마적 주제를 초월한다. 〈사자들〉의 희극에서, 〈비둘기의 날개〉의 멜로드라마적 구성에서, 그리고 〈황금의 잔〉의 본격희곡에서 제임스는 인간의 사생활과 자유, 도덕적·정신적 '통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 의해서만 존속할 수 있는 결점투성이의 문명을 지속적으로 묘사했다.

이 소설들은 단지 서양사회의 생존방식에 대한 '철학적' 연구일 뿐 아니라, 서양인은 비록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혼돈된 상태의 인간을 인간답게 형성해온 틀과 전통을 육성해야 하고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인위적 장치들을 소중히 해야 한다고 암시하는 사회윤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임스는 뒤늦게 명예를 얻어, 옥스퍼드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미국문학예술협회 회원에 선출되었으며, 1905년 미국문화예술원에 임원으로 선발되었다.

1915년 영국으로 귀화한 직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영국의 투쟁에 도덕적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조지 5세로부터 공로훈장을 받았다. 제임스가 죽은 후 그의 유해는 미국으로 운반되어 케임브리지 공동묘지 안에 있는 제임스 일가의 묘소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대서양 양편의 한 세대를 해석해낸 사람'이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평가

제임스의 경력은 미국 문학사상 가장 길고, 가장 결실이 풍성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처음부터 산문소설의 대가였던 그는 소설의 형식을 확대하고 매우 개성적인 방법과 문체를 뚜렷이 아로새긴 창의력 넘치는 혁신가였다. 그는 51년 동안 20편의 소설과 112편의 단편, 12편의 희곡, 여러 권의 여행기와 평론집, 방대한 분량의 기고문을 남겼다. 그는 문학의 범주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서양 횡단 문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외국인들이 갖고 있던 미국에 대한 신화적 통념을 인식했고, 그 통념의 구체화를 도왔으며, '국제적 소설' 속에 완성의 경지에까지 이 신화를 융합시켰다.

그의 근본 주제는 신세계의 순진성과 구세계의 부패 및 지혜, 양자간의 충돌이었다. 활력이 넘치고 민주적인 미국이 외국의 귀족문화와 대결하고 있다고 본 그는 미국의 장래와 20세기의 세계 강국으로서 미국이 직면하게 될 여러가지 도덕적 문제에 대해 예언자적인 의식을 갖고 우려를 나타냈다.

제임스의 명성은 그의 생애 동안으로 한정되었다.

1943년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 이후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 그는 더욱 폭넓은 독자층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었으며, 1960년대 말경에는 이전의 많은 소설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장인 중 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의 내적 삶, '마음 속에 오가는 환상적' 삶에 대한 묘사는 그를 20세기 '의식의 흐름' 운동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독창성, 문체의 독특함, 창의성의 측면에서 그는 사심없는 미국 예술가의 전형이자 '소설가 중의 소설가'이다.

20세기 중반 이래 그는 최고수준의 작가로서, '문화 영웅'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했다. 국외이주, 시민권의 포기로 인해 예전에 미국인들이 보였던 적대감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그가 '구상주의자'로 시작해 현대적인 인상주의자·상징주의자로 끝맺은 위대한 창의적 인물이라는 데 미국·영국의 비평계가 이례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 그레이엄 그린, 조지프 콘래드,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은 서로 성격이 매우 달랐으면서도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 현대의 소설 비평계는 그를 위대한 이론가로 여기고 기본적인 용어의 대부분을 그로부터 도출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