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미 모토키요

제아미 모토키요

다른 표기 언어 Zeami Motokiyo , 世阿彌元淸
요약 테이블
출생 1363/64, 일본
사망 1443. 9. 1
국적 일본

요약 일본 노[能]의 으뜸 가는 연기자·작가·이론가.
본명은 오니야샤[鬼夜叉].

제아미는 세아미라고도 한다. 뒤에 후지와카[藤若]라고도 했으며 간제 모토키요[觀世元淸]라고도 한다. 아버지 간아미[觀阿彌 1333~84]와 함께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노를 완성시켰다.

는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쇼군[將軍]의 후원을 받아 과거의 조잡한 요소를 없애고 복잡한 귀족극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1374년 그가 보는 앞에서 공연한 뒤 총애를 받았다. 제아미는 아버지가 죽자 노의 제1인자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창시한 뒤로 줄곧 커다란 영향을 미친 간제파를 이끌었다. 또 연기를 계속하면서도 많은 작품을 썼는데, 오늘날 공연되는 약 230편의 노 가운데 절반 가량, 특히 걸작의 대부분은 그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1422년 그는 선종(禪宗) 수도승이 되었고, 그의 아들 모토마사[元雅]가 그를 계승했다. 그러나 1429년 쇼군이 된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敎]는 제아미의 조카 온아미[音阿弥]을 총애하고 모토마사가 자기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432년 모토마사가 죽고나서 1434년 요시노리는 제아미를 추방했는데, 1441년 그가 죽자 교토로 돌아왔다.

그는 제자들을 위한 교본으로 쓴 책들(가장 중요한 책은 흔히 〈가덴쇼 花傳書〉라 하는 〈후시카덴 風姿花傳〉[1400~18]임)에서 말하기를, 배우는 3가지 기본 배역인 무사·여인·노인 역을 각기 어울리는 노래와 춤과 함께 통달해야만 한다고 했다. 노의 연기에서 중요한 2가지 요소는 '행동의 모방', 즉 재현적 측면인 모노마네[物まね : 흉내]와 상징적 측면이자 정신적 핵심인 유겐[幽玄 : 그윽함]이다. 이중 후자가 더 중요하며 노의 우수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제아미는 '유겐의 본질은 참된 아름다움과 은은함'이며,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만은 아니라고 썼다. 이는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극의 주제와 배우의 고상한 몸짓 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세계를 의미했다. 간아미가 쓰고 제아미가 개작한 〈마쓰카제 松風〉와 같은 노에는 신비스런 고요함이 있다. 제아미가 쓴 다른 노극은 유겐의 요소가 적고 움직임이 많아서 때로는 사실적이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