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표기 언어 동의어 사루가쿠 노, 猿樂能

요약 일본의 전통적인 연극형식.

노(No theatre)
노(No theatre)

현존하는 연극 중에서 세계 최고의 것 중 하나로 손꼽힌다.

'재능' 또는 '솜씨'를 의미하는 말인 노는 서구의 이야기체 연극과 다르다.

노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서구적 의미의 배우나 연기자와는 달리, 이야기의 내용을 연기한다기보다는 이야기의 핵심적 요소를 암시하기 위해 시각적 외양과 동작들을 사용한다. 또한 노에서는 거의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 효과를 내는 것은 진행되는 행위보다는 주로 직유나 은유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줄거리는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배우들의 대사와 동작 속에서 일본의 문화사에 대한 상징과 미묘한 암시를 감상할 수 있다.

노는 고대 무용극과 12~13세기에 신사(神社)나 절에서 벌어지던 다양한 형태의 축제극에서 발전한 것이다. 14세기에 들어오면서 독특한 형식을 갖추게 된 노는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1603~1867]를 통해 계속 다듬어졌다. 노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무사계급을 위해 직업 배우들이 벌이는 의식극(儀式劇)이 되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 지배층의 안녕과 장수(長壽), 번영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귀족 이외에 평민들이 구경할 수 있는 공연도 있었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봉건질서가 붕괴되면서 노 역시 존립의 위협을 받게 되었으나 몇몇 저명한 배우들에 의해 그 전통이 유지되었다. 노가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뒤 교육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노에는 5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신사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가미[神] 극, 둘째, 무사들을 주로 다루는 슈라모노[修羅物], 셋째,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가쓰라모노[鬘物], 넷째, 내용상 전설적이고 초자연적인 이야기보다는 당대의 사실주의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겐다이모노[現代物]와 애인이나 아이를 잃고 미쳐버리는 여주인공이 나오는 교조모노[狂女物], 다섯째, 마귀나 괴상한 짐승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기리노[切能]·기치쿠모노[鬼畜物]가 그것이다. 전형적인 노는 비교적 길이가 짧은 편이며 대사 역시 매우 적고 동작이나 음악을 위한 하나의 틀에 불과하다.

표준적인 노는 예술적인 조화와 훌륭한 분위기를 이루어내기 위해 앞의 5가지 유형 중에서 선택한 3개의 연극으로 구성되며 마지막 부분은 항상 기리노로 장식한다. 희극 단막극인 교겐[狂言]은 막간(幕間)에 공연된다. 공연은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원을 춤의 형태로 보여주는 오키나[翁]로 시작된다(교겐).

노에는 3개의 주요 배역이 있다.

주연 배우인 시테[仕手], 조연 배우인 와키[脇], 교겐의 배우들이 그것인데, 교겐의 배우 중에는 노에서 나레이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각각의 연기자들은 독자적인 유파를 이룰 정도로 전문성을 지니고 있고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장소도 서로 다르다. 이밖에 보조 배역으로는 시종인 쓰레[連れ], 어린이역을 하는 고카타[子方], 대사없는 단역 배우인 도모[供]가 있다.

음악은 북·대고(大鼓)·소고(小鼓)·피리 등 4가지 악기로 연주되는 기악합주인 하야시[囃子]와 8~10명의 가수로 이루어진 합창단인 지우타이[地謠]가 맡는다.

낭송인 우타이[謠]는 노 공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그 적용이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대본의 각 부분들은 낭송이나 여기에 수반되는 동작 또는 춤의 방식을 지시한다. 대사와 노래에는 각각 고유의 이름이 있다. 사시[差し]는 레치타티보[敍唱]와 비슷한 것이고, 우타[歌]는 원래 의미대로의 노래를, 론기[論議]는 합창단과 시테 사이에서 서로 번갈아 노래를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기리[切リ]는 연극이 끝날 때 나오는 합창이다.

현재 2,000여 편의 노 대본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그중 230여 편이 지금도 공연되고 있다. 제아미 모토키요[世阿彌元淸:1363~1443]와 그의 아버지 간아미 기요쓰구[觀阿彌淸次:1333~84]는 노 대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전형적인 것들을 많이 썼는데, 간아미의 〈마쓰카제 松風〉와 제아미의 〈다카사고 高砂〉를 그중에서 걸작으로 꼽는다.

제아미는 수세기에 걸쳐서 노 연기자들이 따랐던 원칙들을 체계화시켰는데, 그의 작품인 〈가쿄 花鏡〉(1424)는 창작법, 낭송법, 배우들의 몸짓·춤, 연출지침을 상세하게 밝혀놓았다. 이것들이 노의 첫번째 주요원칙이 되었으며 제아미는 이를 모노마네[物眞似], 즉 '사물의 모방'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묘사할 인물로서 전설이나 전기에서 고전적인 인물을 적절하게 고르도록 권했으며, 시각적·선율적·언어적인 것을 적절히 통합시킴으로써,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 지고한 아름다움인 유겐[幽玄]의 경지에 이르게 할 것을 강조했다.

유겐은 그가 노의 2번째 주요 원칙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다. 문자 그대로 '어둡고 어렴풋하다'는 뜻의 유겐은 관객이 한눈에는 거의 알아볼 수 없고 단지 부분적으로만 깨닫게 되는 아름다움을 암시하고 있다.

노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도 상당부분 초기의 형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낭송·춤·동작·음악을 상세하게 지시하고 있는 대본이 보존되었기 때문이고, 둘째, 공연기법들이 직접적이고도 꽤 정확하게 전수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노 역시 새로운 관객들의 기호, 진보된 참신한 양식과 유형에 맞추어 변화해왔다.

또한 노의 목표를 더욱 명확하고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표준형식들을 세련되게 다듬어나갔다. 그러나 이것들은 전통적인 형식에서 약간만 벗어났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시테 배우들의 5가지 유파간의 차이도 낭송의 음조 및 동작, 춤의 형태상 나타나는 약간의 변화에 불과했다.

20세기에 들어오자 몇 가지 실험적 기법들이 시도되었다.

도키 젠마로[土崎善磨]와 기타 미노루[喜多實]는 내용적으로는 새롭지만 그 표현방식에서는 전통적인 관례를 벗어나지 않는 노를 많이 만들었다. 한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옛 연극을 선택하여 그 주제는 유지하면서 새로운 변형을 가했다. 이밖에 희극적인 막간극인 교겐을 정교화시키거나, 가부키 식으로 관객들 사이를 지나서 무대에까지 이르는 긴 통로를 만들거나, 시테에게 강한 스포트 라이트를 비추게 한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전후(戰後)에 노는 단지 '고전적 연극'으로서 뿐만 아니라, 완벽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현대적 무대예술로서 감상하기 위해서 오는 관객들에 의해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