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신앙과 전제주의와 국민성

정교신앙과 전제주의와 국민성

다른 표기 언어 Pravoslaviye, samoderzhaviye, i narodnost

요약 1833~49년 러시아 제국의 교육장관을 지낸 세르게이 S. 우바로프 백작이 1832년에 주창한 구호.
(영). Orthodoxy, Autocracy, and Nationality.

이는 니콜라이 1세(1825~55 재위) 치하 러시아 제국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를 대표했으며 제국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정부 정책의 지도적 원칙으로 남아 있었다.

우바로프는 모스크바대학교와 중등학교(gymnaziya)의 교육상황에 대해 니콜라이 1세에게 보고서를 보내면서 이 구절을 언급했다. 여기서 그는 러시아 제국의 앞으로의 교육 계획은 정교회의 가치와 전제정치, 그리고 러시아인들의 민족적 특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건의했으며, 이것은 러시아 사회를 서구 사회와 구별하는 한편 서유럽의 타락한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근본적인 요소라고 여겼다(→ 교육사).

이같은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러시아 교육의 근간을 이루게 되면서 직업교육을 비롯해 신학과 고전 연구에 큰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서유럽의 타락한 사상들을 러시아로 들여오는 가장 주된 매개체로 여겨졌던 철학은 교육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교육계 밖에서는 출판물에 대해 엄격한 검열을 했는데, 이것은 전제정치를 유지하기 위한 결정적인 관건이었다.

더욱이 '정교신앙·전제주의·국민성'이라는 구호에 공식적으로 집착하게 되면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대의명분에 자극을 주었다(그러나 황제는 전적으로 이를 승인하지는 않았음).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정부 공무원을 비롯해 다른 중요한 요직에 있었다. 이들은 '국민성'이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민족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해 제국의 비러시아계 지역 학교에서 러시아화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비정교회 종교집단에게 정교회로 개종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여러 가지 권리 제약 조처를 통해 다른 비러시아계 민족 집단들을 억압했다.

이들 민족주의자는 정부로 하여금 민족적 자치를 이룩하려는 다른 슬라브 민족들의 노력에 지원을 보내게 했으며, 그로 인해 슬라브인들이 많이 사는 발칸 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의 주요동맹국 중의 하나였던 오스트리아와 경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