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정곡

정과정곡

다른 표기 언어 鄭瓜亭曲

요약 고려시대 정서가 지은 고려가요.

고려가요 중 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진 유일한 노래로 충신연주지사이다. 〈고려사〉 권71 악지 2에 노래의 제작동기와 이제현의 한역시가 전한다. 가사는 〈악학궤범〉 권5의 〈학연화대처용무합설 鶴蓮化臺處容舞合說〉조에는 '삼진작'이라는 명칭으로, 〈대악후보 大樂後譜〉에는 진작 1·2·3이라는 명칭으로 실려 있다. 그밖에 정과정가·과정곡·과정계면곡이라고도 부른다.

정서가 인종의 총애를 받다가 의종이 즉위하자 동래로 유배를 당했다. 왕은 그를 보내면서 "지금 가 있으면 오래지 않아 조정의 의론이 있어 마땅히 소환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적소에 오래 머물렀는데도 왕의 부름이 없었다. 정서는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하기 위해 거문고를 타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따라서 창작시기는 정서가 동래에 귀양 가 있었던 1151(의종 5)~57년일 것으로 추정된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삼진작이 연주되면 기생이 이 가사를 창했다고 한다. 악곡상 삼진작이 연주될 때 그 가사로 〈정과정곡〉이 얹혀지므로 〈정과정곡〉을 삼진작이라고 통용해 부른다. 따라서 진작은 음악적 명칭이고 〈정과정곡〉은 문학적 명칭이 된다.

삼진작에서의 3과 진작 1·2·3에서의 1·2·3은 성음의 완급 정도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형식은 음악적 분절 면에서 보면 3개의 강(腔)과 8개의 엽으로 이루어진 11구이며, 내용적 분절 면에서 보면 10구이다. 10구라는 점에서 10구체 향가의 잔존 형태로 보고 있다. 향가의 10구체에서는 '아야' 등의 감탄사가 제9구 처음에 등장하는데 이 노래에서는 제10구 처음에 '아소 님하'로 등장한다. 이것은 시가의 종결 서두에 감탄사를 두는 우리 시가 전반의 경향과 일치하는 형식적 특징이다.

"내님믈 그리이미지와 우니다니/산졉동새 난 이슷이미지요이다"에서는 님을 그리며 우는 자신의 모습이 접동새와 비슷하다고 했다. "아니시며 거츠르신이미지 아으/잔월효성이 아이미지시리이다"에서는 님이 나를 아니[非]라 하시며, 거짓이라 하여도 그렇지 않은 것을 잔월효성이 알 것이라고 했다. "넉시라도 님은 이미지이미지 녀져라 아으/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에서는 넋이라도 님과 함께 있고 싶으나 자신의 충정을 믿지 못하고 우기시던 사람[벼기더시니]은 곧 님이었다고 원망의 감정을 표현했다.

"과(過)도 허믈도 천만 업소이다/이미지힛 마러신뎌/살읏븐뎌 아으"에서 후 2구의 해석은 구구하다. "이미지힛 마러신뎌"는 '묻 참언, 멀리 말으시오, 말씀 헛 말으소서, 말짱한 말이었구나(거짓말이었구나)' 등의 해석이 있으며, "살읏븐뎌"는 '아뢰옵나이다, 슬프구나, 사라지고 싶습니다' 등의 해석이 있다. "니미 나이미지 하마 니이미지시니잇가/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에서는 님이 나를 잊으실 리 없음을 강조한 후 직설적으로 님의 사랑을 바란다고 노래했다.

충신연주지사의 대표적 노래로서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널리 불려졌다. 형식면에서 향가와 시조·가사를 이어준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