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리아

일리리아

다른 표기 언어 Illyria

요약 발칸 반도의 북서부지역.

BC 10세기경부터 인도유럽인에 속하는 일리리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이들은 그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도나우 강에서부터 아드리아 해에 있는 암브라시아 및 아드리아 해 건너 샤르 산맥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할슈타트 문명(→ 할슈타트)의 일리리아인들은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졌으며, 각 부족들은 원로들과 지도자 1명을 선발하여 그들로 구성된 의회를 갖춘 자치지역을 이루었다. 그러나 족장의 세력이 강할 경우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하나의 왕국을 만들기도 했다.

최후의 왕국이자 가장 유명한 왕국인 일리리아 왕국은 스코드라(지금의 알바니아 슈코더르)를 수도로 삼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통치자는 BC 3세기 후반의 아그론 왕으로 BC 231년 그는 마케도니아의 디미트리오스 2세와 연합하여 아이톨리아인들을 물리쳤다. 그가 갑자기 죽고, 그의 아들은 어려서 미망인 테우타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테우타 여왕은 일리리아 해군 병력 가운데 일부를 동원하여 시칠리아와 그리스의 여러 해안 식민지를 침략했는데, 이러한 행위에 화난 로마는 결국 대규모 함대를 아드리해 동쪽 해안지대에 파견했다.

BC 228년 테우타가 항복했으나 왕국의 내륙지대는 건재했다. 그후 BC 219년에 로마는 제2차 해군 원정대를 파견했다. 이웃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가 일리리아 왕국을 도와 전쟁에 가세하여 전쟁이 오래갔으나 결국 발칸 반도 전체를 로마에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일리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 겐티우스가 BC 168년에 항복했다.

로마의 속주 일리리쿰은 그 영토가 남쪽의 드릴론 강(지금의 알바니아 드린 강)에서부터 북쪽의 이스트리아(지금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영토)와 동쪽의 사부스(사바) 강까지 이르렀으며, 행정중심지는 달마치야 살로나이(지금의 스플리트 근처)였다. 도나우 강 유역을 따라 로마 제국의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일리리쿰은 달마치야 속주와 판노니아 속주로 나누어졌다.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서 일리리아는 번영을 누렸다. 로마 가도가 이 지역을 가로질렀으며, 이곳 항구들은 로마와 오늘날 동유럽 여러 지역 사이의 주요교역 및 교통의 연결지점이 되었다. 이 지역의 여러 곳에서 구리·아스팔트·은 등이 채굴되었으며, 일리리아 포도주 및 기름·치즈·물고기 등을 이탈리아로 수출했다. 반자치를 누리던 일리리아 고지대의 사람들이 용감하여 황제들은 이들을 징집하여 로마 군단이나 심지어는 근위대에서 복역하게 했다.

BC 3세기에 로마 제국이 오늘날 유럽 동부 및 중부 지역에 거주하던 미개인들로부터 위협받기 시작하자 일리리아는 고대 로마의 영토와 문화의 중요한 보루가 되었다. 클라우디우스 2세 고티쿠스, 아우렐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포함하여 로마 제국 말기의 유명한 황제들 가운데 여러 명이 일리리아인이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격전지의 군단 자체 내에서 선발되어 나중에 원로원(세나투스)의 승인을 받았다.

395년 마침내 로마 제국이 분열되었을 때 드리누스 강(지금의 드리나 강) 동쪽의 일리리아는 동(東)로마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3~5세기에 서고트족과 훈족이 침입해왔으나 그들은 이곳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6세기에 발칸 반도에 침입하기 시작한 슬라브족은 7세기말에 이르러 일리리아의 다수 민족이 되었다. 크로아티아·세르비아·달마치야·보스니아·몬테네그로·마케도니아의 여러 지역이 일리리아어를 잃어버리고 완전히 슬라브족화 되었으며, 알바니아인들만이 고대 일리리아인의 직계 후손으로 남게 되었다.→ 발칸 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