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

이옥

다른 표기 언어 李鈺 동의어 기상, 其相, 문무자, 文無子
요약 테이블
출생 1760(영조 36)
사망 1812(순조 12)
국적 조선, 한국

요약 조선 후기의 문인. 일상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썼다. 대표작으로 <심생전>, <유광억전>이 있다.

문체반정에 걸려 억압받고 불우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단적인 문학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 한문단편에서는 박지원과 맞먹는 경지에 이르고, 민요시 개척에서는 정약용과 함께 가장 앞선 성과를 보여주어 한문학 혁신의 2가지 방향을 주도했다. 본관은 연안. 자는 기상, 호는 문무자·매사·매암·경금자·화석자.

가계나 생애를 밝혀줄 만한 자료가 없으며, 지금 알려진 자료는 친구 김려의 문집 발문과 지은이의 글뿐이다. 어렸을 때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30세 전후로 서울에서 성균관의 유생으로 있었다. 박지원의 제자 세대로, 박지원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지는 않았으나 정조의 문체반정에 따르지 않았다. 실록에는 이때 그가 소설문체를 써서 선비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으므로 정조가 문체를 개혁한 뒤 과거를 보게 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과거에서도 문체를 고치지 못하자 그는 영남 삼가현에 이적되었으며, 뒤에도 같은 문제로 다시 삼가현에 머물러야 했다. 그 뒤로는 본가가 있는 경기도 남양에서 저작활동에 힘썼다.

그는 유기론의 사고체계를 갖고 가치의 원천을 이(理)가 아닌 기에서 찾았다. 그래서 성현의 도리나 고문의 규범을 벗어나 현실을 직접 경험하고 인식해야 진실에 이른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 겪은 바를 그대로 나타내면 고전적인 명문과 겨룰 만한 새로운 문학이 이룩될 수 있다고 했다.

이옥의 전은 23편으로 박지원의 작품보다 많고 등장인물과 사건이 훨씬 다양하다. 그 가운데 〈심생전 沈生傳〉은 사대부 잡안의 청년이 중인 계급의 처녀를 사랑하다가 둘 다 비참하게 된 사연을 다루어 신분질서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유광억전 柳光億傳〉에서는 과거 답안지를 지어 파는 사람이 자기는 급제하지 못하는 처지를 다루면서 세상에 못 팔 물건이 없게 된 상황을 그렸다. 그밖의 작품들에서도 사기꾼, 협객, 기인, 가객, 여염집 아낙네 등을 주인공으로 삼아 세태와 인정의 다양한 모습을 그렸다.

박지원이 한정된 소재에 고도의 표현 능력을 발휘했다면, 이옥은 흔히 있는 이야기를 받아들여 수법보다는 내용이 앞서는 작품을 내놓았다. 구전설화와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면서 단편소설의 성향을 즐겨 받아들였다. 이옥의 시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합리화될 수 없을 정도로 관습에서 어긋났다. 남녀관계에 대한 민요를 한시로 옮긴 〈이언집〉에서는 〈삼난 三難〉이라는 제목의 긴 서문을 앞세워 자기는 조선사람이므로 중국풍의 국풍, 악부, 사곡이 아닌 이언을 짓는다고 했다. 하층민의 남녀관계를 여성적인 감각으로 노래하는 것이 조금도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했고, 우리말의 어휘와 어법을 대담하게 살려서 한문으로 새기면 말이 되지 않는 문구를 쓰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한문으로 창작된 유일한 희곡 〈동상기 東廂記〉도 이옥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백화가 섞인 한문이라 읽기 어렵고 연극으로 공연할 수 없었다. 지은이의 다양한 취향을 알려주므로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