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니아노스 2세

유스티니아노스 2세

다른 표기 언어 Justinianus II
요약 테이블
출생 669경
사망 711. 12,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국적 비잔틴

요약 이라클리오스 왕조의 마지막 비잔티움 황제.
(영). Justinian Ⅱ. 별칭은 Rhinotmetus.

전제 군주의 기질과 잔인한 성향을 지녔으나, 여러 면에서 유능한 통치자였던 그는 슬라브족에게 점령되어 있던 마케도니아에 있던 제국 영토를 회복했다. 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4세가 685년 9월에 죽자 그는 16세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다. 재위 초기에 아랍인들과 조약을 체결하여 조공을 더 많이 늘려 받고 키프로스·아르메니아·조지아 등지의 주권을 공유하기로 동의했다.

688~689년에 그가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에 있는 슬라브족 점령지에 대한 원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에 따라 많은 슬라브인이 비잔티움 군대에 징발되거나 소아시아에 군인 겸 농부로서 정착했다. 그러나 키프로스에 대한 정책에 불만을 품은 아랍인이 동부 국경을 침공했다. 691~692년 아랍인들은 세바스토폴리스에서 비잔티움군을 격파하고 비잔티움의 아르메니아 영토를 점령했다.

국내에서 유스티니아노스는 퀴니섹스트 공의회를 개최하여 제5·6차 범그리스도교 종교회의의 교회법을 보완하는 원칙을 제정했다. 교황 세르지오 1세가 그 원칙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교황과 유스티니아노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났다. 황제의 잔혹한 정책과 그의 재정 담당관리들의 무자비한 착취로 인해 695년 반란이 일어나고 새로운 황제가 선포되었다.

유스티니아노스는 코를 잘리고(그후로 리노트메투스란 별칭을 얻었음) 크림 반도에 있는 케르손 지방으로 추방되었다. 몇 년 후에 신임황제 티베리우스 2세 압시마르가 자기를 체포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유스티니아노스는 이라클리오스 왕조와 오랫동안 선린관계를 맺어온 하자르족의 칸[汗]에게로 도망쳤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노스가 하자르 칸의 누이와 결혼한 직후에 칸은 비잔티움 황제에게 매수되어 유스티니아노스를 살해하려 했다. 아내에게서 미리 경고를 받은 유스티니아노스는 불가리아 왕국으로 도망갔다. 불가리아 왕국의 칸과 군대의 지원을 받은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진격하여 이를 점령하고 다시 한번 황제로 선포되었다(705).

유스티니아노스의 2번째 재위 기간의 특징은 교황청과의 화해정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콘스탄티노스 교황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방문함으로써(710~711) 더욱 공고해졌다. 그러나 황제는 반대자들에 대한 복수의 일념에 사로잡혀 대량학살을 감행함으로써 이전에 자신을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711년 하자르족의 지원을 받은 반란이 케르손에서 일어났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바르다네스(필리피쿠스로서 재위)가 새로운 황제로 선포되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여 점령했다. 유스티니아노스와 그의 가족은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