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공산주의

유럽 공산주의

다른 표기 언어 Eurocommunism

요약 1970~80년대 소련 공산당의 독트린으로부터 독립하려 했던 유럽의 몇몇 공산당의 경향.

유럽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1970년대 중반에 생겼는데 스페인의 공산당 지도자 산티아고 카리요의 〈유럽 공산주의와 국가 Eurocommunismoyestado〉(1977)가 출판된 후 대중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독립정신은 이미 오래 전에 정권을 장악하지 못한 유럽 공산당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공산당의 독립정신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사회주의적 정강을 내린 인민전선의 성장과 1948년부터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보여준 경향에 의해 크게 고무되었다. 1956년 헝가리 탄압과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과 같은 스탈린 정권의 폭정과 소련의 진압책에 직면하여 서유럽 국가의 많은 공산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과 거리를 두면서 독자적인 정책추구와 자율성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했다.

이런 움직임에는 유럽의 정치·사회 환경도 한몫을 했다. 당시 서유럽의 여론은 단연 반(反)소·반공이었다. 따라서 유럽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럽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과의 지부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바람직한 상황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서유럽 공산당들의 토대인 육체노동자들이 종사하던 노동집약적 산업이 사양화하는 반면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사상을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사하는 서비스와 기술집약적 산업이 성장하고 있었다. 유럽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여전히 신봉하는 것같이 보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식 선전 선동을 될 수 있는 한 자제하려고 했다.

유럽 공산주의 운동은 모든 공산당을 하나로 통일된 세계 공산주의 운동에 종속시키려는 소련의 교조주의를 공공연히 배격하면서, 각 공산당의 정책은 자국의 전통과 필요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회주의 수립은 오로지 합법적인 정치 수단과 자유 선거를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혁명의 필연성은 은연중에 또는 명시적으로 포기했으며, 서구적인 의회 민주주의를 진정한 공산주의 정부의 필수 조건으로 수용했다. 여기에다 비슷한 사회경제 정책을 추구하는 정당들과의 다원적 제휴를 찬성했으며 무신론은 공산주의의 본질적 요소라는 주장을 배격하는 동시에 소련식의 마르크스-레닌주의도 거부했다.

포르투갈·그리스·키프로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공산당이 여전히 15~25%의 득표를 하면서 호조를 보이고 있었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아직도 19세기에 뿌리를 박고 있는 구노동자와 농촌의 상황을 크게 변화시킬 만큼 새로운 산업이 발전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달랐다. 예를 들어 벨기에 공산당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한때 제3당의 지위를 차지할 만큼 당세가 신장되었으나 점차 미국이나 영국의 공산당보다 나을 것이 없는 약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스페인의 경우 1975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죽은 후 1920년에 창설된 스페인 공산당이 재출현했지만 불과 2, 3년 만에 여러 파당으로 분열되었다.

또한 유럽 공산주의의 대부격인 카리요는 비록 당의 주류가 '비동맹'을 선언했지만 그는 당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1980년대초에 이르자 스페인 공산당은 선거에서 총투표의 5%도 얻지 못하는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으며 유럽 공산주의 정신도 붕괴되었다. 모스크바는 '비동맹' 스페인 공산당을 일축하고 친소적인 파당인 공산당(Partido Comunista)이라고 불리는 조직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과거 비동맹적 당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이그나치오 갈레고가 조직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전쟁직후 한때 총투표 가운데 약 1/3을 득표할 정도로 강력했던 프랑스 공산당이 시일이 지나면서 현저하게 쇠퇴했다. 조르주 마르셰 당수와 그의 동료들은 1970년대말 잠시 동안 유럽 공산주의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프랑스 공산당의 득표율은 총국민투표의 1/8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 공산주의의 불운한 결과에서 예외적인 대표적인 경우는 이탈리아 공산당(1991년 이탈리아 좌파민주당으로 개명)이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제2정당의 위치를 지켰고 모스크바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친소적인 프랑스 공산당보다는 서독의 사회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네덜란드 및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더 많은 이해와 접촉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동유럽 공산주의 정당들은 대부분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탈바꿈했고, 그 결과 유럽 공산주의가 일반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