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 저널리즘

옐로 저널리즘

다른 표기 언어 yellow journalism

요약 신문 발행시에 더 많은 독자를 끌고 부수를 늘리기 위해 야비하고 저속한 특정기사나 선정적인 뉴스에 역점을 두는 보도나 논조.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이 용어는 1890년대에 뉴욕 시의 〈월드 World〉지와 〈저널 Journal〉지 간에 벌어진 치열한 경쟁에서 사용된 술수들을 지칭한 데서 생겨났다.

조지프 퓰리처는 1883년에 뉴욕의 〈월드〉지를 인수하여 화려하고 선정적인 기사와 대대적인 선전을 통해 미국 최고의 발행부수를 확보했다. 1895년 캘리포니아 광산재벌의 아들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뉴욕 시로 옮겨와 경쟁지인 〈저널〉지를 인수하면서 퓰리처의 아성에 도전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이그재미너 Examiner〉지를 대규모 발행부수로 대단히 성공적인 신문으로 만든 경력이 있었던 허스트는 선정주의와 홍보, 일요특집판 등을 이용하여 경쟁지들을 물리쳐 뉴욕 시에서도 같은 업적을 이룩하고자 했다.

그는 편집진의 일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려왔으며 또 일부를 퓰리처의 신문에서 스카우트해왔다. 그 가운데 〈선데이 월드 Sunday World〉에 대대적인 인기를 끌던 연재만화 〈옐로 키드 The Yellow Kid〉를 그린 시사만화가 리처드 F. 아웃콜트도 있었다. 아웃콜트의 변절 이후 〈월드〉지의 만화는 조지 B. 룩스가 그렸는데 두 경쟁지의 연재만화가 사람들의 열띤 관심거리로 등장하면서 두 신문간의 경쟁은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지칭되었다.

이러한 총력적인 경쟁과 그에 따른 판매촉진방법들은 두 신문의 발행부수를 크게 늘렸으며 또한 미국 여러 도시의 신문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옐로 저널리즘 시대는 20세기로 접어든 직후 〈월드〉지가 점차 선정주의적 경쟁에서 물러서면서 종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옐로 저널리즘 시대의 몇 가지 기법, 예를 들면 전단표제라든가 천연색 만화, 풍성한 화보 등은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