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예배당

다른 표기 언어 chapel , 禮拜堂

요약 규모가 작고 개인적인 예배장소.

원래는 프랑스 왕들이 성 마르티누스의 망토(cape : 후기 라틴어로는 'cappa'의 축소형인 'cappella')를 보관해둔 성소를 가리켰다.

전승에 따르면, 투르의 성 마르티누스(316경~397)가 누더기를 걸친 거지와 나누어 입기 위해서 이 망토를 두 쪽으로 찢었는데, 후에 그는 꿈에 망토 반쪽을 걸치고 있는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한다. 그뒤 이 옷은 성유물로 보관되었고, 프랑스 왕들이 원정을 떠날 때 가지고 갔다. 이 용어는 뜻이 확대되어서 성유물을 갖고 있는 모든 성소를 가리키게 되었고, 이러한 성소의 사제를 가리켜 카펠라누스, 즉 주임사제(chaplain)라고 했다.

그뒤 뜻이 더욱 확대되어 모교회(母敎會)가 아닌 수많은 잡다한 시설들을 포함하는 모든 예배장소를 가리키게 되었다. 이 단어가 원뜻과 가장 가깝게 쓰이는 예는 궁정에 붙은 개인예배당이었던 오라토리를 가리키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파리에 있는 궁정예배당 생트샤펠(1248)은 성 루이 9세가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성유물(가시면류관으로 생각됨)을 안치하기 위해서 지었으며, 다음 세기에는 부르주·리옹과 그외 지역에서 프랑스 왕가 출신 제후들이 생트샤펠을 세웠다.

중세에는 성모 마리아 숭배가 널리 퍼져서 14세기말에는 서유럽 대부분의 대교회들은 마리아 부속 예배당을 두었다(마리아 부속 예배당). 대부분의 수도회들이 이러한 부속예배당을 도입했으며, 본당 및 대성당의 재속(在俗) 성직자들이 곧 그들의 본을 따랐다.

13세기에는 많은 대성당들과 수도원 교회들이 방사형으로 된 다각형 예배당의 반원형 부분, 즉 슈베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예배당을 다시 설계했다. 이 도면은 일드프랑스 지역(랭스·아미앵·르망)에 자리잡은 대교회당들의 표준이 되었고, 영국에서는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과 캔터베리 대성당이 이를 따랐다.

성 사투르니누스는 툴루즈에 좁은 통로들로 연결된 5각형 예배당을 17개 이상 갖고 있었다.

중세말에는 기증자가 사후에 자신을 위해 미사 찬송을 부를 수 있도록 '챈트리'라는 특별예배 장소를 많이 짓고, 수많은 길드, 즉 동호단체들이 따로 공동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도시 교회들에 부속 예배당을 짓는 등 2가지 혁신이 일어나 예배당들이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길드들이 세운 예배당은 네이브[身廊] 양편을 따라 길게 배열된 형태를 취했으며, 교회당 안에 있는 경계벽들을 담으로 삼아 세우거나 버팀벽들 사이에 세웠다.

웨스트미들랜드 코번트리에 있는 '구(舊)세인트마이클 대성당'(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됨)은 뚜껑제조업자·염색업자·직물상·포목장사·혁대제조업자·금속세공업자의 예배당으로 확장되었다. 개인적인 예배를 위해 만든 부속예배당은 가정, 대학, 그외 건물이나 기관에 붙여서 지었으며 '오라토리'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시스티나 부속예배당은 교황청 사유의 부속예배당이며, 윈저에 있는 세인트조지스 채플은 버크셔 윈저 성에 있는 개인 예배당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에서는 종교개혁 이후로 영국국교회에 속하지 않은 예배장소에 대해서 교회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았고, 따라서 비국교회파(즉 성공회에 속하지 않은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의 예배장소를 예배당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오늘날 추세는 특정 교단의 종교건물을 가리키는 때도 예배당이라는 용어 대신 교회라는 명칭을 붙인다.

미국에서 예배당(채플)은 단순히 작은 교회당을 가리킨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예배당은 대학·대학교·병원에서 예배를 드리는 건물, 군대에 있는 예배장소, 장례식을 집전하는 방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예배당(chapel)
예배당(chap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