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노

마르티노

다른 표기 언어 Saint Martin of Tours
요약 테이블
출생 316경, 판노니아(지금의 헝가리 소움보테이) 사바리아
사망 397. 11. 8,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에 있음) 칸드

요약 축일은 서방교회 11월 11일, 동방교회 11월 12일. 프랑스의 수호성인, 갈리아 지방 수도원의 창시자, 서방 수도원주의의 위대한 초대 지도자.

마르티노(Saint Martin of Tours)
마르티노(Saint Martin of Tours)

이교도 가문에서 태어나 10세 때 그리스도교를 믿기로 결심했다. 청년시절에 로마군에 강제 입대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이자 전기작가인 술피키우스 세베루스에 따르면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나는 그리스도의 병사이기 때문에 싸울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군대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며, 겁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자 십자가기(旗)만 들고 전열 맨 앞에 서겠다고 했다.

그뒤 투옥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로마군에서 나온 뒤 푸아티에에 정착해 주교 힐라리오의 지도를 받았고, 선교사가 되어 판노니아와 일리리쿰(지금의 발칸 반도) 지방으로 가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이단 아리우스주의에 맞섰다. 그러나 일리리쿰에서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추방당하여 이탈리아로 떠나 밀라노와 알벵가 외곽의 갈리나리아 섬으로 갔다. 360년 푸아티에에서 힐라리오와 합류한 뒤 리귀제에서 은수자들의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는 갈리아 지방 최초의 수도원이었다.

371년 투르의 주교가 되었고, 투르 외곽에 또 하나의 수도원 마르무티에를 세우고 시간이 나는 대로 그곳에서 지냈다.

주교 마르티노가 세운 마르무티에 수도원에는 유럽 각처에서 금욕주의자들이 찾아왔고, 또 그곳 전도자들이 갈리아 지방 전체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해 이 수도원은 복합적인 기관이 되었다. 마르티노 자신도 투렌을 비롯해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지 않은 지역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선교활동을 했다. 384년 또는 385년에는 로마 황제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스페인 아빌라의 주교 프리스킬리아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프랑스 트리에의 자기 황궁으로 소환하여 벌인 논쟁에 참여했다.

마르티노는 모든 쾌락을 부정한 이단설인 프리스킬리아누스주의를 반대하긴 했지만 막시무스가 이단자들을 처형하는 데 대해서, 또 국가가 교회문제에 개입하는 데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러나 프리스킬리아누스는 처형되었고, 계속해서 그는 이 사건에 관여했기 때문에 스페인 주교들과 관계가 나빠졌다. 살아 있는 동안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명성을 얻었고,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으로 널리 공경받은 최초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