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시

영웅시

다른 표기 언어 heroic poetry , 英雄詩

요약 귀족 출신의 전사나 통치자의 위업을 묘사하기 위해 위엄 있고 극적이며 격식을 차린 문체를 이용하여 고상한 분위기를 내는 서술체 운문.

영웅시는 대개 글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만들어지고, 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영웅시는 음유시인들을 통하여 대대로 구전된다(영웅, 구비문학).

오늘날 남아 있는 영웅시는 아주 오래된 것에서 근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광범위한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영웅시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아마 영웅의 혈통과 위업을 찬양하는 송가와 영웅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가일 것이다(패니지릭). 호메로스는 헥토르의 시체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유해를 침대에 눕히고 만가를 선창할 음유시인들을 그 주위에 앉혔다"라고 말한다.

또다른 유형의 영웅시는 고대 영어로 바이킹족의 에식스 침략을 묘사한 〈몰던 전투 Battle of Maldon〉(991경)나 고대 고지 독일어로 아버지와 아들의 결투를 다룬 〈힐데브란트의 노래 Hildebrandslied〉(800경)처럼 하나의 사건을 노래한 짧고 극적인 담시이다.

영웅시의 성숙한 형태가 〈일리아스 Iliad〉·〈오디세이아 Odyssey〉 같은 큰 규모의 서사시이다.

대부분의 영웅시는 한 세대의 뛰어난 인물들이 재능과 용기를 발휘하여 놀라운 위업을 이룩한 '영웅 시대'를 회고하고 있다. 이 '영웅 시대'에 대한 정의는 분명하지 않아서, 그 문학 작품이 태어난 장소에 따라 시대가 달라진다.

BC 8세기에 만들어진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아마도 BC 1200년경에 일어났을 트로이 전쟁을 주요대상으로 삼고 있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및 영국의 영웅시는 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Völkerwanderung) 시기인 4~6세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묘사된 영웅들 가운데 일부는 실재했던 인물이지만, 그들의 행적은 실제 연대기를 무시하고 예술적 목적을 위해 짜맞춘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시인과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영웅 이야기를 사실로 여긴다.

영웅시의 문체는 비개인적·객관적이며, 생생하고 사실적인 세부 묘사는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따금 미심쩍은 요소들이 끼여들기도 하지만, 그럴 듯하다는 느낌이 워낙 강해서 별 의심 없이 넘어간다. 영웅의 행위는 아무리 평범하고 사소한 것도 가볍게 다루어지지 않고, 그런 행적과 결부된 기분 좋은 태도도 자세히 묘사된다. 청중은 영웅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무엇을 먹는지, 또 잠은 어떻게 자는지를 듣는다.

그리하여 아킬레우스가 전투를 위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갑옷과 투구를 어떻게 갖추었는지, 어떻게 전차에 올라타 전차를 끄는 말들에게 어떻게 말을 걸었는지를 꼼꼼히 서술한 호메로스의 묘사는 아킬레우스의 말들이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여전히 박진감을 갖는다.

고대 영웅시는 대부분 완전히 사라졌지만, 외딴 공동체에 살고 있는 문맹자나 반(半)문맹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그 전통이 살아 있다.

19세기말과 20세기에는 러시아·에스토니아·유고슬라비아·불가리아·알바니아·그리스에서 토박이 이야기꾼들을 통해 새로운 영웅시가 풍부하게 수집되었다. 중앙 아시아에서는 터키어 방언을 사용하는 타타르족에게서 영웅시를 수집했다. 특히 훌륭한 몇 가지 예는 텐산[天山] 산지에 사는 카리키르기스족에게서 나왔다. 시베리아 북부의 야쿠트족, 일본 북부의 아이누족,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의 일부 부족은 근대에도 영웅시를 만들었다.

현대 학자들이 이런 민족들을 연구한 결과, 그렇게 긴 서사시를 과연 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입으로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해결되었고, 호메로스 같은 고대 시인들이 이용했을 구두 작시법의 윤곽도 밝혀졌다.

입으로 시를 짓는 음유시인들은 수많은 전설들의 기본 요소를 알고 있고, 만남과 헤어짐, 시간의 흐름, 승리나 패배 같은 흔한 사건들을 묘사하는 데 쓰이는 상투적인 표현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낭송해나가면서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의 기술은 낯익은 장면을 새로운 사건 및 세부 묘사와 교묘히 뒤섞는 것이다. 음유시인은 자신이 지은 이야기를 외우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똑같은 이야기를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못한다. 1934년에 미국의 호메로스 학자인 밀먼 패리는 세르비아 남부에서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음유시인을 만나 1만 2,000행(〈오디세이아〉와 맞먹는 길이임)의 서사시를 듣고, 글로 옮겨적었다.

우즈베크인과 카라키르기스족의 음유시인들을 만난 러시아 학자들도 이에 못지 않게 놀라운 기억력과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묘기를 학계에 보고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