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자유노조

연대자유노조

다른 표기 언어 Solidarnoshc , 連帶自由勞組 동의어 Solidarity, 자유노조, 연대, 連帶

요약 동구권 최초의 독립 노동조합.
(영). Solidarity. 자유노조라고도 함.

연대자유노조(Solidarnoshc)
연대자유노조(Solidarnoshc)

1980년 9월에 창설되었으며, 이듬해 12월 폴란드 정부의 강력한 탄압을 받았으나 1989년 재등장하여 1940년대 이래 동구권 최초의 자유선거에 반정부세력으로 참가했다.

그결과 폴란드 통일노동자당(PUWP : 공산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연대자유노조의 기원은 1976년 폴란드의 여러 도시에서 수천 명의 파업노동자들이 당국에 의해 진압·체포된 뒤 반정부 지식인집단이 노동자방어위원회(Komitet Obrony Robotnikow/KOR)를 결성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KOR은 구속자 가족을 돕고 법률자문 및 의료지원 활동을 벌이면서 지하조직망을 통해 투쟁소식을 널리 선전했으며, 1979년 노동자권리헌장을 발표했다. 1980년 식료품값 인상에 항의하는 새로운 파업 선풍이 일어나자 그다인스크는 정부의 포고령에 항의하는 투쟁의 온상지가 되었다. 이곳의 레닌 조선소에서 약 1만 7,000명의 노동자들이 전기공 레흐 바웬사의 지도 아래 파업을 벌이며 공장 안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1980년 8월 중순 그다인스크에서는 그다인스크 및 다른 지역으로 확산된 파업을 지도하기 위해 공장간 파업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 위원회는 결성 1주일도 안 되어 대부분 KOR의 노동자권리헌장에 기초한 요구안을 정부 측에 제시했다. 8월 30일 정부와 그다인스크 파업노동자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어 파업권 및 대폭적인 종교적·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함께 자유로운 독립 노동조합이 인정되었다.

연대자유노조는 공식적으로 1980년 9월 22일 그다인스크에 모인 36명의 지역노동조합 대표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동시에 KOR는 해체되고 기존의 활동가들은 연대노조에 흡수되었으며, 의장에는 바웬사가 선출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개인 소농들로 구성된 농민조합이 1980년 12월14일 바르샤바에서 창설되었다. 이 모임에서 거의 1,000여 명의 농민 지도자들이 대다수 폴란드 노동자를 대표하게 되었다. 1981년 내내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장군이 이끄는 폴란드 정부는 세력을 강화하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연대자유노조와 대립해야 했다.

연대자유노조는 경제개혁, 자유선거, 노동조합의 주요정책결정 참여 등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지도부의 통제하에 일련의 파업을 벌였다. 호전적인 행동위원들이 온건노선의 바웬사에게 압력을 가한 결과 연대자유노조는 더욱 강경해졌다. 한편 야루젤스키 정부는 소련으로부터 연대자유노조를 탄압하라는 강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 1981년 12월 13일 야루젤스키가 계엄령을 선포한 뒤 연대자유노조는 불법화되었고, 그 지도자들은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1982년 10월 8일 의회가 연대자유노조 해산을 공식 선포했지만, 연대자유노조는 지하활동을 계속했다.

1988년 파업과 노동자들의 소요가 폴란드를 휩쓸 때 파업노동자들은 정부가 연대자유노조를 인정할 것을 가장 강력하게 요구했다. 야루젤스키가 정부와 연대자유노조 지도자 간의 회담을 승인했으며, 이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협상 끝에 1989년 4월 연대자유노조의 합법성을 인정하고 폴란드 상하원 자유선거 참여를 허용하는 포괄적인 협정이 체결되었다. 같은 해 6월에 실시된 선거에서 연대자유노조가 추천한 후보는 새로 구성된 상원에서 100석 중 99석을, 상하원의 총 460석 중 161석을 획득하여 하원에서 원내투쟁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공산당은 단독으로 의회 내 다수파를 구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8월에 연대자유노조와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데 합의했으며 익숙하지 않은 연정 내 소수파 신세를 감수해야 했다. 야루젤스키는 오랫동안 연대자유노조의 고문을 지낸 타데우슈 마조비에츠키를 연대자유노조 출신자 및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내각의 총리로 지명했다.

1989년 8월 24일 마조비에츠키는 1940년대말 이래 폴란드 최초의 비공산계 총리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