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루젤스키

야루젤스키

다른 표기 언어 Wojciech Witold Jaruzel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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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23. 7. 6, 폴란드 쿠로프
국적 폴란드

요약 폴란드의 장군·정치가.

1981~85년 각료회의 의장(총리), 1981~89년 폴란드 통합노동자(공산주의자)당(Polish United Worker's Party/PUWP)의 당 제1서기, 1989~91년 폴란드 대통령을 지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소련군에게 억류되었으며, 그후 그는 소련으로 강제이송되었다. 1943년에 그는 소련에서 결성된 지그문트 베를링 장군 휘하의 폴란드군에 입대했다. 랴잔에 있는 소련 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독일군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야루젤스키는 폴란드 고등보병학교와 참모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그후 그는 여러 참모직을 거쳐 33세의 어린 나이에 준장으로 진급하고 군 중앙정치위원회의 위원장(1960~65), 국방차관(1962~68), 합참의장(1965~68)을 지냈으며, 1968년 3월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64년에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91년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되었다.

야루젤스키가 폴란드의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은 자유노조 운동에 의한 압박으로 PUWP가 혼란스러워진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당의 중앙위원회에서 틀림없는 정통 공산주의자인 야루젤스키가 당을 수렁에서 건져내 국가 운영에 있어서의 당의 역할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정치국원이라고 결론을 내렸음직하다. 야루젤스키는 국방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1981년 2월 11일에 총리, 1981년 10월 18일에는 당 제1서기로 선출되었다.

자유노조운동을 분쇄하고 폴란드의 경제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1981년 12월 13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곧 많은 자유노조 지도자들과 반체제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자유노조운동이 진정되자 그는 1983년 7월 계엄령을 해제했으나 폴란드 정부와 폴란드 PUWP를 계속 장악했다. 1985년에는 총리직을 사임하면서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맡았다. 야루젤스키는 정치적 반대파를 억압하는 데에는 능숙했으나 폴란드의 침체된 경제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에는 실패했고, 사기저하된 PUWP를 활성화하려는 그의 노력은 부분적인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1988년 노사분규와 고(高)인플레의 와중에서 폴란드 경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가자 그는 정부와 불법단체로 규정되었던 자유노조 간의 협상을 승인했다. 이 협상의 결과 1989년 4월 폴란드 정치제도의 광범위한 개혁을 규정하는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이 개혁안중 특기할 만한 것은 자유노조의 합법화, 자유선거에 의한 국회의 재구성, 주로 의전에 치중했던 대통령직에 강력한 행정권을 갖는 직책으로 바꾼 것 등이었다. 그는 1989년 7월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이에 PUWP의 모든 고위당직을 사임했다. 1989년 8월에 재편된 국회에서 공산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여 내각을 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야루젤스키는 자유노조 지지자를 총리로 지명했다. 신임 정부의 내각은 자유노조 회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장악했지만 야루젤스키는 대통령직을 고수했다. 그러나 그후 하야하여 1993년 5월 과거의 비행으로 재판 대기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