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시

신체시

다른 표기 언어 新體詩

요약 신체시는 구체시(舊體詩)를 배제하고 서구의 시(poetry)에 해당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신체시에 해당되는 작품은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대체로 1908년에 발표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후부터 1919년 〈창조〉 창간호에 발표된 주요한의 〈불놀이〉 이전까지의 시를 가리킨다. 한국의 신체시가 가지고 있는 새로움의 요소는 형태적인 면에서 종래의 시가가 지녔던 고정된 운율로부터의 탈피이다. 신체시의 또다른 특징은 기존의 율어체가 아닌 구어체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최남선은 장르 의식의 결여로 자유시로의 발전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내용적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진취적 의욕과 낙관적 세계를 노래한 일종의 계몽적 서정시라 할 수 있다.

목차

접기
  1. 신체시 작가와 작품
  2. 의의

신시·신시가·신체시가라고도 한다.

'신체시'라는 명칭은 1882년 일본에서 간행된 최초의 신체시집 〈신체시초 新體詩抄〉에서 비롯되었다. 최남선(崔南善)은 새로운 시가의 범칭으로 '신체시가'라 했고, 자신이 쓴 〈해에게서 소년에게〉·〈구작삼편 舊作三篇〉 등에 대해서는 '신시'라고 이름붙였다.

'신체시'냐 '신시'냐 하는 용어 확정에 대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신체시'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이는 모든 구체시를 배제하고 서구의 시(poetry)에 해당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신체시에 해당되는 작품은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대체로 1908년에 발표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후부터 1919년 〈창조〉 창간호에 발표된 주요한의 〈불놀이〉 이전까지의 시를 가리킨다.

한국의 신체시가 가지고 있는 새로움의 요소는 형태적인 면에서 종래의 시가가 지녔던 고정된 운율로부터의 탈피이다. 한국의 신체시가 지닌 형태상의 특징은 반(半)율문·반(半)산문으로 각 연이 대응하는 음수율을 지키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면 최남선의 〈꽃두고〉를 보면 각 연은 11행으로, 두 연의 각 행이 서로 대응되어 있다.

신체시의 또다른 특징은 기존의 율어체가 아닌 구어체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최남선은 장르 의식의 결여로 자유시로의 발전을 이루어내지는 못했다. 내용적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진취적 의욕과 낙관적 세계를 노래한 일종의 계몽적 서정시라 할 수 있다.

신체시 작가와 작품

신체시의 효시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조지훈(趙芝薰)은 1907년에 씌어졌으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1년 뒤에 발표된 〈구작삼편〉을 작품의 창작 시기를 기준하여 신체시의 효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창작 시기와 발표 시기 중 어느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논란이 되고, 또 〈구작삼편〉이 7·5조의 창가형식에 가까워 새로운 것이 못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이보다 앞서 1895년에 발표된 이승만의 〈고목가〉를 신체시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박종화(朴鍾和)는 1905년경에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아양구첩 峨洋九疊〉·〈원백설 怨白雪〉·〈충혼소한 忠魂訴恨〉이 발표된 바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신체시의 효시로 이해했다. 그리고 김윤식(金允植)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신체시란 존속한 바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던 명목상의 명칭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G. G. 바이런의 〈대양 The Ocean〉의 번안시에 가깝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이렇듯 다양한 설이 대두되었으나 학계에서 보편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신체시의 효시로 삼는 것이 통설이다.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이미지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泰山갓흔 놉흔뫼, 딥태갓흔 바위ㅅ돌이나/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나의 큰힘, 아나냐, 모르나냐, 호통 디하면서/이미지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텨……ㄹ썩, 텨……ㄹ썩, 텩, 튜르릉, 콱"(1연)으로 시작하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전6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넓은 '바다'를 통해 밀려드는 개화의 세찬 물결과 '소년'의 대담하고 티없는 마음 속에 피어나는 새로움을 노래한 이시는 신체시의 작법 기준에 비추어볼 때 '규모의 광대함'에 해당된다. 1~4연에서는 바다의 무한한 힘과 위용 앞에 있는 인간존재의 왜소함을 노래했고, 5~6연에서는 시기와 질투, 욕망과 사악 일체를 초월한 소년의 새로움에 대한 희망과 동경을 노래했다.

그러나 여기서의 바다는 아직 관념의 바다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최남선의 교훈적 태도와 계몽주의적 세계관으로 인해 생동하는 바다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화기라는 시대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는 바다와 소년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서구문화를 도입하고 민족사의 재창조를 의도했던 작가의 사상을 잘 엿볼 수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외에도 신체시로 최남선의 〈꽃두고〉·〈신대한소년 新大韓少年〉과 이광수(李光洙)의 〈말듣거라〉·〈새아이〉 등이 있다.

의의

신체시는 전통적 율격의 정형을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새로운 시형을 이루고자 한 의식적 노력의 산물이다. 반율문·반산문적인 의사정형에 빠져버려 온전한 형태의 자유시의 실현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현대시의 형태적 변모와 다양화를 향한 과도기적 변환의 한 단계를 이루었다. 따라서 신체시는 고시가에서 근대시로 넘어가는 교량적 위치(가사-창가-신체시-자유시)에서 개화사상을 대변한 시형식으로서, 표현기교뿐만 아니라 주제의식도 과도기적 성격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