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평

신비평

다른 표기 언어 New Criticism , 新批評

요약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생겨난 비평이론의 유파.

예술작품의 내재적 가치를 강조하고 독립적인 의미의 단위로서의 개별작품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었다. 작품을 해석할 때 역사적·전기적 자료를 이용하는 비평방법에 반대했다(→의도에 관한 오류).

신비평적인 접근에서 사용되는 가장 기초적인 기법은 꼼꼼하고 분석적인 독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Poetics〉만큼이나 오래된 기법이다. 그러나 신비평가들은 이 방법을 더욱 세련되게 발전시켰다.

이러한 전통에서 선구적인 작품으로는 영국의 비평가인 I. A. 리처즈의 〈문학비평의 원칙 The Principles of Literary Criticism〉(1924)과 윌리엄 엠슨의 〈애매성의 7가지 유형 Seven Types of Ambiguity〉(1930)이 있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문학에 대해 기본적으로 언어학적인 접근의 원칙들을 모호하게나마 체계화한 작품인 존 크로 랜섬의 〈신비평 The New Criticism〉(1941)이 나오면서였다. 신비평가들에게 는 특별한 유형의 이야기, 즉 어떤 다른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느낌과 사고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시는 과학이나 철학의 언어와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똑같이 타당한 의미를 전달했다. 그리하여 신비평가들은 작품에서 말의 함축적·연상적 의미와 비유적 언어의 다양한 기능인 상징·은유·이미지를 특별히 강조하면서 꼼꼼한 독서의 기법을 이용하여 시적 사고와 언어의 특징을 명확하게 밝히고자 했다.

한국의 경우 일제의 강압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물러가고 모더니즘 문학이 본격화되던 1930년대 후반에 신비평 경향의 비평가들이 등장했다. 최재서와 김기림이 그들인데, 리처즈·흄·리드의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은 문학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것을 강조하면서도 형식이나 언어의 문제에만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신비평의 대두는 1950년대 이후이다. 김용권·백철 등에 의해 영미의 신비평이 소개되면서 한국에서도 신비평에 입각한 비평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이 비평론은 1960년대에 구조주의가 들어오기 전까지 문학 비평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계열의 중요한 비평가로는 백철·송욱·김종길·이상섭·문덕수 등이 있다. 영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신비평도 주로 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결과 시의 형식, 언어 조직, 운율, 비유, 문체 등의 분야에서 문학이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196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한국 비평계의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신비평이 보여주는 형식주의적이고 탈현실적인 경향은 커다란 한계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