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력

1281년부터 시행한 역법으로서 허형(許衡)·왕순(王恂)·곽수경 등이 1276년부터 5년간의 준비기간을 두고 정밀한 천문관측을 하는 한편 역대의 역법을 참고하여 완성했다.

이름은 〈서경 書經〉의 '경수민시'(敬授民時)에서 따온 것이다. 수시력의 편자인 허형은 역대의 역리에 밝았으며, 왕순은 계산법에 정통했고, 곽수경은 관측 기계 제작과 천체관측에 탁월했다고 한다. 이들의 공동 노력을 통해 훌륭한 역법을 만들 수 있었는데, 나중에 곽수경이 수시력을 정리했기 때문에 곽수경만이 수시력의 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수시력은 원은 물론이고 이후 명(明)에서도 이름만 대통력(大統曆)으로 바꾼 채 거의 그대로 시행되어 1644년까지 약 400년간 사용된 역법이다.

이 역법은 중국 역사상 가장 우수한 역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 영향은 우리나라에도 크게 미쳤다. 고려 충선왕 때 최성지(崔誠之)가 수시력법을 원에서 가지고 들어와 처음 시행했다. 그러나 일월식의 계산법만은 이용할 수가 없어 선명력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한다.

이후 1442년(세종 24)에 이르러 수시력과 대통력을 참고하여 〈칠정산내편 七政算內篇〉을 편찬하면서 완전한 이해가 가능해졌고, 1653년(효종 4) 시헌력(時憲曆)으로 바꿀 때까지 사용했다.

이 역법의 가장 큰 특색은 천문관측에 신중을 기한 것이다. 왕순과 더불어 곽수경은 개력의 명을 받자 곧 이슬람의 천문기구를 본받아 간의(簡儀)·앙의(仰儀) 등의 새로운 천문기기를 제작하여 새로이 관측을 실시했다. 〈원사 元史〉 곽수경전에 의하면 "그 실수(實數)를 측정하여 고정(考定)한 것 7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① 역계산의 기준이 되는 동지의 일시를 아주 정확하게 측정했다.

② 동지 일시를 측정하고 과거의 기록을 참고해서 1년의 길이를 365.2425일로 정한 것이다.

③ 월식을 이용하거나 별과 태양의 상거도수를 측정하여 동지에서의 태양의 위치가 기수(箕宿) 10도, 황도상 기수 9도 남짓에 있음을 구했다.

④ 달의 운행을 추적했다.

⑤ 태양과 달의 궤도를 정확히 측정하여 각각의 경사와 교점[入交]을 정했다.

⑥ 28수의 거도를 정확히 측정했다.

⑦ 일출입의 시각을 정확하게 구했다.

수시력의 진가는 정확한 측정뿐만 아니라 계산법에서도 새로운 고안이 이루어졌다. 곽수경전에는 그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는데, 태양의 부등 운동을 계산하는 데 보간법(補間法)의 공식인 초차법(招差法)을 창안한 것, 달의 운행에 대한 계산에서 근점월을 336한으로 나누어 초차법을 이용한 것이다.

그밖에 황도·적도·백도의 상호 변환과 황도내외도의 계산에 있어서 구면삼각법에 상응하는 방법을 창안하여 사용된 것 등이다. 또한 수시력은 이전의 역법에서 다만 편법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나 이론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것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게 했는데 먼저 정삭법(定朔法)에서 진삭법(進朔法)은 폐지했으며, 적년일법(積年日法)을 폐지하여 달력의 기준인 역원(曆元)을 1281년으로 했다.

이외에도 모든 정수의 끝수를 소수로 표시하여 계산을 간략하게 한 것, 또 1년의 길이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세실소장법(歲實消長法)을 채택한 것, 1일을 100각(刻), 1각을 100분(分)으로 하는 100진법을 사용한 것 등이 주목되는 점이다.

이상과 같이 수시력은 천문을 관측하여 처리하는 방법이나 역법의 구성, 계산법 등에 상당한 진보가 있었다. 또한 수시력은 비록 관측에서 이슬람 천문기구의 영향을 받았으나 역법 자체는 중국의 전통 역법에서 크게 이탈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