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정산내편

칠정산내편

다른 표기 언어 七政算內篇

요약 3권 3책. 목활자본. 1432년 세종의 명으로 편찬을 시작해 1444년에 간행했다. 1281년을 원력으로 삼았으며, 상권은 천행제율·일행제율·월행제율·일월식·역일, 중권은 태양·태음·중성, 하권은 교식·일식·월식·오성·사여성으로 되어 있다.
〈칠정산내편〉의 내용상 특징은 역원을 〈수시력〉에 따라 1281년으로 하고 〈대통력〉에서 폐지한 세실소장법을 보존했고, 두 사람의 연구성과인 〈대통력일통궤〉·〈태양통궤〉의 서술구조를 채택했으며, 한양의 위도를 그 기준으로 삼은 것 등이다.
1653년까지 우리나라 역서편찬의 기본이 되었다. 이 책은 조선 전기 역법 연구에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종실록〉 권156~158에도 수록되어 있다.

3권 3책. 목활자본. 1432년(세종 14) 왕명으로 편찬을 시작해 1442년에 완성, 1444년에 간행했다. 1281년(고려 충렬왕 7)을 원력으로 삼았으며, 상권은 천행제율·일행제율·월행제율·일월식·역일, 중권은 태양·태음·중성, 하권은 교식·일식·월식·오성·사여성으로 되어 있다. 내편의 소인·후지에는 편찬과정을 적었다.

1281년 원(元)에서 〈수시력 授時曆〉이 완성되어 고려에도 전해졌는데, 당시에는 역서에 나오는 일부 법칙을 몰랐다. 이에 충선왕은 최성지(崔誠之)를 시켜 이를 배우게 했다. 그뒤 명대의 〈수시력〉은 수정을 통해 〈대통력 大統曆〉을 거쳐 〈대통력통궤법 大統曆通軌法〉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0년 유정현(柳廷顯)이 역법을 바르게 할 것을 건의하자, 세종은 정흠지(鄭欽之)·정초(鄭招)에게 〈수시력법 授時曆法〉을 연구하게 하여, 그 묘법을 터득했다.

그 후 〈태음태양통궤 太陰太陽通軌〉라는 역서가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그 내용이 〈수시력법〉과 달라, 세종이 이순지와 김담에게 명해 그것을 참작·요약하고 한양을 기준으로 추산한 것을 중심으로 정리·편찬하게 했다. 그래서 편찬된 것이 〈칠성산내편〉이다. 또 세종은 당시에 얻은 회회력법을 이순지와 김담에게 살피도록 명했는데 그 결과 중국역관의 추산에 착오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착오를 수정하여 〈칠정산외편〉을 편찬하게 했다.

〈칠정산내편〉의 내용상 특징은 역원을 〈수시력〉에 따라 1281년으로 하고 〈대통력〉에서 폐지한 세실소장법을 보존했고, 두 사람의 연구성과인 〈대통력일통궤 大統曆日通軌〉·〈태양통궤 太陽通軌〉의 서술구조를 채택했으며, 한양의 위도를 그 기준으로 삼은 것 등이다.

세종은 이 책이 완성되자 즉시 채택해, 1653년(효종 4) 청(淸)의 시헌력법(時憲曆法)이 채택될 때까지 우리나라 역서편찬의 기본이 되었다. 이 책은 조선 전기 역법 연구에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세종실록〉 권156~158에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