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헬레나

세인트헬레나

다른 표기 언어 Saint Helena
요약 테이블
위치 아프리카 서남부의 대서양
인구 6,158명 (2024년 추계)
면적 121.7㎢
언어 영어
대륙 아프리카
국가 영국

요약 아프리카 서해안으로부터 1,8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대서양의 영국의 식민지 섬. 1502년 5월 21일 포르투갈인 항해사 주앙 다 노바 카스텔라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1588년 영국인 선장 토머스 캐번디시가 세계일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방문하기 전까지 포르투갈인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1645∼51년 네덜란드 소유가 될 뻔했으나, 결국 1659년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차지했다. 주요작물은 옥수수·감자·채소류이며, 소·양·돼지·염소가 사육되고 있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역사
제임스타운(Jamestown)
제임스타운(Jamestown)

최장길이(남서-북동)는 17km, 최대폭은 10km이다. 수도는 항구인 제임스타운이다.

어센션 섬트리스탄다쿠냐 섬은 세인트헬레나의 속령이다.

지도
세인트헬레나

자연환경

세인트헬레나는 원래 화산섬이었으나 지금은 화산활동이 전혀 없다. 섬의 동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에는 가파른 절벽이 135∼600m의 높이로 솟아 있고, 샌디 만의 북쪽으로는 악타이온 산(818m)과 다이아나 봉(825m)을 정점으로 하는 산맥이 반원형의 테를 이루고 있다.

산맥의 남쪽에는 물에 의해 깎여나간 협곡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 협곡들은 바다 가까이에 이르러서는 깊은 계곡으로 변한다. 세인트헬레나에는 샘이 많고 화산재도 많으며 이채로운 형상을 한 바위들이 많다. 상륙이 가능한 유일한 곳은 제임스 만의 바람 불어가는 쪽에 있으며, 이곳에서 좁은 계곡이 내륙으로 2.4km에 걸쳐 뻗어 있다. 서늘한 남대서양 무역풍 때문에 세인트헬레나의 기후는 온화하며 건강에도 좋다. 해수면에서의 기온은 여름에는 21∼29℃, 겨울에는 18∼24℃이며, 지대가 높은 곳의 기온은 5∼6℃로 보다 서늘하다. 연강우량은 해수면 기준 200㎜이며, 섬 중앙에서는 760㎜가 넘는다.

섬의 식생대는 불모의 암석해안지대, 보다 풀이 많고 가시금작화·버드나무·포플러·유럽소나무 등이 자라는 중간지대(고도 420∼540cm), 토종식물이 자라는 중앙지대로 구분된다. 토종의 캐비지야자나무·서양삼나무·유카리나무 등이 흔하며, 대나무와 바나나 곁에서 자라는 오크나무도 종종 눈에 띈다. 육지 포유류 동물로는 토끼와 쥐 등이 있으며, 특히 쥐가 많이 서식한다.

세인트헬레나 원산의 새는 와이어버드라고 불리는 작은 물떼새뿐이며, 수입된 새로는 찌르레기·자바참새·멧비둘기·자고·꿩 등이 있다. 민물고기는 없으며, 65종(種)의 바다고기가 잡히는데 그중 17종은 세인트헬레나에서만 잡히는 진귀한 물고기이다.

국민

주민은 유럽계(주로 영국)·아시아계·아프리카계의 혼혈인이 주종을 이룬다. 영어가 유일한 언어이며, 주민 대부분이 영국성공회를 신봉한다. 세인트헬레나의 유일한 도시인 제임스타운의 인구는 1978년 통계 1,500명이다. 2010년 인구 1,000명당 출생률은 10.95명, 사망률은 6.91명이었고, 2024년 기준 추계인구는 6,158명이다.

경제

섬 전체면적 중 농사나 삼림에 적합한 지역은 1/3에 못 미친다. 주요작물은 옥수수·감자·채소류이며, 소·양·돼지·염소가 사육되고 있다. 광물은 전혀 나지 않으며 공업도 사실상 전무한 상태이나, 현지에서 자란 나무는 일부 건축용으로 사용되거나 정교한 목공예품 및 가구제작에 사용된다.

세인트헬레나 주변 바다에서 잡힌 물고기, 특히 다랑어는 섬에 있는 냉동시설에서 냉동되어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레이스와 자수 제품이 이따금씩 섬을 방문하는 배의 승객들에게 팔린다. 1960년대 후반 시장가격이 하락한 이래, 섬유·토(tow)·로프·삼끈·양모의 생산 및 수출이 중단되었다. 식민지 예산의 약 2/3는 보조금 형태로 영국이 제공하고 있으며, 나머지 예산은 우표 판매 수익금 및 관세·부두세 등으로 충당되고 있다.

수입품으로는 식료품·연료·자동차·전기제품·기계류·의류·시멘트 등이 있다. 영국 통화가 본위화폐로 통용되고 있다. 유일한 항구인 제임스타운 항은 모든 크기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정박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승객 및 화물을 영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수송하는 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다. 도로망은 갖추었으나 공항이나 활주로는 아직 없다.

정치와 사회

세인트헬레나는 입법위원회 의장을 겸직하는 식민지 총독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입법위원회는 총독, 정부 서기관, 회계 담당(이들은 직무상의 위원들임) 및 12명의 위원들로 구성된다. 집행위원회는 총독, 정부 서기관, 회계 담당, 위원회 위원장(이들은 입법위원회의 구성원들로 정부 각 부처를 감독함)으로 구성된다. 사법부 관리로는 재판장·행정장관·치안판사가 있다. 이 섬에서는 몇 명의 의료진과 치과의사 1명이 의료사업을 담당하며, 작은 병원이 하나 있다. 5∼15세의 어린이들에게는 의무·무상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역사

세인트헬레나는 1502년 5월 21일(동방정교회에서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인 성 헬레나를 기리는 축일임) 포르투갈인 항해사 주앙 다 노바 카스텔라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1588년 영국인 선장 토머스 캐번디시가 세계일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방문하기 전까지 포르투갈인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이후 세인트헬레나 섬은 유럽과 동인도 간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기항지가 되었다.

1645∼51년 네덜란드 소유가 될 뻔했으나, 결국 1659년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차지했다. 1673년 네덜란드가 잠시 이 섬을 차지한 후 동인도회사가 소유권을 확고히 했다. 1673년에는 이 섬의 주민 중 거의 절반이 외지에서 끌려온 노예들이었으며, 1826∼36년에 모든 노예가 해방되었다. 유럽 열강은 고립무원의 섬이라는 점 때문에 세인트헬레나를 나폴레옹의 유배지로 삼았으며, 나폴레옹은 1815년부터 1821년 죽을 때까지 롱우드에 유배되었다.

그 기간 동안 이 섬은 영국 직할식민지의 사법권 아래 있었다. 1834년 영국 왕실의 권위가 회복되면서 이 섬에 대한 동인도회사의 통치권도 되살아났으며, 1870년경까지는 상당히 번창했다. 그러나 그무렵부터 증기기관이 돛을 대신하게 되었고,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항로에도 변화가 생겼다. 제2차 세계대전중 이 섬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지였다. 1960년대초 이 섬의 속령인 어센션 섬에 원격통신 센터가 들어서고, 그 건설작업에 세인트헬레나 사람들이 고용되면서 세인트헬레나는 다소의 번영을 되찾았다. 1966년 세인트헬레나 현지인들에게 입법 및 집행위원회 참여를 허용한 추밀원 자문에 따른 행정관계의 칙령 및 왕실칙령(1967. 1. 시행)에 따라 세인트헬레나는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