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

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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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학문, 즉 요(堯)·순(舜)·주공(周公)·공자(孔子)의 요법(要法)을 체득해서 왕도(王道)와 인정(仁政)을 실현하기 위한 학문.

내성외왕(內聖外王)·수기치인(修己治人)·성기성물(成己成物)과 같은 말은 그러한 성학의 목적을 나타내준다.

또 그것은 격치성정지학(格致誠正之學)으로 요약되었던 바와 같이 도학(道學)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격물(格物)·치지(致知)로써 선(善)을 밝히고 성의정심(誠意正心)으로써 몸을 닦아서 안에 쌓으면 천덕(天德)이 되고 밖으로 정사(政事)에 베풀면 왕도가 되는 것이 도학이었기 때문이다. 성학, 즉 도학이 이와 같이 수기치인·격치성정이라는 〈대학 大學〉의 공부 목적과 방법을 내용으로 한 점에서 그것은 군주(君主)를 포함한 치자(治者) 일반에게 공유되는 학문정치론이었다.

그러면서도 신하와 달리 절대성이 규정되는 군주를 위한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성학은 군주학(君主學)·제왕학(帝王學)이었다. 여기에서 성학은 제왕학과 사대부학(士大夫學)으로 분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도전(鄭道傳)의 정치·사회론에서 인정·왕도정치론과 함께 수기치인의 기본이념이 천명된 이래 조광조(趙光祖)의 도학·지치주의(至治主義) 정치론을 거쳐 이언적(李彦迪)에 이르러 성학론이 정면으로 거론되었다. 성학을 〈대학〉과 관련시키면서도 그와 구별되는 군주학·제왕학의 범주로서 정립시키게 되는 것은 주희의 문집과 어록을 통한 주자·주자학 연구가 한층 구체화되는 16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기의 성학론은 이황(李滉)의 〈성학십도 聖學十圖〉이이(李珥)의 〈성학집요 聖學輯要〉에 의해서 2가지 경향으로 특징지워진다. 우선 양자가 모두 〈대학〉의 학문방법을 택하며 삼대지치(三代之治)를 목표로 하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그러나 전자가 주자학 전체의 체계를 모두 열거하되 오직 성학의 입도지문(入道之門)·적덕지기(積德之基)를 보이는 데 치중한 것에 비해, 후자는 〈대학〉만의 체계를 원용하면서도 학문의 태도로서 찰리지정(察理之精)·천리지독(踐履之篤)을 강조하고 각 실천덕목에는 선유(先儒)의 학설을 광범위하게 인용, 상세한 예시를 보이고 있는 점에서 다른 면모를 보인다.

즉 이들은 성학 일반론에서는 일치하면서도 군주학·제왕학이라는 범주에서는 그 의미를 달리했다. 이황이 주자학 자체를 성학으로 보아 군주 스스로 여기에 응하도록 유도하는 입장이라면 이이는 실제의 각 사안(事案)에 나아가서 그 규범과 절차를 명시함으로써 군주의 의리와 행동을 직접 규제하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황은 성학을 본래 의미의 수기치인지학(修己治人之學)으로 보고, 군주의 도리가 그러하므로 군주는 여기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이이는 현신(賢臣)이 나서서 성학의 이름으로 군주를 교도하여 그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군주개조론(君主改造論)이었다. 이와 같이 볼 때 이황이 제시한 성학은 치자 일반의 규범과 절제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정도로, 정치역학의 측면에서 군주와 신하의 상호규제 관계는 보이지만 신하의 일방적인 군주제약의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 이이의 경우와 같이 성학을 군주학·제왕학으로 보고 신하집단 주도의 군주교도론(君主敎導論)으로 적용하게 되면, 성학은 신하 우위의 정치운영을 의도하는 군주권제약의 장치가 된다.

후에 이이 계열의 학자·관료들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정치운영 원리로 이와 같은 군주권제약의 논리를 내세우게 되는데 송시열(宋時烈)의 경우에는 관료주도의 정치를 더욱 강조하는 세도론(世道論)까지 제시했다.

송시열(宋時烈)
송시열(宋時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