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

성사

다른 표기 언어 sacrament , 聖事

요약 종교적인 표지 또는 상징.
성례전(聖禮典)이라고도 함.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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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징으로서의 성사
  2. 제도로서의 성사

특히 그리스도교 교회와 관련이 있으며, 거룩하거나 영적인 권능이 신의 은총의 통로로 간주되는 물질적 요소들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믿는다(→ 신성과 세속). 고대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신이나 신성한 힘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거나 파괴하는 것으로 보았다. 초기 농경민들과 유목민들 사이에서 봄의 의식이나 추수 감사와 같은 성례는 토지의 비옥, 좋은 기후, 계절의 순환 등을 지속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농업). 그들은 개인 생명의 주기가 자연 질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성공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례를 집행했다. 성사 원리에 대한 개념은 아주 오래전부터 생겼고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독특한 의미가 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사는 교회라는 가시적 조직과 구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의 연합을 영속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체제와 제도가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몸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여러 의식을 제정하고 시행하도록 했는데, 그 가운데는 세례·공동식사·세족례(洗足禮)·기름부음·악령축출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가운데 몇 가지는 계속 시행했고 몇 가지는 중단했으며, 그밖의 다른 의식들도 그리스도가 제정한 것이라 하여 채택했다. 이 모든 의식과 규례의 뜻을 깊이 생각함에 따라 '성사'의 개념도 발전했지만, 1,000년 이후에도 성사의 의미와 종류는 확정되지 않았다(→ 성찬례, 병자성사). 페트루스 롬바르두스가 제기하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집대성했으며 트리엔트 공의회가 공포한 바에 따르면, 성사의 종류에는 7가지(세례성사·견진성사·성찬례·고백성사·병자성사·성품선사·혼인성사)가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

이것들은 그리스도가 교회에 영원히 지키도록 제정해준 하느님의 효력있는 상징들이라고 한다. 종교개혁은 스콜라 신학이 가르친 성사의 정의와 종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으며, 중세적인 신앙·예배·성직 체계에 성사를 사용하는 것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상징으로서의 성사

플라톤 철학 전통을 이어받은 신학자들은 물질세계 전체를 영적 세계의 '표지' 또는 '상징'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세례와 성찬식 등을 하느님의 유효한 임재의 상징들로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이들에게 어려웠던 것은 서로 뒤얽혀 있는 상징들에서 표지들을 구분해내는 일이었다.

전혀 다른 이유에서 성사가 은총의 수단이라는 전통적인 개념들을 배격한 급진적인 개신교도들도 십자가 같은 표지들과 성사의 질적인 차이를 발견해야 할 문제에 직면한다. 아우구스티노는 신플라톤 철학의 경향들을 넘어서서 표지들과 성사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키고, 성사를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형식'이라고 정의했다.

매우 급진적인 개신교도들도 세례와 성찬을 대단히 신중하게 다룬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래 로마 가톨릭교회는 종전대로 성사를 은총의 수단으로 강조하면서도 이같은 강조점과 성사의 효과에 대한 '주술적' 해석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큰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이다. 그러나 성사를 '단순한 상징들'로 보는 합리주의적인 이론을 회피하는 개신교도들과 '받는 사람의 상태와 무관한 효력'이라는 미신적인 이론을 회피하는 로마 가톨릭교도들이 화해를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제도로서의 성사

성사에 관한 거의 모든 정의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은 성사를 '그리스도가 제정했다'는 것이다. 동방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받아들이는 7성사 가운데 〈신약성서〉를 통해 그리스도가 제정한 제도임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세례와 성찬식 2가지뿐이다. 16~17세기에 성사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 양 진영은 역사적 예수가 실제로 혼인과 성직임명 등을 성사로 제정했는가의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신약성서〉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개신교 성서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성찬식 제정사조차 적어도 현재의 형태로는 역사적 예수가 말한 것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기보다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재수집한 산물이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로마 가톨릭 신학도 7성사 하나하나의 분명한 역사적 근거를 예수가 한 말들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대신 교회의 설립 자체가 갖는 함축적인 의미에 관심을 집중했다.

역사적 예수가 역사적인 의미에서 성사를 제정했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없지만, 그리스도는 신학적인 뜻을 가지고 성사를 제정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