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미술

선진미술

다른 표기 언어 Pre-ch'n fine arts , 先秦美術

요약 중국 진대(秦代) 이전에 있었던 노예제 사회의 미술.

목차

접기
  1. 청동기
  2. 조소
  3. 회화
후베이 성(湖北省)
후베이 성(湖北省)

청동기

문헌기록에 의하면 노예제 사회의 형성시기인 하대(夏代 : BC 23~18세기)에 "구리로 무기를 만들고, 정(鼎 : 세발솥)을 주조하여 사물을 본떴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대의 물질문화는 이미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발견된 청동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허난 성[河南省] 옌스[偃師] 얼리터우[二里頭]에서 출토된 것으로, 꺾창(戈)·척(戚)·작(爵)이 대표적이다. 이들 청동기는 종류가 많지 않고 비교적 작으며, 무늬도 아직 발달하지 않은 것들이다.

은대(殷代 : BC 18~12세기)는 중국 노예제 사회의 중요한 발전단계였다. 이 시기에는 청동의 주조기술도 매우 발달하여, 도구와 무기뿐만 아니라 청동제 예기(禮器)도 많이 만들어졌다. 은대 전기의 청동기는 허난 성 정저우[鄭州] 얼리강[二里岡]과 두링[杜嶺], 후베이 성[湖北省] 황피 현[黃陂縣] 판룽청[盤龍城] 등지에서 출토된 정·가(斝)·유(卣)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들은 모양새에 짜임새가 있고 몸체도 얄팍하면서 고르며, 무늬는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은대 후기의 청동기 주조기술은 더욱 정교해졌으며, 청동기의 종류도 많아지고 모양도 품위있고 견고해졌으며, 복잡하고도 웅장한 무늬가 매우 특이해졌다. 자주 보이는 무늬의 도안으로는 도철문·운뢰문(雲雷紋)·기문(夔紋)과 사람얼굴·용·호·코끼리·봉황·매미 등의 무늬가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허난 성 안양[安陽]의 은허(殷墟)에서 출토된 사모무방정(司母戊方鼎 : 높이 133㎝, 무게 약 875㎏)·녹면방정(鹿面方鼎)·우방이(偶方彛), 안후이 성[安徽省] 푸난[阜南]의 용호문준(龍虎紋尊), 후난 성[湖南省] 닝샹[寧鄕]의 사양방준(四羊方尊)·봉문과유(鳳紋戈卣)·인면방정(人面方鼎) 등이 있다.

서주(西周 : BC 12~8세기) 초기는 노예제 사회의 최고 번영기로서, 이 시기의 청동기도 은대 후기의 것을 본떠서 품위있고도 전아한 풍격을 지녔다.

그러나 주기(酒器)는 줄어들고 식기(食器)는 늘어났으며, 그릇 표면에 긴 명문(銘文)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청동기 가운데, 산시 성[陝西省] 춘화 현[淳化縣]에서 출토된 수수세대정(獸首銴大鼎 : 높이 117㎝, 무게 226㎏)은 모양이 장중하고 무늬가 깔끔하며 새롭다. 또한 메이 현[郿縣 : 또는 縣 : 치산(岐山)]에서 출토된 대우정(大盂鼎), 시안[西安] 신왕[新旺]의 수면구련문정(獸面勾連紋鼎), 랴오닝 성[遼寧省] 커쭤[喀左]의 반룡수면문뢰(蟠龍壽面紋罍) 및 언후우, 베이징[北京] 팡산[房山]의 우두문백구역(牛頭紋伯矩鬲), 상하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덕정(德鼎) 등도 서주 초기의 전형적인 청동기이다.

서주 중·후기에는 노예제가 쇠락기에 접어들었다. 청동기로는 보(簠)·수(盨)·이(匜)·종(鐘)·박(鎛) 등의 새로운 종류가 나왔고, 모양과 무늬도 날로 간단해져갔다. 도철문은 이미 많이 쓰이지 않게 되었고, 환대문(環帶紋)·절곡문(竊曲紋)·중환문(重環紋)이 널리 유행했으며, 긴 명문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전형적인 청동기는 푸펑[扶風]에서 출토된 대극정(大克鼎)·장반(牆盤)·중의부령(仲義父이미지), 메이 현의 녹방이, 구궁[故宮]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추궤(追簋), 상하이 박물관에 있는 사호박(四虎鎛) 등이다.

춘추시대(BC 770~476)에는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면서 노예제도는 점차 무너졌다.

이 시기에 제후국에서는 청동기 주조가 늘어나 각 지역에 따라 다른 풍격을 이루었다. 춘추시대 중기 이후에는 모인법(模引法)과 실랍법(失蠟法)을 받아들여 채색이 화려한 반훼문(蟠虺紋)과 반리문(蟠螭紋)이 유행했다. 연(燕)·조(趙)·채(蔡) 등의 제후국에서는 청동기에 홍동(紅銅)을 끼워넣거나 금을 섞어넣는 새로운 기술이 나타났다. 그리고 오(吳)·월(越)·초(楚) 등의 제후국에서는 화려한 전자체(篆字體)의 명문이 나왔다.

허난 성 신정[新鄭]에서 출토된 춘추시대 후기의 연학방호(蓮學方壺)는 구상이 참신하고 모양이 정교하며 무늬가 생동감이 있어서, 거대한 변혁기의 사회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전국시대(BC 475~221)의 청동기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정교한 그릇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도금·상감·조각 및 금이나 은의 혼합 등의 장식기법도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또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의 수렵, 활쏘기, 뽕나무 따기, 연회, 전쟁 및 누각·정자 등의 도안이 유행했다.

조소

선진시대의 조소(彫塑)는 옌스 현 얼리터우에서 출토된 양·호랑이·거북·두꺼비 모양으로 만든 토기에서 그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은대 전기의 작품으로는 정저우 얼리강에서 출토된 돼지 모양의 토기, 허베이 성[河北省] 가오청 현[蒿城縣] 타이시[臺西]에서 출토된 사람얼굴 모습의 토기인 개가 있다. 은대 후기의 조소는 종류가 다양한데 은허에서는 칼이 씌워진 노예 토우(土偶), 돌로 만든 올빼미·소·호랑이가 출토되었다. 이들의 형상은 예스러우면서도 질박하고 장식미가 농후하다.

옥으로 조각한 인물상 및 두상(頭像)은 사실적이며 생기가 있다. 또 옥으로 만든 코끼리·봉황·용·호랑이 등의 작품은 색깔과 광택이 아름다워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은허에서 출토된 효준과 후난 성 리링[醴陵]에서 출토된 상준(象尊)은 은대 후기의 청동제 조소작품 가운데 걸작으로 꼽힌다. 서주에서 춘추시대에 이르는 동안의 조소작품 가운데 중요한 유물로는 뤄양[洛陽]에서 출토된 서주시대의 옥인(玉人), 바오지[寶鷄]의 서주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사슴·말·물고기 모양의 옥패(玉佩), 코끼리·새·호랑이 모양의 청동제 준(尊), 산둥 성[山東省] 린쯔[臨淄]에 있는 춘추시대 말기 무덤에서 출토된 소형토기 무녀용(舞女俑) 등이 있다.

전국시대에는 사람을 죽여서 무덤에 함께 묻는 순장(殉葬) 대신에 인형을 묻었기 때문에 사람 모양의 조각작품이 빨리 발전했다. 이들 중에는 산시 성[山西省] 창즈[長治] 분수령(分水嶺)에 있는 전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소형 토기 시녀용(侍女俑)·무녀용이 있다.

이외에도 허난 성 뤄양과 신양[信陽], 후베이 성 장링[江陵], 후난 성 창사[長沙] 등지에서 출토된 납·청동·나무로 만든 인형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후베이 성 쑤이 현[隨縣]의 증후묘(曾侯墓)에서 출토된 편종(編鐘)의 틀 위에 있는 '종거동인'(鐘鐻銅人)으로, 가장 큰 것은 75㎝ 정도이다. 비례가 정확하고 모양이 사실적인 이 조각품을 통해 인상(人像)의 조각기법이 점차 성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 동물조각의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는 유물들도 각지에서 출토되었다.

회화

선진시대의 회화는 초상화가 주류를 이룬다.

서주의 명당(明堂) 벽화에는 요(堯)·순(舜)·걸(桀)·주(紂) 등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어, 군주의 선악에 따른 흥망의 교훈을 나타냈다. 전국시대 초나라의 묘당(廟堂) 벽화에는 천지신령의 진기하고도 신비스러운 모습과 옛 성현들의 기이한 행적을 그렸다. 남아 있는 선진시대의 그림 유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창사의 초묘에서 계속해서 출토된 2폭의 백화(綿畵)이다. 이는 각각의 무덤 주인인 남녀가 용을 부리거나 용과 봉황의 인도를 받으면서 천국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밖에 증후묘의 옻칠한 널[棺]·상자, 신양의 초묘에서 출토된 금슬(錦瑟), 창사 초묘의 사방 벽 등에 그려진 신비한 그림 등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전국시대의 진기하고도 신비한 그림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