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좌부

상좌부

다른 표기 언어 Theravada , 上座剖

요약 석가모니 사후 몇 백 년 동안 불교는 여러 부파로 갈라졌다. BC 4세기경 최초의 분열이 있었으며, 두 번째 분열은 설일체유부가 분별설부로부터 갈라져 나옴으로써 이루어졌다. 분별설부는 오늘날 상좌부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부파는 BC 3세기경 스리랑카로 전파되어 대사파·무외산사파·기다림사파라는 3개 파로 분리되었다. 상좌부는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에서 중요한 종교로 자리잡았다.
상좌부는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에서 보수적·정통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불교도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깨달음에 이른 완전한 성인, 곧 아라한이다.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에게는 완벽한 스승으로서 깊이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대승불교 사원에서 숭배하는 신격화된 다양한 부처와 보살은 받들지 않는다.

상좌부에서는 불교의 다른 모든 학파와 마찬가지로 부처가 설한 원래의 교리와 수행을 자신들이 가장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부파에서는 고대 인도 팔리어로 전승된 불교 경전을 정통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최초의 불교 승가(僧伽 saṅgha:공동체) 고승들에 의해 형성된 전통을 이어온 상좌들(산스크리트로는 Sthavira, 팔리어로는 Thera)에서 자파의 기원을 찾고 있다.

석가모니가 죽은 뒤 몇 백 년 동안 불교 공동체는 여러 부파(部派)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각 부파들 사이에 서로 다른 점이 조금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파불교). 최초의 분열은 BC 4세기경 경전의 제2차 결집 때 일어났는데, 이때 정통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근본상좌부(Sthaviravāda)로부터 갈라져나와 새로이 형성된 부파가 이른바 대중부이다. 당시 대중부는 계율의 해석에 있어서, 금이나 은의 보시를 받아도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등 상당히 진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2번째 주요분열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a:원어는 산스크리트로 '모든 것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뜻)가 분별설부(分別說部 Vibhajyavāda:'분별설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근본상좌부를 가리킴)로부터 갈라져나옴으로써 이루어졌다.

분별설부는 지리상으로 남인도와 스리랑카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오늘날 상좌부(산스크리트로는 Sthaviravāda, 팔리어로는 Theravāda)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부파는 BC 3세기경 아소카 황제의 치세중에 스리랑카로 전파되었고, 그곳에서 각각 중심되는 사원에 따라 대사파(大寺派:팔리어로는 Mahāvihārika)·무외산사파(無畏山寺派:팔리어로는 Abhayagirikā)·기다림사파(祇多林寺派:팔리어로는 Jetavanῑya)라는 3개의 파로 분리되었다.

상좌부 불교는 점차 동쪽으로 전파되어 11세기 후반에는 미얀마에서, 13세기에는 캄보디아에서, 그리고 14세기에는 라오스에서 중요한 종교로 자리잡았다.

상좌부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에서 보수적·정통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상좌부 불교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불교도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깨달음에 이른 완전한 성인 곧 아라한(阿羅漢:팔리어로는 arahant, 산스크리트로는 arhat)이다. 상좌부에서는 재가자의 역할과 출가자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재가 생활을 하면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상좌부의 불교도들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에게는 완벽한 스승으로서 깊이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대승불교의 사원에서 숭배하는 신격화된 다양한 부처와 보살은 받들지 않는다.

3개의 주요 불교 분열을 보여주는지도.
3개의 주요 불교 분열을 보여주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