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반트

브라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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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9세기 중반 프랑크족 카롤링거 제국의 몰락과 붕괴 후에 생겨난 봉건 공작령.

루뱅과 브뤼셀 지역을 중심으로 했으며, 그 소유를 놓고 3대동안 소송이 벌어졌던 이전 공작령인 하(下)로렌의 분할지였다. 1190년 전사왕 하인리히 1세가 이 영지를 차지했을 때 처음으로 브라반트 공작이란 칭호를 인정해주었고, 그뒤 3대 동안 이곳은 상당히 평화스럽게 다스려졌다. 1283년 브라반트의 요한 1세는 당시 이 명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던 베르크의 아돌프 5세로부터 림부르크 공작령을 사서 그 지역을 합쳐 다스렸다.

요한 3세의 딸이며 룩셈부르크 벤체슬라스 공작의 부인인 요한나는 공작령을 물려받았을 때 주아이외즈 앙트레로 알려진 권리헌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요한나가 브라반트라는 칭호를 계승하자 이에 그녀의 동생 남편인 플랑드르 백작 루이 2세가 반발했다.

이후 계속된 분쟁의 와중에서도 요한나는 부르고뉴의 지원을 받아 브라반트를 다스렸고, 벤체슬라스가 죽은 다음에도 룩셈부르크를 통치했다. 1390년 그녀는 조카딸 플랑드르의 마르그리트와 결혼한 부르고뉴의 대담왕 필리프 2세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했다. 1430년에 가문의 대가 완전히 끊기자 공작령은 부르고뉴가로 상속되었고, 그후 2대에 걸친 결혼을 통해 합스부르크가에서 소유하게 되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펠리페 2세가 다스릴 때 이 지역에서 80년 전쟁이 시작되어 북부와 남부로 양분되었다. 남부는 스페인이 계속 다스렸으나 북부는 네덜란드로 넘어가서 약간의 지역을 합쳐 현재 네덜란드의 노르트브라반트 지방을 이루고 있다. 반면 브라반트 남부지역은 위트레흐트 조약(1713)으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넘어갔으나, 1789~90년에 일어난 황제 요제프 2세에 대한 무장 반란과 1795년의 프랑스 점령 이후에 벨기에 영토가 되었다.

현재 벨기에 국기에는 공작령을 상징하는 브라방송 색깔이 나타나 있으며, 브라반트 공작이라는 칭호도 벨기에 왕실의 장남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