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조지 부시

다른 표기 언어 George (Herbert Walker) Bush
요약 테이블
출생 1924. 6. 12, 미국 매사추세츠 밀턴
사망 2018. 11. 30, 미국 텍사스 휴스턴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41대 대통령. 1981~89년 부통령을 역임하고, 1989년에 미국의 41대 대통령이 되었다. 1959년 공화당에 입당했고, 1973년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졌을 때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다. 1980년 레이건의 당선과 함께 부통령으로서 레이건의 신임을 얻었으며, 1988년 11월 선거에서 4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재임기간 동안 걸프전 승리와 구 소련 붕괴 등 외교·군사 부분에서는 나름 성과를 거두었으나, 내정문제의 실정으로 대통령 재선에는 실패했다. 퇴임 뒤로는 초당파적인 행보를 보이며 퇴임한 지도자로서의 귀감을 보였다. 2018년 11월 30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목차

접기
  1. 초기 생애
  2. 정계 진출
  3. 부통령 시절
  4. 제41대 대통령 당선
  5. 퇴임 이후
  6. 업적과 평가
부시(George H.W Bush)
부시(George H.W Bush)

초기 생애

증권인수업자이자 코네티컷 출신 상원의원인 프레스콧 셸던 부시의 아들로 태어난 조지 부시는 코네티컷 주 그리니치에서 성장하면서 그곳과 매사추세츠 주 앤도버에서 사립학교에 다녔다. 앤도버의 필립스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해군 예비역에 편입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1942~44년 태평양에서 항공모함 탑재 뇌격기의 조종사로 활약하여 공군무공십자훈장을 받았다. 그리니치로 돌아온 부시는 예일대학교에 입학하여 1948년에 졸업했다.

해군 전투기 조종사 시절의 부시
해군 전투기 조종사 시절의 부시

정계 진출

아버지의 농장에서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두고 텍사스로 이사하여 유전 공급품의 세일즈맨이 되었다. 조지 부시는 자파타석유회사(1953)와 자파타연안회사(1954)를 공동 설립했다. 1959년 휴스턴에서 공화당에 입당했고, 1964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후 1966년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70년 하원 의석을 포기하고 상원의원 선거에 재출마했으나 다시 고배를 마셨다.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은 조지 부시를 미국의 유엔 주재대사(1971~72)로 임명했다. 1973년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졌을 때 부시는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다. 부시는 1974년 8월까지 닉슨 대통령을 두둔하다가 대통령에게 사임을 촉구했다. 제럴드 R. 포드 대통령이 그해 말 부시를 미국의 베이징 연락사무소 소장으로 임명했다. 부시는 동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가 본국으로 소환되어 중앙정보국 국장으로 취임했다(1976~77).

부통령 시절

1980년 조지 부시는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을 얻기 위한 유세에 돌입했으나 5월에 유세를 포기하고 로널드 W. 레이건을 지지했으며, 레이건은 부시를 그의 러닝메이트로 뽑았다. 레이건은 198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물리쳤다. 부통령으로서(그리고 상원의장으로서) 부시는 레이건의 신임을 얻었으며, 1984년 부통령후보로 지명되어 재선되었다.

제41대 대통령 당선

현직 부통령으로서 조지 부시는 1988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일찍이 선두에 나섰다. 부시는 지명을 획득한 후 1988년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초기에는 일방적으로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결선 투표에서 일반 투표의 54%를 획득, 46%를 얻는 데 그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퇴임 이후

퇴임 이후로는 현역 시절 정적이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내외와 2005년 동남아 쓰나미 피해 복구를 위한 모금 활동에 동참하는 등, 국제적인 이슈에 있어서 손을 잡고 초당파적 행보를 보여주었다. 2012년 혈관 파킨슨증후군 투병 사실을 밝힌 뒤 수년간 투병 생활을 이어왔고, 최장수 전직 미국 대통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4월 아내 바바라 부시 여사가 사망한 뒤 급속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11월 30일(현지 시각)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장례는 12월 5일, 2007년 제너럴 포드 전 대통령 장례 이후 11년 만에 국장으로 치러진다.

업적과 평가

재임 기간 중 조지 부시는 주로 외교와 국제 문제에서 업적을 거두었다. 부시의 재임 기간 중에 20세기의 가장 큰 불안 요소였던 냉전 상태가 종식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독일이 통합되면서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 블록이 붕괴되었고, 소련이 해체되어 러시아와 신생 독립국가들로 분해되면서 미국이 세계 유일의 강국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1989년 12월 파나마에 파견된 미군 살해사건을 계기로 파나마를 침공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1990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친미 정부였던 쿠웨이트를 무력으로 장악하자, 곧바로 이라크를 공격하여 1개월만에 승리를 거두는 등 국제정세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국내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1992년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는 경제 등 내정문제의 실정으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