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화파

베네치아 화파

다른 표기 언어 Venetian school

요약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화가들 및 그들의 미술.

베네치아는 피렌체나 로마와 마찬가지로 서유럽 미술사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중요성과 영향력을 누렸는데 베네치아 미술의 두드러진 특징은 빛과 색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베네치아에서는 대대로 뛰어난 화가가 속출했는데 그 첫번째 인물은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제자 자코포 벨리니(1400경~70)였다.

그의 스케치북 2권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데 그의 아들인 젠틸레(1429경~1507)와 조반니(1430~1516) 및 사위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 대부분의 구성이 그에게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젠틸레 벨리니는 한때(1479~81)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메메드 2세의 궁정에서 궁정화가로 일했으며, 또한 로마를 방문해 많은 스케치를 했다.

조반니 벨리니는 당대의 유명한 교사였고, 그의 제자로는 조르조네(1477~1510), 티치아노(1488/90~1576), 자코포 베키오(1480경~1528),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1485경~1547) 등이 있었다. 요컨대 그는 베네치아의 성기 르네상스 화가들을 가르쳤다. 조반니 벨리니는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였을 뿐 아니라 가장 창의성이 풍부하고 독창적인 화가이기도 했다. 베네치아에 들어온 당시 플랑드르 화가들의 작품에는 풍경에 대한 관심이 빠짐없이 들어 있었는데, 그는 이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수많은 성모화에서 주제를 아름답게 꾸미고 다양한 변화를 주기 위해 자연 세계의 일부를 이용했다.

벨리니의 후기 양식은 성기 르네상스 양식이었고 그는 같은 세대의 대가들이 거의 이루지 못한 표현 양식의 변화를 이루었다. 베네치아에서는 벨리니를 중심으로 한 화가집단이 가장 성공적이고 진보적이었지만, 그들 외에도 비토레 카르파초(1460~1525/26)와 비바리니 가문도 있었으며, 나중에 등장한 바사노 가문은 벨리니와 밀접한 관계는 없었지만 역시 베네치아 화파에 속했다.

조르조네가 일찍 죽는 바람에 베네치아 화파는 가장 유망한 대가를 잃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몇 점에 불과하며, 이 그림들조차도 티치아노나 세바스티아노가 완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남긴 작품은 흐릿한 갈색빛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것이 작품에 우울한 낭만적 분위기를 높이는 작용을 한다. 조반니 벨리니가 죽자 티치아노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공식 화가가 되어 그후 반세기 동안 베네치아 회화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풍부한 색채와 선보다 색을 강조하는 그의 기법은 널리 모방되었다. 그는 종교적 주제와 고전적 주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사람의 심리를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통찰력있는 초상화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 티치아노는 1533년에 기사작위를 받았고,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후기 베네치아 화파의 대가들인 자코포 틴토레토(1518경~94), 파올로 베로네세(1528~88), 엘 그레코(1541~1614)는 티치아노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틴토레토는 베네치아에서 마니에리스모를 주창한 대표적 인물이었고, 베로네세는 솜씨가 뛰어나고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장식가였다. 엘 그레코는 열정적인 신비주의자로서 지나치게 개인적인 자신의 화풍을 유지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베네치아 화파가 부각되었던 마지막 시기는 18세기였다. 카날레토(1697~1768), 티에폴로(1696~1770), 벨로토(1720~80), 프란체스코 구아르디(1712~93) 등 국제적 명성을 지닌 뛰어난 화가들이 이 시기에 여러 명 배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