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홀 버라이어티 쇼

뮤직 홀 버라이어티 쇼

다른 표기 언어 music hall and variety

요약 가수·광대·무용수·배우 등이 차례로 등장해 만드는 대중 연예물.

때로는 재주꾼이나 요술사, 곡예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18, 19세기 영국 도회지의 술집 콘서트에서 유래했으며, 점차 뮤직 홀에서 술을 마시면서 무료로 즐기는 무대 공연물을 가리키게 되었다. 1751년 이러한 뮤직 홀 버라이어티 쇼의 난립을 막기 위해 허가증을 발부받도록 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반대로 나타났다. 영세한 술집에서는 허가증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음악 클럽을 결성했고, 허가증을 발부받을 능력이 있는 큰 술집들은 음악가들을 고용하고 무대 장치를 마련해 오히려 버라이어티 쇼의 규모를 확대시켰다.

장소도 장식적인 무대 효과를 위해 원래의 장소인 술집에서 사치스러운 빌로드 천과 금박으로 장식한 호화 건물로 옮겨지게 되었다. 당시 '살롱'은 대중적 연예를 위한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적용되는 말이었고, '버라이어티 쇼'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혼합된 저녁 연극을, '뮤직 홀'은 음악 여흥물과 코미디 여흥물을 섞어 보여주는 콘서트 홀을 뜻했다.

19세기에는 도시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연예물에 대한 요청 역시 커졌다.

1843년 뮤직 홀에서는 음주와 흡연이 법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여전히 정식극장에서는 금지되었다(연극규제법률). 따라서 술집 주인들은 각자의 점포들을 합쳐서 뮤직 홀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뮤직 홀에서 공연된 소극(笑劇)은 중산층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해변 휴가, 대가족, 세탁일 등과 같이 고객들에게 친숙한 사건들을 풍자해서 보여주었다.

영국 뮤직 홀의 창시자 찰스 모턴은 1852년 런던에 모턴 캔터베리 홀을 세워 대중음악뿐 아니라 고전음악도 포함한 알찬 프로그램을 발전시켰다.

뛰어난 연주자로는 알버트 슈발리에, 그레시 필스, 릴리 랭트리, 해리 로더, 댄 레노, 베스타 틸리 등이 있다. 버라이어티 쇼는 대개 소극이나 재주, 요술, 마임, 곡예, 춤, 노래극, 때로는 단막극 등 대개 6~8개 정도의 공연 단위들로 구성되었다.

20세기 초반 대규모 버라이어티 쇼 극장이 등장하면서 뮤직 홀은 규모가 축소되었다.

버라이어티 쇼를 공연한 런던의 극장 중 히퍼드롬은 수중(水中) 연극을 상연했고, 콜리세움은 더비 경기(영국 런던 근교의 입솜 다운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3살된 말들의 경마)와 고대 로마의 쌍두마차 경기를 보여주었다. 이 프로그램들은 비록 단명했으나, 그밖에 다른 프로그램들이 지속됨으로써 뮤직 홀이 영화에 눌려 자취를 감춘 뒤에도 버라이어티 쇼는 계속 성행할 수 있었다. 사라 베르나르나 조지 알렉산더 경, 허버트 비어봄 트리 경과 같은 인기 배우들은 1막짜리 연극이나 전체 버라이어티 쇼의 마지막을 장식했고, 피에트로 마스카니나 헨리 우드 경과 같은 음악가들은 악단 단원들과 함께 연주를 했다.

1920년대의 노라 베이스와 소피 터커와 같은 가수들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인기 절정에 올라 있던 디아길레프의 발레는 1918년 코미디언과 마술사들이 포함된 콜리세움의 프로그램에 나타났다. 1920년대 무성영화가 등장하자 전 영국의 버라이어티 쇼 극장들은 영화관으로 전환해야 했다. 코미디언들을 계속 고용하기 위해 영화와 노래가 혼합된 소위 시네-버라이어티가 등장했고, 또한 극장 문을 정오부터 자정까지 열어놓기도 했다. 런던의 피카디리 서커스 극장 근처에 자리잡은 윈드밀 극장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수백 개가 넘던 뮤직 홀들 중 살아남은 몇 안되는 극장 중 하나이다.

영국의 뮤직 홀 공연물에 해당하는 미국의 공연물은 보드빌이다(토키).→ 보드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