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진화

문화적 진화

다른 표기 언어 cultural evolution , 文化的進化

요약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문화가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발전하는 것.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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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세기 단선론적 문화이론
  2. 20세기 다선론적 문화이론

문화적 진화를 단선적으로 보면서 인류 전체의 발전을 더듬어나갈 수도 있고, 다선적인 시각에서 각 문화나 사회 또는 주어진 문화나 사회의 일정한 부분의 발전을 개별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에 이은 대륙발견시대는 유럽인들이 전세계 원시 종족들을 알게 된 시대였으며 현대 인류학이 시작된 시대이기도 하다(탐험의 역사). 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문화를 설명하고 자기 민족과 흡사한 종족을 통해 유럽 사회의 발전에 관한 이론을 세우려 했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원시인은 "예술도, 글자도, 사회도 없는" 상태에서 살며 생활은 "외롭고, 가난하고, 더럽고, 짐승 같고, 수명도 짧다"고 한 것은 대체로 '야만인'에 대한 당시의 관념을 나타낸 것이었다. 아름답고 세련된 것은 모두 이처럼 저급한 상태에서 서서히 발전해나왔던 것이다. 마침내 인간의 진보 또는 완성에 관한 사상이 생겨났다. 18세기 독일의 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는, 인간은 신의 창조물로서 어떤 세속적인 목적 곧 그 자체로 완성을 향한 진보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볼테르와 같은 훨씬 더 합리주의적인 철학자들도 은연중에 인류가 계몽을 통해 점차 진보해간다고 생각했다. 볼테르의 동료인 프랑스의 경제학자 A.R.J. 튀르고는 〈부의 형성과 분배에 관한 고찰 Réflexions sur la formation et la distribution des richesses〉(1766)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세계역사를 통해 풍속은 점점 온화해지며, 사람의 정신은 깨어나고, 떨어져 있던 민족들이 서로 더 가까워지며, 상업과 정책을 통해 결국 세계 모든 지역이 연결된다. 또한 서서히 진행되기는 하지만 평화와 혼란,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이 교차하는 가운데 인류 전체는 언제나 더 완전한 상태를 향해 전진한다."

진보사상과 함께 인류가 진보해가는 고정된 '단계'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보통 야만·미개·문명의 3단계가 제시되었으나 더 여러 단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콩도르세 후작은 10단계 또는 '시대'가 있으며 프랑스 혁명으로 마지막 단계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프랑스 혁명은 인간의 권리와 인류의 완성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과 함께 19세기 중심사상에 진보이념을 굳게 심어준 여러 가지 힘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잠시 동안이지만 18~19세기초 인간의 역사에 관한 전혀 다른 사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기원론 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1755)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은 '자유롭고, 건강하고, 정직하고, 행복했으나' 사회제도가 발전함에 따라 타락하고 노예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진보론을 거꾸로 뒤집은 이론이었다. 이 사상은 '고상한 야만인'에 관한 모든 낭만주의 문학의 원천이 되었는데,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이 19세기초 샤토브리앙의 소설들일 것이다.

샤토브리앙은 프랑스 혁명 시대의 망명객으로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관해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진보하지 않고 타락해갈 뿐이었다.

19세기 단선론적 문화이론

문화적인 단계론을 대표하는 주요인물들로 각각 영국과 미국의 인류학자 E. B. 타일러(1832~1917)와 루이스 H. 모건(1818~81)이 있다.

그러나 모건은 단계 그 자체보다 민족적인 시대의 뜻으로 단계라는 용어를 썼다. 인류와 문명의 총체적인 발전에 관한 이론을 포함해서 자신들의 이론을 설명하는 데 적합한 경우 이외에는 타일러와 모건은 개별 문화보다 문화 일반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모건의 저서에는 단계론적인 접근 방법이 잘 나타나 있다.

모건은 뉴욕 시 북부지역 출신 변호사로서 처음에는 이로쿼이 인디언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다가 마침내 특히 친족제도라는 측면에서 전세계 문화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친족제도 연구를 통해 현대사회에 원시시대의 문화잔여(survivals), 즉 초기 인류시대에 속하나 현대사회에까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풍습과 관습을 찾아냈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사회적인 인간은 진화적인 단계, 즉 '낮은 야만 상태'에서 '문명'까지 7단계를 통해 진보한다고 보았으며, 자기 시대에서 각 단계의 특징을 지닌 여러 사회를 예로 들어 단계적인 발전 이론을 '입증'하려 했다.

〈고대사회 Ancient Society〉(1877)를 통해 그는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인류는 기원이 같기 때문에 발전 경로도 같았다. 세계 어느 곳을 보아도 형태는 다르나 똑같은 경로를 거쳐 발전해왔다. 인류의 모든 종족과 민족은 발전 정도까지 아주 비슷하다. 따라서 미국 인디언 부족들의 역사와 경험은 비슷한 환경에서 살던 미국 국민의 먼 조상의 역사와 경험을 어느 정도 가깝게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진보와 문화적 진화라는 개념은 19세기 중반 유기적 또는 생물학적 진화이론이 널리 받아들여짐으로써, 특히 다윈〈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1859)이 발표됨으로써 크게 발전했다.

사회과학계에서는 생물학적인 진화라는 사상을 사회적 행동의 기원과 발달에 관한 비슷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사회를 진화하는 유기체로 보는 사상은 많은 인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생물학적인 유추를 통해 받아들인 개념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부 학계에 남아 있다. 물론 다윈이 유기적 진화사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1820~1903)를 비롯해서 다윈과 같은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다소 독자적인 방식으로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 스펜서는 후천적으로 획득된 능력이 유전되어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일반화된 다음에야 비로소 자연도태가 적어도 생물학적인 진화를 가져오는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이론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은 스펜서였다. 마침내 스펜서가 진화론의 일반체계를 완성해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절대적인 힘이 물질세계에 끊임없이 작용하면서 다양성·일관성·총체성·특수성·개별성을 만들어낸다. 가스가 응축되어 지구가 생겨났으며 지구가 더욱 변화를 겪으면서 아메바와 같은 단순한 동물이 생겨났고 인간은 단순한 종(種)에서 진화하여 처음에는 분화되지 않은 채 군집생활을 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사회기능이 발전해서 사제·왕·학자·노동자 따위가 생겨났으며 지식도 여러 분야의 과학으로 나누어졌다. 간단히 말하면 다른 모든 변화하는 사물과 함께 인간사회도 분업을 통해 분화되지 않은 군집상태에서 복잡한 문명으로 진화했다.

일부 학자들은 사회적 다위니즘 또는 사회적 진화론을 자기 시대의 사회·경제·철학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1840~1910)는 자유방임주의, 개인의 자유, 인간의 타고난 불평등에 대한 굳은 신념을 전파했다.

그는 사회적 진화론자로서 소유와 사회적인 지위를 위한 경쟁을 통해 다행스럽게도 부적응자가 제거되고 인종적인 '순결성'과 문화적인 활력이 보존된다고 보았다. 또 정부가 복지 조치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바꾸려 한다면 진보를 가로막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세기 다선론적 문화이론

20세기초의 미국과, 그뒤 유럽에서 문화적 진화에 관한 포괄적인 일반 이론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특히 진화 '단계'에 관한 이론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모든 문화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독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미국에서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사람은 독일 태생의 인류학자인 프란츠 보아스(1858~1942)였다. 보아스는 루스 베니딕트, 마거릿 미드를 비롯하여 같은 세대의 인류학도들과 함께 문화에 대한 포괄적인 해설을 완전히 외면하고 원시 종족들에 대한 현지조사에만 몰두했으며, 문화적인 생활과정에 대한 증거로서 여러 가지 다양한 사실들과 고고학적인 자료를 발굴하는 성과를 올렸다(→ 문화사). 이러한 '문화적인' 접근방법이 20세기 전반기에 미국의 인류학을 지배했으며 다른 지역의 인류학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일반이론과 함께 사회발전의 '체계를 세우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드물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터 소수의 학자들 사이에 진화론이 얼마간 되살아났는데 거의 대부분 미국의 인류학자들이었다. 이들을 조금 애매하게 신(新)진화론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윈이나 스펜서의 진화론이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고 되살아날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철학·역사·과학에 활력을 불어넣어온 것은 새로운 지식이었으며 사물·삶·사회를 보는 새로운 태도와 방법이었다.

레슬리 A. 화이트, 줄리언 H. 스튜어드, 마셜 D. 샐린스, 엘먼 R. 서비스와 같은 인류학자들의 신진화론에는 1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단일한 진화과정 또는 진화양식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자유방임주의나 적자생존, 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학설로 진보나 진화를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합리적이고 목적의식적인 변화만이 진화의 유일한 동기라고 강변하지도 않는다.

진화과정은 복합적이라는 것이 현대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다. 여러 시대와 사회에서 계획적인 것과 우연한 사건들이 다양한 비율로 진화의 구성요소가 되어왔다. 진화는 창조적인 발전, 역사의 우연, 문화의 유입 또는 전파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온갖 원인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변화가 다양하게 결합한 결과이다.

신진화론자들은 보편적인 단계론을 철저하게 부정한다. 진화는 다선적이며 다양한 양식과 기간을 요구하는 수많은 발전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아직까지 '특수한' 진화와 '보편적인' 진화를 구별하는 경우가 많다.

특수한 민족의 특수한 진화과정이 있을 수 있으나, 개별 민족들이 진보를 이룩하는 가운데 인류는 보편적으로 진화 또는 진보해간다. 개별 민족의 진보를 통해 인류 전체가 환경에 더욱 적응해서 환경을 더 많이 지배할 수 있게 되고 사회조직도 더욱 복잡해진다. 오직 이러한 뜻에서만 세계 문명 전체를 단일한 과정의 산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