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

문인화

다른 표기 언어 文人畵 동의어 사부화, 사인화, 예가화

요약 사부화·사인화·이가화·예가화라고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화라고도 했다. 왕공·사대부를 비롯한 벼슬하지 않은 선비와 시인묵객이 그린 것으로 화원의 원체화 경향과 대립된다. 문기와 서권기가 깃든 소박한 수묵화법을 진작시켰으며, 시화일치·서화일치의 경지와 시·서·화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는 3절의 상태를 지향했다. 소재는 사군자·산수·인물·영모·화훼 등의 분야에서 유교적 윤리의식과 친자연적 성향을 지닌 화제를 많이 다루었다. 화풍은 산수화에서는 남종화풍을, 인물화에서는 백묘화법을, 영모·화훼에서는 야일체를 주로 구사했다.
고려와 조선의 문인화가로는 헌종·공민왕·김부식·이인로·강희안·강희맹·윤두서·정선·강세황·김정희 등이 있다. 조선 말기 중인·평민출신의 여항문인화가들이 등장하여 회화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부화·사인화·이가화·예가화라고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화라고도 했다. 왕공·사대부를 비롯한 벼슬하지 않은 선비와 시인묵객들이 비직업적 입장에서 그린 것으로 화원들의 원체화와 대립되는 경향을 보였다.

문인들은 심성을 기르고 심의와 감흥을 표현하는 교양적 매체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화원들의 기교에 토대를 둔 형사적이고 장식적인 채색풍을 반대했으며, 그대신 대상물의 정신과 고매한 인품을 지닌 작가의 내면세계를 나타내는 사의의 구현에 목표를 두었다. 그러므로 화려하고 정교한 기법보다는 문기와 서권기가 깃든 간일하고 소박한 수묵화법을 진작시켰으며, 시나 서예와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여 시화일치 또는 서화일치의 경지와 시·서·화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는 3절의 상태를 지향했다. 소재는 사군자를 비롯해 산수·인물·영모·화훼 등의 분야에서 유교적 윤리의식과 친자연적 성향을 지닌 화제를 많이 다루었다.

화풍의 경우 산수화에서는 남종화풍을, 인물화에서는 백묘화법을, 영모·화훼에서는 야일체를 주로 구사했다. 이러한 문인화에 대해 명 말기의 동기창(董其昌)은 당대의 왕유(王維)를 시조로 하여 오대·북송의 동원(董源)·거연(巨然)·이성(李成)·범관(范寬)·이공린(李公麟)·미불(米芾)과 원말4대가를 거쳐 명대의 심주(沈周)와 문징명(文徵明)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는 고려 중기·후기부터 북송대 문인화론의 유입과 함께 왕공·사대부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풍조가 대두되어 묵죽화 등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통해 헌종·인종·공민왕·안평공(安平公)·광릉공(廣陵公)을 비롯해 김부식(金富軾)·김돈중(金敦中)·정지상(鄭知常)·안치민(安置民)·정홍진(丁鴻進)·정득공(鄭得恭)·이인로(李仁老)·이제현(李齊賢) 등의 문인화가가 배출되었으며, 그중에서 특히 정홍진의 묵죽은 중국에까지 알려졌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조선 초기에는 강희안(姜希顔)·희맹(希孟) 형제를 필두로 유자미(柳自湄)·양팽손(梁彭孫)·김유(金紐)·김정(金淨)·신잠(申潛) 등이 문인화이념과 문인화목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기에는 김제(金禔)·이경윤(李慶胤)·조속(趙涑) 등이 당시의 화풍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이정(李霆)의 묵죽, 어몽룡(魚夢龍)의 묵매, 황집중(黃執中)의 묵포도는 당대의 최고로 손꼽히는 등 문인화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러한 조류는 후기에 이르러 더욱 확대되어 윤두서(尹斗緖)·정선(鄭敾)·심사정(沈師正)·이인상(李麟祥)·강세황(姜世晃)·윤제홍(尹濟弘)·신위(申緯)·김정희(金正喜)와 같은 대가들을 배출시켰으며, 말기에는 중인·평민출신의 여항문인화가들을 대두하게 하는 등 회화사 전개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문인화(文人畵)
문인화(文人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