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화

원체화

다른 표기 언어 Imperial-court decorative painting , 院體畵

요약 중국 궁정의 그림 제작기관인 화원(畵院)에서 활동하던 직업화가들의 그림 양식.

원화(院畵)라고도 한다. 문인화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시대에 따라 궁정의 취미가 바뀌었으므로 일정한 양식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주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마다 궁정에 회화를 담당하는 기관을 두었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화원(畵員)들이 있었는데, 그 규모와 명칭은 다양했다. 화원이라는 명칭의 기관이 등장한 것은 당나라 현종(개원연간, 713~741) 때이다. 북송시대에는 남당과 서촉(西蜀)의 화원제도를 답습하여 규모와 내용에서 중국 화원의 전형이 되는 한림도화원(翰林圖畵院)이 설치되었다. 이것은 남송으로 계승되어 제도가 더욱 정비되면서 중국 화원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북송 휘종 때의 선화화원(宣和畵院)과 남송 고종 때의 소흥화원(紹興畵院)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 원·명·청대에는 독립된 기관으로서의 화원은 없었으나 인지전(仁智殿)·무영전(武英殿)·여의관(如意館)과 같은 궁정의 회사(繪事)를 담당하는 건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원체화는 사실적이고 정교한 묘사와 화려하고 장식적인 효과를 중시하고 전통적인 격법(格法)을 존중했으므로, 화가의 개성과 정신성의 표출을 우선으로 여기는 문인화와는 상반되는 경향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원체화에는 당나라 염립본(閻立本)과 주방(周昉) 등의 인물화, 이사훈(李思訓)과 이소도(李昭道)의 청록산수화, 남북조시대 서희(徐熙)와 황전(黃筌)의 화조화가 있다. 북송의 원체화는 최백(崔伯)과 휘종황제 등의 영모화, 곽희를 중심으로 한 산수화가 근간을 이루고 남송의 원체화는 마원과 하규(夏珪)의 마하파 화풍으로 대표된다. 명대에는 대진(戴進)이 이끈 절파(浙派) 화풍이 명대 원체화의 주류를 이루었고 당인과 구영의 인물화, 임량(林良)과 여기(呂紀)의 화조화도 원체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즉 북송이 멸망한 뒤 고려는 북쪽에 위치한 금과, 남쪽에 위치한 남송과 모두 활발한 회화교섭을 통해 금나라에서 유행하던 북송의 화풍, 남송에서 유행하던 마하파와 유송년(劉松年)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원체화풍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시대에 축적된 이러한 중국 회화의 일단은 안평대군의 서화수장(書畵收藏) 목록을 통해서 확인된다.

조선 초기에 마화파는 이곽파(李郭派)와 함께 화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상좌(李上佐)의 〈송하보월도 松下步月圖〉는 이러한 면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명대 원체화풍인 절파 화풍도 조선 초기에 일부 진보적인 화가들에 의해 수용되었고, 점차 확산되어 중기에는 거의 모든 화원이 이 양식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