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무속

다른 표기 언어 巫俗

요약 좁은 의미에서 무속은 무당과 관계된 종교현상을 말한다. 원래 무당은 여무를 지칭하며 만신이라고도 한다. 남무는 박수·박사라 부른다. 중세사회에서 무당은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신분에 속했다. 무당은 입무 형태에 따라 단골무당과 강신무당으로 나뉜다. 단골무는 세습무로서 모계세습 형태로 전승되고, 강신무는 신내림을 통해 무당이 되며 신의 영력으로 굿을 집행한다.
무속의 종교적 특성은 첫째, 자연신앙으로서 한국 민간신앙의 전형을 이룬다. 둘째, 현세구복적 동기를 성취하기 위해 주술적 방법을 사용한다. 셋째, 다양한 신앙형식이 융합되어 중층적인 신앙현상군을 이루고 있다. 넷째, 무속은 의례 중심의 종교이다. 집안이나 마을신앙은 모두 굿이라는 의례를 통해 구체화된다. 다섯째, 무속의 전승 주체는 지역사회이다.

목차

접기
  1. 개요
  2. 무의 개념
  3. 종교적 특성
  4. 역사
  5. 종류

개요

민간신앙·민속종교·고유신앙·토속종교·향토신앙·민중신앙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무속으로 통칭된다.

보다 좁은 의미에서의 무속은 무당과 관계된 종교현상을 말한다. 정작 '무속'이란 명칭 자체는 근대로 접어들면서부터 쓰이기 시작해 무당과 관련된 습속으로 취급되었다.

무의 개념

〈주자어류 朱子語類〉에는 무(巫)란 "신명(神明)을 다해 춤추는 사람이다"라고 되어 있다.

한자 '巫'자의 '工' 양변에 있는 '人'자는 춤추는 모양을 취한 것이니 무당이 신에게 의탁하기 위해 가무를 필요로 한 것이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五州衍文長箋散稿〉에서는 "지금 우리 고을에 여무(女巫)와 남격이 둥둥 북을 치며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했는데, 이는 귀(鬼)를 쫓고 신을 내리는 것을 일컫는다"고 했다.

원래 무당은 여무를 지칭하며 만신(萬神)이라고도 부른다.

남무(男巫)는 박수·박사(博士)라 부르는데, 이것은 주역박사(周易博士)·다지박사(多智博士) 등에서 비롯되었다. 또 남무를 화랭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신라의 화랑(花郞)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밖에 광대·우인(優人)·재인(才人) 등도 무당을 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무당들이 천한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중세사회에서 무당들은 8천(八賤)의 하나로 규정되어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신분에 속했다.

무당은 입무(入巫) 형태에 따라 단골무당과 강신무당으로 나눌 수 있다. 단골무는 곧 세습무로서 모계세습 형태로 전승된다. 강신무는 신내림을 통해 무당이 되며 신의 영력으로 굿을 집행한다. 어떤 경우에도 무당이 되려면 일정한 학습과정을 거쳐야 했다.

신어머니라고 불리는 사람의 조무(助巫) 역할을 하면서 상당 기간 노래와 춤을 비롯한 여타 의례를 배운 후에 독립된 무당이 된다.

종교적 특성

첫째, 자연신앙으로서 한국 민간신앙의 전형을 이룬다.

따라서 교조(敎祖)·교리(敎理)·의례·교단(敎壇)과 같은 체계적인 종교형식을 갖추지 않고 있다. 현세구복적(現世求福的)인 신앙으로 인간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욕구, 즉 생존과 후사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구복적 동기만 맞으면 사회윤리나 합리적 사고에 관계없이 어떠한 신앙형식도 수용·변화시킨다. 둘째, 현세구복적 동기를 성취하기 위해 주술적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무속을 주술종교라고 한다. 무속을 믿는 사람들은 복잡한 사고과정을 치르거나 모호한 상징성을 많이 사용하기보다는 의례효과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주술을 행함으로써 그 효과가 당장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셋째, 다양한 신앙형식이 융합되어 중층적인 신앙현상군을 이루고 있다. 즉 무속은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한민족의 생활 속에서 자리잡아왔으며 외래종교들이 유입되자 무속과 융합을 이루기 시작했다. 신라시대에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었다는 기록은 그만큼 전래 무속과 새로 유입된 종교가 갈등을 빚었음을 말해준다.

불교·유교·도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무속과 하나가 되었다. 절에 자리잡은 칠성각(七星閣)·산신각(山神閣)·삼성각(三聖閣)·삼불제석(三佛帝釋) 등은 불교와 민간의 무속이 융합한 대표적인 예이다. 칠성신앙·남강노인 등은 도교적인 요소와 결합된 결과이다. 당산제와 당산굿, 서낭제와 서낭굿 같이 제(祭)와 굿이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은 무속의례와 유교의 제가 혼용된 결과이다. 넷째, 무속은 의례 중심의 종교이다. 집안신앙이나 마을신앙 등은 모두 굿이라는 의례를 통하여 구체화된다.

다섯째, 무속의 전승 주체는 지역사회이다. 민간신앙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보편적으로 존재하지만 각 지역사회의 지역적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다. 무가의 본풀이가 역사적인 것을 표현해 공동체 성원의 삶의 내력들을 신화로서 전승하고 있음은 바로 지역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역사

선사시대 유물 가운데 의기(儀器)로 추정되는 청동방울·청동거울·청동두겁 등이 자주 출토되는데 이는 모두 무속의 역사가 청동기 시대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다. 당시의 사회는 사제권과 정치권이 분리되지 않은 제정일치사회로서 무당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소도(蘇塗)라는 신성지역이 설정되었다는 기록이나 〈삼국사기〉의 신라 2대 남해왕조(南解王條)는 왕 자신이 무당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현존하는 무속과 거의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나타난다. 무신란 이후 이규보가 남긴 장시 〈노무편 老巫篇〉은 신내린 무당이 춤추면서 공수를 주는 굿판과 단청된 신상이 가득한 신단을 보여준다. 동시에 무당의 도성축출(都城逐出)을 주장함으로써 당대 유교적 지식인들의 무속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잘 보여준다. 조선시대로 접어들면 오늘날과 거의 흡사한 무속의례들이 다수 전해져 일정한 정착을 이루었음을 알려준다.

무속은 역사적으로 많은 탄압을 받았다. 고려시대에는 신유학(新儒學)이 등장해 무속의 폐해를 지적하고 배격하는 운동이 완강하게 일어났으며, 안향(安珦)이 상주에서 무당을 다스리고, 〈고려사〉 열전에 권화(權和)가 요민(妖民) 이금(伊金)을 처단한 기록 등이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유교의 강력한 배격에 당면하게 된다.

제주도의 신당(神堂)을 파괴해 변방지역 제주에 유교적 봉건체제를 확립하려 했던 조선시대 숙종조의 제주목사 이형상의 행적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는 1702년(숙종 28)에 제주목사로 내려가서 삼읍(濟州·旌義·大靜)의 음사(淫祀:堂神)와 불사 130여 개소를 파괴하고, 무격 400여 명을 귀농시킨다. 무당의 풍기문란·민중현혹·재산갈취 등을 엄금하는 음사금지법(淫祀禁止法) 5개조라든지, 동서활인원제(東西活人院制)·무세·무사금률(巫祀禁律)·무의·출성(出城) 같은 무속금제(巫俗禁制)의 법적 조치가 이루어졌다. 또한 무속에 의지해 왕권에 도전하는 사례도 다수 발생했다. 태종대에 강신공창(降神空唱)하다가 처벌된 요무(妖巫) 백이(栢伊), 세조 때에 상왕복귀(上王復歸)라는 요언모역죄로 능지처사를 당한 무녀 용안(龍眼), 연산군대에 요술로써 혹민하던 무녀 돌비(乭非) 등의 숱한 사례에서 보이듯이, 이른바 요(妖)는 곧 혹세무민자로 능지처사를 당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민란의 시기마다 확산되어나갔던 남조선신앙·정감록·미륵신앙운동 등의 중세사회의 민중신앙운동은 무속과 관련지어서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종류

풍어굿
풍어굿

작은 범주로서의 무속은 무속의례만을 지칭한다.

그러나 무속의 종류를 크게 보면 한국 민간신앙의 전체적인 현상을 모두 망라하므로 그 종류가 매우 넓어진다. 즉 마을신앙·집안신앙·주술·점복 등이 모두 포함된다. 마을신앙은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빌기 위해 1년에 1~2번씩 정기적으로 갖는 풍어굿·풍농굿 등의 제의로 이루어진다. 각 지역 및 신격에 따라 당산제·동제·영등제·골매기굿·서낭굿·동신제·장승제·거리제·우물굿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집안신앙은 집 안 구석구석에 자리잡은 신격들인 성주·삼신·터주·조왕·대감·업·문신·곳간신 등을 모시는 의례로 정초의 안택(安宅)이나 시월상달고사로 모셔진다.

집안신앙에는 독경도 포함되며 경잽이가 집안에 와서 안택이나 환자굿을 행한다. 이때 〈천수경〉 등을 읽어 환자 치병과 축귀를 행한다. 특히 충청도 일대의 앉은반 독경이 유명하며 장님들이 주로 행한다. 주술은 치병과 부적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한 점복은 인간의 운명을 예언하는 행위로 전문적인 복사가 행하는 쌀점·새점·복점·육효점 등이 있다. 이밖에도 동식물숭배와 사귀신앙(邪鬼信仰) 등이 있다.

이러한 토테미즘은 산신도에 등장하는 호랑이나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 등과 연관되어 민간신앙의 기초를 형성해왔다. 사귀신앙은 도깨비·수비영산(잡신)·왕신(처녀귀신)·몽달귀신(총각귀신) 같은 사귀를 모시는 의례로, 사귀의 상징물로는 제웅·처용탈·도깨비문양 등이 있다. 자연신앙은 돌·나무 등의 자연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의 소산이며, 당산목·서낭목·입석신앙·기자신앙 등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