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회화

무굴 회화

다른 표기 언어 Mughal painting

요약 무굴 제국(16~19세기)이 통치하던 시절에 인도에서 발달한 회화양식.
Mogul Painting이라고도 씀.

주로 책의 삽화와 개인의 세밀초상화에만 국한되었다.

초기 단계에는 페르시아의 사파위 회화양식에서 받은 영향을 보여주었지만, 그후 페르시아의 양식에서 급속히 멀어졌다. 무굴 회화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아마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민간설화집 〈투티나마 Tuti-nama ('앵무새 이야기')에 실린 삽화일 것이

무굴 회화는 원래 궁정예술이었다.

이 회화는 인도를 통치하는 무굴 황제들의 후원으로 발달했고, 통치자들이 관심을 잃어버리자 쇠퇴하기 시작했다. 무굴 회화가 다룬 주제는 역사책과 페르시아 및 인도 문학 작품의 삽화, 황제와 궁정 신하들의 초상화, 자연계의 동식물 스케치 및 풍속화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체로 종교와는 관계가 없었다. 이 유파는 후마윤 황제(1530~40, 1555~56)가 미르 사이이드 알리와 크와자 아브드 웃 사마드라는 2명의 페르시아 예술가를 인도로 초빙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유파가 가장 먼저 착수한 중요한 사업은 〈다스탄에 아미르 함제 Dāstān-e Amῑr Ḥamzeh〉에 수록되어 있는 대형 세밀초상화 연작인데, 악바르 황제(1556~1605) 시절에 착수한 이 사업은 완성되었을 때 삽화의 수가 1,400여 점에 이르렀다. 크기가 유난히 큰(세로 71㎝, 가로 56㎝) 이 그림들 가운데 약 200여 점이 남아 있으며, 대부분 빈에 있는 오스트리아 응용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악바르 궁정의 인도 미술가들은 페르시아 회화의 수직 판형과 일반적인 배경 및 평면적인 원근법을 유지했지만, 갈수록 자연주의와 주위 세계에 대한 자세한 관찰을 보여주었다.

악바르는 역사를 좋아했기 때문에, 오늘날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악바르 나메 Akbar-nāmeh〉처럼 역동적인 삽화가 들어 있는 역사책을 주문했다. 동물에 대한 공감은 동물우화, 특히 〈칼릴라 와 딤나 Kalῑlah wa Dimnah〉·〈안와르 에 수하일리 Anwār-e Suhaylῑ〉 같은 우화의 삽화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밖에 뛰어난 연작으로는 인도 자이푸르의 시공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라즘나메 Razm-nāmeh〉(힌두 서사시인 〈마하바라타 Mahabhārata〉의 페르시아식 이름)의 삽화와 인도 람푸르의 레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하페즈(하르시아의 서정시인)의 〈디반 Dῑvān〉에 수록된 삽화가 있다. 이 시기의 뛰어난 화가는 다스반트와 바사반이었다. 무굴 제국의 예술가들은 1580년부터 예수회 선교사들과 인도를 방문한 유럽인들이 궁정에 소개한 판화와 채색 필사본을 통해 서양의 기법을 알게 되었다.

반대로, 렘브란트 같은 서양 화가들은 무굴 회화를 보고 모사했다.

자한기르(1605~27) 시대에는 책의 삽화를 덜 중요시하는 대신 궁정 장면과 초상화 및 동물 스케치를 더 좋아하여, 이런 그림들을 묶어서 그림첩을 만들었는데, 그림첩의 여백은 대부분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표현양식은 정교한 붓놀림에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진 것을 보여준다.

구도는 전보다 덜 빽빽하고, 색채도 차분해졌으며 움직임은 훨씬 정적이다. 자한기르 시대의 예술가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민감한 이해와 초상화의 심리적 통찰에 대한 흥미를 보여주었다. 이 시기의 유명한 화가로는 '시대의 경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부 알 하산, 초상화로 칭찬을 받은 비샨다스, 그리고 동물 스케치에 뛰어난 솜씨를 보인 우스타드 만수르 등이 있다.

자한기르 시대의 표현양식이 보여 준 우아함과 화려함은 샤 자한(1628~58) 시대에도 계속되었지만, 갈수록 차갑고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풍속화(음악회, 테라스에 있는 두 연인,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는 고행자들)가 더 자주 그려졌고, 이런 경향은 아우랑제브(1659~1707)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무굴 회화는 무하마드 샤(1719~48)가 다스리던 시절에 잠시 되살아났지만 점차적으로 쇠퇴했고, 샤 알람 2세(1759~1806)가 다스리던 시절에는 창작 활동이 완전히 멈추었다.

무굴 회화의 기법은 초기 단계에서는 흔히 여러 예술가가 한 조를 이루어 작업했다. 한 사람은 구도를 결정하고, 2번째 사람은 색을 칠하고, 초상화 전문가는 얼굴을 그렸을 것이다. 가느다란 붓은 회색다람쥐의 꼬리털로 만들었다. 종이는 처음에는 페르시아에서 수입했지만, 나중에는 인도에서 대나무와 황마 및 면으로 만들었다.

그림 물감은 광물과 식물로 만든 다음 물로 희석해서 사용했고, 물감을 고루 퍼지게 하는 전색제는 아라비아 고무 같은 접착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빨간색은 산화철과 황화수은 및 코치닐(연지벌레 암컷에서 채취하는 붉은 색소)로 만들었고, 파란색은 콩과의 낭아초속에 속하는 인디고라는 풀에서 채취했으며, 노란색은 오커로 만들었고, 흰색은 백납으로 만들었다. 광채를 낼 때는 그림을 다 그린 뒤에 광택이 나는 마노나 유리 같은 구슬로 그림을 문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