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마

바하마

다른 표기 언어 The Bahamas 동의어 바하마 연방, The Commonwealth of the Bahamas
요약 테이블
위치 아메리카 서인도제도 북부
인구 415,223명 (2024년 추계)
수도 나소
면적 13,939㎢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The Commonwealth of Bahamas
기후 아열대기후
민족 구성 흑인(85%), 백인(12%), 아시아인
언어 영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 양원제
종교 침례교(35%), 성공회(15%), 로마가톨릭
화폐 바하마 달러 (B$)
국화 노란삼나무
대륙 남아메리카
국가번호 1-242
GDP USD 12,318,000,000
인구밀도 30명/㎢
전압 110V/ 60Hz
도메인 .bs

요약 서인도제도 북서부 끝에 있는 국가. 약 70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도는 나소이다. 국민의 85%가 흑인이며 화폐는 바하마 달러이다. 주로 관광과 국제재정보조금에 의존하며 시장경제체제이다. 1인당 GNP는 다른 선진국과 비슷하다. 14세까지 무상의무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의료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
  6. 역사
  7. 바하마와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바하마(Bahamas)의 국기
바하마(Bahamas)의 국기

약 700개의 크고 작은 섬과 그보다 작은 2,000여 개의 낮은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군도지역으로 미국 플로리다 주 남동부 해안에 자리잡고 있다. 북회귀선을 가로지르면서 서대서양으로 약 23만 3,000㎢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

수도는 가장 중요한 섬인 뉴프로비던스에 있는 나소이며, 가장 큰 섬은 길이 167km, 너비 64km인 안드로스 섬이다.

지도
바하마

자연환경

산호질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바하마 제도의 섬들은 대개 평평한 모양으로 해발고도가 대부분 몇 m 되지 않는다. 가장 높은 곳인 캐트 섬의 알베르니아 산(옛 이름은 코모 산)은 높이가 63m이다.

섬들 대부분은 좁고 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동부 해안에서 솟아 낮은 능선으로 이어진다. 그 너머에는 석호와 홍수림이 들어찬 늪지가 있다. 해안선은 산호초로 덮여 있으며 강은 없다. 온화한 아열대성기후이며 12∼4월의 겨울과 5∼11월의 여름의 두 계절로 나누어진다. 멕시코 만류와 대서양 미풍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평균기온은 겨울에 21℃이고 여름에 27℃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1,120㎜ 정도지만 섬마다 약간 차이가 있다. 허리케인이 7월 중순에서 11월 중순까지 계속된다.

섬에는 부겐빌리아·재스민·난초·협죽도 같은 열대 꽃이 많이 핀다. 안드로스·그레이트아바코·그랜드바하마 등 몇몇 섬에는 카리브소나무 숲이 있다. 바하마 제도 원산인 블랙올리브·코르크나무·야자수 종류가 자라며, 마호가니·카수아리나·삼나무도 여러 섬에서 발견된다. 서식하는 동물군은 주로 개구리·도마뱀·뱀 등이며, 모기·나방파리·흰개미도 많다. 그밖에 국조인 홍학을 비록한 수많은 조류가 살고 있다.

그레이트이나과 섬의 이나과 국립공원에는 5만 마리가 넘는 서인도산 홍학이 세계 최대규모로 서식하고 있다. 상업성이 있는 광물은 소금·아라고나이트·석회석뿐이다. 소금은 대부분 그레이트이나과 섬과 롱아일랜드 섬의 소금층에서 태양열의 증발을 이용해서 생산한다.

Hurricane Wilma
Hurricane Wilma

국민

국민들은 유럽계와 노예로 온 아프리카계의 혼혈이다. 공용어는 영어이며 대부분 그리스도교를 믿는다. 약 1/3이 침례교도이고,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교도가 각각 1/4 정도 차지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30개 정도의 크고 작은 섬이다. 1970년대 많은 사람들이 도시집중화 추세에 따라 뉴프로비던스 섬, 그랜드바하마 섬, 그레이트아바코 섬 등의 몇몇 섬으로 몰려들었다. 뉴프로비던스 섬은 원래 인구빌도가 높았던 곳으로 현재 전인구의 2/3가 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980년 롱케이 섬은 주민이 33명에 지나지 않았다. 시골의 평균 인구밀도는 비교적 낮다. 인구성장률은 주로 출생률의 큰 증가에 힘입어 1970년대 후반부터 비교적 높아지기 시작하여 2000년대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2010년 센서스 기준 인구수는 351,461명 이었으며, 2024년 기준 추정 인구는 41만 5,223명이다. 전체 인구의 82.95%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20%가 15세 미만의 유소년이다.

경제

바하마는 시장경제체제이며 주로 관광과 국제재정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 국민총생산(GNP)이 인구성장률보다 휠씬 빨리 성장하고 있으며 1인당 GNP는 다른 선진국과 비슷하다.

농업은 GNP의 약 1/20에 불과하지만 노동력의 상당수가 여기에 종사한다. 토양은 척박한 편이며 국토의 약 1%만이 경작 가능하다. 정부에서 시도한 농업 생산증대책은 부분적으로만 성공을 거두었다. 식량은 주로 미국에 수입한다. 일조량이 많은 기후라서 토마토·파인애플·바나나·망고·번석류·사포딜라·가시여지·그레이프푸르트·모자반 등이 잘 자란다. 돼지·양·소 등 가축도 키우며 소규모 수산업으로 가재·그루퍼·고둥 등을 주로 잡는다. 광업은 소금과 시멘트 생산이 전부이다.

그랜드바하마 섬에는 석유집산지가 몇 군데 있다. 제조업은 럼주를 비롯한 주류, 시멘트, 제약(호르몬제 포함), 토마토, 파인애플 통조림, 냉동 바닷가재 생산에 집중되어 있다. 산업진흥법에 따라 제조업자들은 관세를 비롯한 각종 세제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전기는 모두 수입원료에 의존하고 있다. GNP의 약 2/3를 차지하는 관광업에는 노동력의 약 2/3가 종사한다. 뉴프로비던스 섬과 그랜드바하마 섬이 대표적인 관광지로 관광객의 대부분은 미국인이다. 수입세나 법인세가 없고 금전거래의 비밀이 보장되므로 수백 개의 은행과 신탁회사가 바하마에 몰려 있다.

정부는 주로 관광업과 대외무역에서 징수한 간접세를 이용해서 국가재정세출을 충당한다. 미국은 바하마의 주요 무역상대국으로 바하마산 몇몇 물품에 대해서는 일반 특혜제도를 적용해서 관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전체 수입품목의 1/3을 공급하며 그 대신 원유를 제공받는다. 주요 항구도시인 나소와 그랜드바하마 섬의 프리포트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나소(Nassau)
나소(Nassau)

정치와 사회

바하마는 영연방에 속한 독립국이자 민주주의 국가이다. 바하마의 공식적인 행정력은 1973년 헌법에 따라 영국 왕실에 귀속되어 있다. 바하마에 파견된 총독이 왕실을 대신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정치 권한은 하원에 있다. 하원은 최소한 5년에 1번씩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된 49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입법기관으로, 행정권을 갖는 총리를 임명한다.

하원보다 비중이 작은 입법기관은 상원으로, 의원 12명은 총리가 임명하고 4명은 하원의 제1야당 당수가 임명한다. 바하마가 독립한 후로 진보자유당(PLP)이 계속 집권해왔으며, 야당으로는 자유국민운동당이 있다. 사법부는 대법원과 항소법원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몇몇 상소는 영국 추밀원 사법위원회까지 보내어진다.

사회복지제도는 과부연금과 사회보조금을 비롯해 질병·임신·퇴직연금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실시되고 있다. 의사와 보건시설은 대부분 나소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구급 의사 서비스를 통해 상주의료원이 없는 섬에 의사가 간다. 그러나 대개 바하마인들은 비교적 질병이 없는 편이며 평균수명은 69세이다. 학교교육은 5∼14세까지 무상의무교육이며, 문맹률은 낮다.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외국으로 가거나 1974년에 설립된 2년제 바하마대학에서 공부한다. 일간지가 몇 개 있으며,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 국영 방송사에서 라디오국과 텔레비전국을 운영한다.

총독 관저(Government House)
총독 관저(Government House)

문화

바하마의 행사 중 대표적인 것은 12월 26일의 크리스마스 선물의 날과 새해 첫날에 벌어지는 '중카누'(Junkanoo) 퍼레이드이다. 이 행사에는 화려하게 꾸민 수백 명의 사람들이 큰길로 나와 방울을 흔들고 드럼을 치며 아프리카 리듬에 맞추어 행진하면서 춤을 춘다. 나소에서는 아마추어 합창단·연극단·무용단이 지방색이 뚜렷한 공연을 한다.

중카누(Junkanoo celebration)
중카누(Junkanoo celebration)

역사

바하마의 원주민은 루카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아라와크 인디언이다. 이들은 원래 남아메리카대륙에 살던 종족이었으나 일부가 카리브 인디언들 때문에 북쪽 카리브 해 쪽으로 쫓겨오면서 이곳에 정착했다. 이웃에 사는 카리브인들과는 달리 대부분 온건했으며, 농업보다는 주로 어업에 종사했고 식인풍습도 없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상륙한 곳은 바하마 제도의 산살바도르 섬(와틀링 섬이 라고도 함)이나 사마나 섬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스페인인들은 바하마에 정착하려고는 하지 않았으나 평화롭게 사는 아라와크 인디언들을 급습하여 노예로 삼았고 이에 따라 원주민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영국인이 왔을 때 이곳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1629년 영국의 찰스 1세가 바하마 제도를 국무장관 1명에게 하사했지만 이주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영제국). 1648년 윌리엄 사일은 영국인 청교도들을 이끌고 버뮤다 섬에서 일류서러 섬으로 건너갔다. 이 개척은 너무나 힘든 어려움에 부딪혀서 성공하지 못했으나 다른 버뮤다 이주민들이 계속 이곳으로 왔다. 뉴프로비던스섬에는 1656년 정착이 이루어졌다. 1670년경 바하마 제도는 앨버말 고아작과 5명의 귀족영주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 관심이 없었고, 정착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해적행위를 하며 생활했다. 1717년 다시 왕권에 귀속된 후 영국 왕실은 해적행위를 없애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국왕이 보낸 초대총독인 W. 로저스가 해적행위를 막는 데 성공했으나, 자신의 희생도 컸다. 영국에서 재정·군사 지원이 거의 없었으므로 빈곤한 상태에 있었고 스페인의 공격을 받기 쉬웠다.

1776년 미국 해군이 며칠 동안 점령했고 1782년부터 거의 1년 동안 스페인이 장악했다가, 1783년 영국으로 넘어갔다. 왕실 신하들과 이들이 소유한 노예들로 인구가 늘어났으나, 미국 독립전쟁이 끝나자 노예들은 미국으로 도망갔다. 한때 목화농장이 성공해 번영했으나 토양이 고갈되고 1834년 노예가 해방되자, 고질적인 가난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후 미국의 남북전쟁중 바하마에 밀항자들이 몰려들었던 1861∼65년과, 미국에서 금주법을 시행하던 때 바하마에서 밀조주 사업을 한 1920∼33년의 2차례에 걸쳐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가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관광업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지속적으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의 정치적 대표자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결성된 PLP가 1967년 정부를 구성했다. PLP는 인종차별을 종식시키고 바하마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1973년 독립을 이룩했다. 독립 후 바하마 정부는 아우트 섬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마약거래와 수많은 아이티 난민의 불법입국문제 등에 직면해 있다.

콜롬버스(Columbus)
콜롬버스(Columbus)

바하마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바하마는 1973년 7월 독립과 동시에 승인한 한국에 대해 등거리 외교정책을 펴면서 외교를 거절해왔으나 1985년 7월에 국교를 수립했다. 한국은 주도미니카 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으며 바하마는 1986년 2월에 주한 도미니카 공화국 대사관을 개설했다가 1989년 5월에 폐쇄했다. 1985년 10월에 핀들링 총리가 방한한 바 있으며 1985년 10월에 총리 린든 핀들링, 1986년 7월과 1988년 10월에 외무부장관 메이너드, 2002년 11월 노동부정무차관 존 캐리 의 방한 이후 장차관 고위인사가 방한했으며,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지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세계박람회 유치의 일환으로 2001년 11월에 유치위원장 정몽구, 2002년 8월에 특사 홍순영, 2016년 4월에  유일호 부총리가 방문했다.

한편 바하마는 북한과 1991년 5월에 국교를 수립했으며, 2001년 9월에 겸임공관인 주 가이아나 대사관을 폐쇄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바하마의 대한국 수출액은 4만 달러, 수입액은 67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예술품 및 수집품, 의류 및 부속품, 회화 및 데생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선박 및 수상 구조물, 탱커, 원자로 및 보일러 등이다. 1973년 6월에 한국인 기술자 108명이 정유 탱크 건설공사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한국은 바하마의 경제개발을 협력하기 위해 1991년부터 2011년까지 무상으로 75만 달러를 지원했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사증면제협정(1988년 9월), 조세정보교환협정 (2013년 9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3년 기준 바하마에는 재외동포가 없으며, 한국에는 2023년 기준 4명의 바하마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바하마와 조세정보교환협정 체결
바하마와 조세정보교환협정 체결

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도미니카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