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대공령

리투아니아 대공령

다른 표기 언어 Grand Duchy of Lithuania

요약 리투아니아 본토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서부를 포함한 국가.

리투아니아 대공령(Grand Duchy of Lithuania)
리투아니아 대공령(Grand Duchy of Lithuania)

14~16세기 동유럽에서 가장 세력이 큰 국가였다.

튜튼·리보니아 기사들의 원정에 위협을 받던 리투아니아의 여러 부족들은 민다우가스(1263 죽음)의 지도로 힘을 합쳤고 게디미나스치세 때(1316~41)에는 강력하고 단합된 대공작을 형성해 북동쪽으로는 드비나 강 상류 너머, 남동쪽으로는 드네프르 강, 남쪽으로는 프리페트 습지대까지 영토를 넓혔다(민다우가스). 게디미나스가 죽은 뒤 그의 두 아들이 뒤를 이었는데, 켕스투티스는 리투아니아 본토를 다스리면서 튜튼 기사단과 그들의 연합 세력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고 대공(大公)의 칭호를 갖고 있던 알기르다스는 부왕(父王)의 팽창 정책을 계승해 러시아와 타타르의 넓은 영토를 점령했으며 발트 해에서 흑해까지 세력을 넓혔다.

리투아니아인들은 그들이 정복한 러시아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군대·행정·법률·재정 체제를 러시아식(式)으로 개편하고 러시아 귀족들에게 그들 고유의 정교(正敎)와 특권, 지방행정권을 허용했다. 이들은 서쪽에 있던 여러 이웃 국가들과도 계속 관계를 유지했다. 1385년 호전적인 튜튼 기사단의 위협을 받자 요가일라 대공(1377~1434 재위)은 폴란드와 크레보 동맹을 맺어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이고 폴란드 여왕과 결혼해 폴란드 왕이 됨으로써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한 통치자 밑으로 연합시키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요가일라는 부아디수아프 2세 야기에우우오라는 폴란드식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후 리투아니아에서는 러시아 대신 폴란드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으나 리투아니아 대공령의 자치권은 계속 유지되었다. 요가일라의 사촌이자 이전에는 정적(政敵)이었던 비타우투스는 1392년 부왕(副王) 칭호를 얻어 그뒤 동쪽으로 우그라 강과 오카 강까지 영토를 넓히고 타타르와 동러시아의 정치 문제에 주도권을 행사했으며 리투아니아 대공령을 동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다(비타우투스). 비타우투스가 이끄는 리투아니아는 1410년 폴란드를 합병했고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튜튼 기사단을 격파했다.

그결과 리투아니아는 사모기티아 북서부를 손에 넣었고(1422) 튜튼 기사단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비타우투스가 죽은(1430) 뒤에도 리투아니아는 계속 자체 통치자를 갖고 있었는데, 이들은 명목상으로는 폴란드 왕에게 예속되어 있었으나 사실상 자치권을 유지했으며 동유럽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행동을 했다. 19세의 리투아니아 대공 카지미에슈가 폴란드 왕에 뽑힌(1447) 뒤 두 나라는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카지미에슈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보장해주기 위해, 자신을 대공으로 추대(1447)한 리투아니아의 보야르(대귀족)들에게 특허장을 내려 귀족들의 권리와 특권을 인준하고 소작농에 대한 광범위한 지배권을 부여함으로써 귀족의 정치적 세력을 높여주었다. 그뒤 대공의 권위는 떨어졌고 강력한 지도자를 잃은 리투아니아는 더이상 타타르족의 끊임없는 남부 영토 침략을 막을 수 없었다. 또한 리투아니아와 가까운 관계였던 노브고로트 공국, 트베르 공국은 각각 1479년과 1485년 모스크바 대공국에 합병당했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러시아에 있던 리투아니아 영토 중 1/3에 해당하는 땅을 빼앗았고(1499~1503), 1408년부터 리투아니아가 소유해왔던 스몰렌스크를 함락했다(1514). 16세기에 들어와 리투아니아는 농지(農地) 개혁을 단행하고 경제를 크게 발전시켰으며 강력하고 활기찬 국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대공국에 맞서 리보니아 전쟁(1558~83)을 치르는 동안 물자가 고갈되어 결국 폴란드에 도움을 청했으나 폴란드는 두 국가가 정식으로 통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통일에 대해 리투아니아인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투스(리투아니아 대공 1544~72 재위, 폴란드 왕 1548~72 재위)가 리투아니아 영토의 1/3(볼리니아·키예프·브라트슬라프·포들라시아)을 폴란드에 합병시키자 리투아니아인들은 루블린 합병의정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1569).

의정서의 조건에 따르면 리투아니아는 공식적으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일원으로서 폴란드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 엄연한 독립 국가였다.

그러나 사실상 리투아니아는 얼마 안 있어 새 연방에 예속되었다. 젠트리들은 폴란드의 관습과 언어를 받아들였으며 행정도 폴란드식으로 정비했고 폴란드의 정책을 따르게 되었다. 그나마 소작농들은 리투아니아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유지했으나 정치적으로 리투아니아는 1569년부터 18세기말까지 폴란드에 속했으며 18세기말 폴란드 분할 이후에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