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츨

리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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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22. 3. 25, 독일 베를린
사망 1889. 3. 20, 괴팅겐
국적 독일

요약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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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초기생애와 경력
  3. 저서들과 중요성
리츨(Albrecht Ritschl)
리츨(Albrecht Ritschl)

개요

성서와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현대 지식의 여러 측면들과 종합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종교적·윤리적 의미를 보여주었다.

그의 학문연구의 결과들 대부분은 3권으로 출판된 그의 대표적인 책 〈의인(義認)과 화해(和解)에 대한 그리스도교 교리 Die christliche Lehre von der Rechtfertigung und Versöhnung〉(1870~74)에 실려 있다.

초기생애와 경력

1822년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루터교 성직자였으며 리츨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평생 관심을 쏟은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가문 배경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교 신학수업을 좋은 성적으로 마쳤고, 지적인 면과 기질적인 면에서 그리고 그가 받은 교육에 힘입어 학자의 소양을 잘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책임감,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겸손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본대학(1839~41)과 할레대학(1841~43)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중에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신학 입장에서 점차 자유주의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는 부분적으로는 G. W. F. 헤겔의 철학이 리츨 세대에 끼친 영향 때문에 촉진되었다. 리츨은 학생시절에 고전신학 과목들을 공부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대한 교리, 보다 구체적으로는 속죄론(그리스도가 사람의 죄를 위해 죽었다는 교리)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헤겔뿐만 아니라 이마누엘 칸트(1724~1804)와 프로테스탄트 자유주의 신학의 창시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1768~1834) 같은 독일 철학자들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1843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그리스도교의 기원 및 초기 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재구성하는 주도적인 신학운동이었던 튀빙겐학파에 참여했다.

저서들과 중요성

1846~64년 본대학에서, 그뒤 죽을 때까지 괴팅겐대학에서 가르쳤다.

첫 작품이자 중요한 저서가 된 〈고대 가톨릭 교회의 기원 Die Entstehung der altkatholischen Kirche〉(1850, 제2판 1857)에는 초기에 튀빙겐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가 점점 그것과 멀어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튀빙겐 학파가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를 분석하는 데 헤겔의 전제들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보았다. 리츨은 그리스도교를 해석하면서 성서, 교회의 전체 역사 및 신학, 그리고 특별히 마르틴 루터의 신학과 종교개혁의 신앙고백들, 나아가 칸트의 철학 방법론과 윤리학,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을 한데 결합했다.

결국 그의 모든 연구는 주요저서 〈의인과 화해에 대한 그리스도교교리〉에서 완성되는데, 이 책은 역사와 성서의 자료들(1~2권) 및 리츨 자신의 재구성(3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리츨은 그리스도교를 2개의 중심을 지닌 타원(楕圓)으로 묘사했는데, 하나는 예수의 삶과 죽음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화해이며, 또 하나는 하느님의 모든 행위가 지향하는 목표인 하느님 나라이다.

리츨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하느님 나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개신교가 이를 소홀히 하는 데 대해 비판했다.

그는 세상을 부정하는 관점에서 개인의 영적 경건을 강조한 프로테스탄트 경건주의에 반대하면서 개인이나 공동의 삶 속에서의 인간의 윤리적인 발전을 설득력있게 주장했다. 그는 죄사함(義認:의롭다 함)이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기둥이라면 의롭다 함의 실천적인 결과들과 관련되는 화해는 윤리적 기둥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일단 죄사함을 받았다면 개인적·사회적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해 새로운 삶을 이루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하느님 나라(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으로 연합되는 나라)의 형성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했다.

리츨은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나 비평가들에게 칭찬과 비판을 함께 받았다. 의인(義認)이나 은총과 같은 종교개혁 원칙들을 다시금 강조한 20세기의 주요 개신교 운동인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는 리츨을 문화적 그리스도교의 옹호자, 즉 그리스도교를 당시 문화의 규범들과 동일시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19세기 신학에 대한 오늘날의 재평가에서는 그리스도교와 하느님 나라, 그리고 그것들이 인간의 개인적·공동체적 삶에 대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리츨의 해석을 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