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치

루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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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5. 4. 13,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망 1971. 6. 4, 부다페스트
국적 헝가리

요약 루카치는 문학, 미학 분야에서 수많은 저술 활동을 펼쳤다. <역사와 계급의식>은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로서 그의 명성을 확립한 저작으로, 마르크스주의에서 변증법적 측면 등을 강조하며, 계급의식이나 소외의 본질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등 마르크스주의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 1930년대는 루카치가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을 가장 다채롭게 전개한 시기로, 이후 그의 문학이론은 ‘문학은 인간의 의식을 통한 현실의 반영’이라는 기초 위에서 전개되었다.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은행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1902년 혁명적 사회주의학생동맹에 참가하고 문필활동을 시작했다. 1918년 헝가리 공산당에 입당하여, 교육인민위원, 제5적군사단의 정치위원을 역임했으나 혁명정권이 붕괴되자 빈으로 망명했다. 1920년대에는 정치활동을 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심화했다. 독일, 소련을 거쳐 1945년 부다페스트로 돌아와 임시국민의회 의원, 부다페스트대학 교수, 세계평의회 평의원이 되었다.

루카치(György Lukács)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년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은행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1902년 혁명적 사회주의학생동맹에 참가하고 문필활동도 시작했으며 1904년에는 새로운 연극운동인 타리아 협회의 설립에 참가했다. 1908년 〈근대연극발달사 A modern dráma fejlödésének története〉(1911)로 키슈파르디 협회(19세기초의 작가 키슈파르디를 기념하기 위한 문예협회)의 상을 받았다. 1909년에 베를린대학에 유학했고 1917년까지는 주로 독일에, 그리고 이탈리아 등지에 머물렀다.

그동안 〈혼(魂)과 형식 A lélek és a formák〉(1910)의 독일어역 증보판 〈Die Seele und die Formen〉(1911)을 출판하고, 1916년에 〈소설의 이론 Die Theorie des Romans:Eingeschichtsphilosophischer Versuch über die Formen der großen Epik〉(1920)을 잡지에 발표했다.

1918년 12월 헝가리 공산당에 입당하여, 이듬해 3월 헝가리 혁명으로 쿤 벨라(1886~1939)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평의회정부가 성립되자 교육인민위원, 제5적군사단의 정치위원을 역임했다.

한편 사적(史的) 유물론연구소를 부다페스트에 설립했다. 그러나 월말에 혁명정권은 붕괴되어버리고 9월에 빈으로 망명했다. 1920년대에 루카치는 정치활동을 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심화했다. 〈역사와 계급의식 Geschichte und Klassenbewußtsein:Studien über marxistische Dialektik〉(1923)과 〈부룸 테제 Blum-Thesen〉(〈헝가리의 정치적·경제적 상태와 헝가리 공산당의 과제에 관한 테제〉(1928)의 약칭, 부룸은 루카치의 필명)는 그 과정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동안 〈레닌 Lenin : Studie über den Zusammenhang seiner Gedanken〉(1924)을 간행, 코민테른으로부터 전자는 좌익편향(1924), 후자는 우익편향(1929)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형식적인 자아비판을 하고 정치활동에서 물러나 1929년말 모스크바로 가서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원이 되었고 주로 문학사와 문예이론 면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31년 베를린으로 가서 독일작가 방위동맹 베를린 지구 부의장을 역임함과 더불어 프롤레타리아혁명 작가동맹에 참가하여 기관지인 〈좌곡선(左曲線) Die Linkskurve〉에 그의 이론을 펼쳤다. 1933년 이후 소련에 있으면서 소비에트 과학 아카데미의 철학연구소에서 연구하고 〈국제문학 Internationale Literatur〉·〈문예비평가 Literaturnij Kritik〉·〈언어 Das Wort〉·〈새로운 목소리 Uj Hang〉 등 잡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을 발전시켰다.

1945년 8월 부다페스트로 돌아와 임시국민의회 의원, 1946년 부다페스트대학 교수(미학 및 문화철학), 1948년 세계평의회 평의원이 되었다.

또한 적극적인 저술활동을 펼쳐 〈문학과 민주주의 Irodalom és demokrácia〉(1947)는 부르주아 문학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전후에 걸친 많은 저작은 〈괴테와 그 시대 Goethe und seine Zeit〉(1947)·〈실존주의인가 마르크스주의인가? Existentialisme ou marxisme?〉(1948)·〈젊은 헤겔 DDer junge Hegel〉(1948)·〈세계문학에서 러시아 리얼리즘 Der russische Realismus in der Weltliteratur〉(1949)·〈발자크와 프랑스 리얼리즘 Balzac und der französische Realismus〉(1952)·〈독일문학 소사(小史) Skizze einer Geschichte der neueren deutschen Literatur〉(1953)·〈이성의 파괴 Die Zerstörung der Vernunft〉(1954)·〈역사소설론 Der historische Roman〉(1955)·〈리얼리즘의 제문제 Probleme des Realismus〉(1955) 등 수많은 저서로 정리되었다.

만 70세를 맞은 1955년에 코슈트 대상(헝가리 독립전쟁의 지도자 코슈트 로요슈를 기념하기 위한 국가상)을 받았다. 1956년 10월 헝가리 동란 때에 나지 이무레 정권의 인민교육부장관이 되었으나, 동란 후 루마니아에 억류되었다. 동구권에서 격렬히 비판받아 동독에서 그의 책을 낼 수 없어 〈미학 제1부 Ästhetik Teil〉인 〈미적(美的)인 것의 특성 Die Eigenart des Ästhetischen〉(1963)이 서독에서 출판되었다.

1957년 부다페스트로 귀국을 허가받아 돌아온 뒤로 미학·존재론·윤리학 등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 Zur Ontologie des gesellschaftlichen Seins〉·〈윤리학 Ethik〉을 유고집으로 남긴 채 1971년 6월 4일 부다페스트에서 죽었다.

루카치는 청년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사상적으로 커다란 변모를 겪었다. 〈혼과 형식〉까지의 루카치는 주로 신칸트파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문학사회학과 신비적 주관주의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소설의 이론〉의 루카치는 헤겔의 강한 영향 아래 있었으며 이 글에는 좌익적 윤리감이 흐르고 있어 그것이 그를 〈역사와 계급의식〉의 단계로 이끌어갔다.

〈역사와 계급의식〉은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로서 그의 명성을 확립한 저작이고, 마르크스주의 전체의 운동과 발전 속에서 '전체성'의 범주나 마르크스주의에서 변증법적 측면 등을 강조하며, 또한 계급의식이나 소외의 본질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등 경제적 객관주의를 지나 마르크스주의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 또한 〈부룸 테제〉는 비합법 헝가리 공산당 제2회 대회의 정치보고 초안으로 씌어진 것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직접적인 이행이 아니라 과도적 형태로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적 독재'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 견해를 기조로 해서 루카치는 그후의 사상을 확립했다고 볼 수 있다.

1930년대는 루카치가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을 가장 다채롭게 전개한 시기로, 이후 그의 문학이론은 문학은 '인간의 의식을 통한 현실의 반영'이라는 기초 위에서 다음 2가지 점을 주요특징으로 하고 있다.

첫번째는 뛰어난 문학은 어떠한 문학인가라는 문제를 논하는 리얼리즘논이다. 리얼리즘이 특히 자연주의와 대비되고 자연주의에서는 개개의 현상이 사진처럼 상세히 기술(記述)되나 그에 따른 모든 관계는 묘사되지 않는 것에 비해서, 리얼리즘에서는 개개의 현상을 통해서 사회적 역사적 본질이 이른바 '현상과 본질과의 변증법' 아래 묘사된다고 한다.

2번째는 형식의 문제에 관한 언급이다. 문학작품에서 전체와 세부의 관계, 문학장르의 문제 등이 사회적 역사적 현실의 기초위에서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으로 논해졌다. 그리고 전체성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장편소설을 중시하며 괴테, 발자크, 톨스토이, 고리키, 토마스 만, 숄로호프 등을 높이 평가한다. 가치판단의 기준으로서 문학은 사회주의문학인가 부르주아 문학인가보다는 리얼리즘·자연주의·낭만주의·형식주의인가라는 관점이 강하고, 또한 사상면에서는 유물론인가 관념론인가보다는 변증법인가 비변증법인가 또는 합리주의인가 비합리주의인가라는 관점이 강하다.

헝가리 동란 후 루카치는 정치적으로는 평화공존을 주장하며 스탈린을 비판했다.

또한 문학에서는 이전부터 표현주의나 전위예술 등을 비판해왔는데 이와 함께 혁명적 낭만주의도 비판했다. 〈미적인 것의 특성〉은 현실의 미적 반영과 과학적 반영을 대비시키면서 마르크스주의 미학의 기초를 구축하고자 한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