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바르드족

롬바르드족

다른 표기 언어 Lombard 동의어 롱고바르드족, Longobards, 랑고바르드족, Langobards

요약 목축생활을 하면서 정착지를 찾아다니던 롬바르드족은 4세기에 남쪽으로 대이동했으며, 5세기말에는 도나우 강 북쪽으로 옮겨갔다. 568년 봄, 줄리안알프스 산을 넘은 롬바르드족은 별 저항을 받지 않고 이탈리아를 손에 넣었다. 새 왕조의 2번째 왕 리우트프란트(712~744 재위)는 롬바르드 왕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었다. 726년까지는 내정에만 관심을 기울인 듯하나, 그뒤로 이탈리아 반도의 비잔틴 영토를 꾸준히 정복했다. 그의 왕궁에서 쓰인 동전과 서류들을 보면, 그가 강하고 유능한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그뒤의 왕들인 아이스툴프와 데시데리우스가 교황령으로 쳐들어갔다 패배함으로써 롬바르드의 이탈리아 통치는 끝났다. 독립 롬바르드 왕국은 망했지만, 그들은 예술·언어·법률 분야에서 많은 전통과 업적을 남겼다.

롬바르드족(Lombard)
롬바르드족(Lombard)

롬바르드족은 게르만 민족인 수에비족에 속해 있었으며, AD 1세기에는 북서 독일에 주로 살았다. 가끔 로마인이나 다른 이웃 종족과 싸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목축생활을 하면서 정착지를 찾아다녔고, 4세기에는 남쪽으로 대이동을 했으며, 5세기말에는 도나우 강 북쪽인 지금의 오스트리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옮겨갔다.

546년에 아우도인이 왕이 되어 새로운 롬바르드 왕조를 열었다. 이때 롬바르드족은 자신들의 부족 조직과 제도를 제국군대체계로 바꿔, 친척과 혈족을 바탕으로 조직한 군대를 공작·백작 등의 귀족계급이 지휘했다. 20년이 넘도록 롬바르드족은 게피다이족과 가끔 전쟁을 벌였으며 결국 아우도인의 후계자 알보인은 게피다이를 멸망시켰다(567경). 이무렵 롬바르드족은 이탈리아로 옮겨가기로 결정했는데, 이탈리아는 비잔틴 군대가 이곳의 동고트 왕국을 무너뜨린 뒤 거의 무방비상태였다. 568년 봄, 줄리안알프스 산을 넘은 롬바르드족은 별 저항을 받지 않고 이탈리아 북부를 손에 넣었다.

569년 말에는 파비아를 제외한 북쪽의 모든 주요도시를 정복했고, 이탈리아 반도 중부와 남부지대를 점령했으며 572년에는 파비아도 함락했다. 그러나 그해에 알보인은 살해당했고, 그뒤를 이은 클레프는 이탈리아인 토지소유자들을 무자비하게 다루면서 18개월간 이탈리아를 통치했다. 클레프가 죽은 뒤 롬바르드족은 왕위계승자를 뽑지 않고, 대신 공작들이 그뒤 10년 동안 특정 도시영지에서 권력을 행사했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를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통치시대로 보았다.

584년 프랑크족의 침입으로 위협을 느낀 공작들은 클레프의 아들 아우타리를 왕으로 삼았다. 아우타리가 왕이 되었을 때, 공작들은 왕실의 생활 유지를 위해 영지의 반을 바쳤고 왕궁이 있던 파비아는 행정조직의 중심이 되었다. 아리우스파였던 롬바르드족은 7세기 후반에 정통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야만적인 아리페르트 2세(700~712 재위) 이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으며, 새 왕조의 2번째 왕 리우트프란트(712~744 재위)는 롬바르드 왕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었다. 726년까지는 내정에만 관심을 기울인 듯하나, 그뒤로는 이탈리아 반도의 비잔틴 영토를 꾸준히 정복했다. 그의 왕궁에서 쓰인 동전과 서류들을 보면, 그는 강하고 유능한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그뒤의 왕들인 아이스툴프(749~756 재위)와 데시데리우스(756~774 재위)가 교황령으로 쳐들어갔을 때 교황 하드리아노 1세는 프랑크 왕 샤를마뉴에게 도움을 구했다. 프랑크족은 773년 이탈리아로 쳐들어와 파비아를 1년 동안 포위한 뒤 함락했다. 데시데리우스는 사로잡혔고 샤를마뉴는 프랑크와 롬바르드의 왕을 겸하게 되어, 롬바르드의 이탈리아 통치는 끝났다. 독립 롬바르드 왕국은 망했지만, 그들은 예술·언어·법률 분야에서 많은 전통과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