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족

프랑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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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프랑크족은 지금의 북프랑스, 벨기에, 독일 서부 지역에서 다수를 점했었고, 중세초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그리스도교 국가를 건립했다. 프랑스라는 국명도 이 부족명에서 유래했다.
3세기경 라인 강 동안의 저지에 거주하면서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영토를 놓고 벌인 로마와의 장기적인 투쟁의 와중에서 프랑크족은 점차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5세기 초 현재의 벨기에에 대한 지배를 강화했으며 라인 강 중류 바로 서쪽의 땅을 항구적으로 차지하고 현재의 북동프랑스 지역까지 진출했다. 세일리족 지배자 클로비스는 494년경 갈리아 북부 전역을 복속시키고 프랑크족을 통일했다. 클로비스 이후 메로빙거 왕조는 라인 강 동쪽까지 세력을 확장했으나 8세기경 카롤링거 왕조에 의해 해체되었다.

지금의 북프랑스, 벨기에, 독일 서부 지역에서 다수를 점했었고, 중세초 서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그리스도교 국가를 건립했다.

프랑스(프랑키아)라는 국명도 이 부족명에서 유래했다.

프랑크족은 3세기경 라인 강 동안의 저지에 거주하면서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은 세일리·리푸아리·헤센 등 세 집단으로 나누어졌다(카티족). 이 세 집단은 언어적·문화적으로 상호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이었다.

3세기 중반 프랑크족은 라인 강 너머 로마 지배하의 갈리아로 영토를 확장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4세기 중반 프랑크족이 다시 한번 갈리아를 침략하자 358년경 로마는 현재의 벨기에 영토에 속하는 뫼즈 강과 스헬데 강 사이의 지역을 세일리족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장기적인 투쟁의 와중에서 프랑크족은 점차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일부 프랑크족 지도자들은 로마 국경선을 지키는 로마의 동맹군(포이데라티)이 되었고, 많은 프랑크족이 로마의 외인부대에서 복무했다.

406년 반달족이 갈리아를 대대적으로 침공했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프랑크족은 로마의 수비력이 탈진한 틈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었다.

이들은 현재의 벨기에에 대한 지배를 강화했으며 라인 강 중류 바로 서쪽의 땅을 항구적으로 차지하고 현재의 북동프랑스 지역까지 진출했다. 480년 무렵 프랑크족이 북동 갈리아에서 견고히 기반을 잡은 것은 로마의 옛 속주 게르마니아와 벨기에의 옛 속주 2개 중 일부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지역들에 거주하던 소수의 갈리아계 로마인이 게르만족 이주민들 속에 흡수되었으며, 라틴어도 더이상 일상어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이때 프랑크족이 정착한 지역의 한계선은 현재 프랑스와 남부 벨기에의 로망스어를 쓰는 주민과 북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의 게르만어를 쓰는 주민을 가르는 언어분계선과 일치한다.

481(또는 482)년 클로비스는 아버지 힐데리크의 뒤를 이어 투르네의 세일리족 지배자가 되었다. 이후 몇 년 동안 클로비스는 다른 세일리족 및 리푸아리족을 정복했으며, 로마 제국의 해체를 틈타 일련의 공격을 가해 494년경 갈리아 북부 전역을 복속시키고 프랑크족을 통일했다.

그는 알라만족이 라인 강 동쪽에서부터 갈리아로 이주하는 것을 저지했고, 507년 남진해 갈리아 남부의 서고트족의 왕국을 복속시켰다. 이로써 갈리아 북부의 통일 프랑크 왕국의 지위가 굳건해졌다. 클로비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프랑크족에 의해 정통 가톨릭이 대대적으로 받아들여지자 단일 민족으로의 통합이 수월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 대부분의 게르만족이 이단인 아리우스주의를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크족은 가톨릭 성직자들과 갈리아에 잔존한 로마인들의 지원도 얻게 되었다.

클로비스는 그의 할아버지의 이름인 메로비치를 따서 명명된 메로빙거 왕조에 속했다. 클로비스 이후 메로빙거 왕조는 라인 강 동쪽까지 세력을 확장했으나 8세기경 카롤링거 왕조에 의해 해체되었다.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마뉴(768~814 재위)는 교황과 협력해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독일 북부와 중부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했다.

그의 제국은 9세기 중반 해체되었으나, 그뒤 몇 세기 동안 서프랑크 왕국(프랑스)의 사람들은 프랑크적인 요소가 이 지역의 원주민들 속에 흡수되어 사라졌는데도 스스로를 계속 프랑크족으로 칭했다. 독일에서는 라인란트에서 동쪽으로 마인 강 유역까지 걸쳐 있는 공국 프랑켄에 프랑크라는 명칭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