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표기 언어 Albrecht Theodor Emil von R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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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03. 4. 30, 포메른 콜베르크(지금의 폴란드 코우오브제크) 근처 플로이샤겐
사망 1879. 2. 23, 베를린
국적 프로이센

요약 프로이센의 장교.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와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과 함께 독일제국을 일으키고 독일을 유럽 대륙에서 중요한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프로이센 육군장교였던 론의 아버지는 1806년 프로이센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참패해 프랑스에 점령당한 기간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론은 주로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821년에 장교로 임관해 1824~27년에 베를린 군사학교에서 복무했다.

1832년에 크레펠트에 있는 군단 사령부에 배속된 뒤 프로이센 육군의 비효율성과 개편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3권으로 출판한 〈지리학, 민족학 및 정치학의 원리 Grundzüge der Erd-, Völker-und Staatenkunde〉(1832)는 프로이센과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읽혔다. 론이 프로이센 군부에서 세력을 얻기 시작한 것은 1848년 혁명 때 빌헬름 황태자(나중에 황제 빌헬름 1세)를 도와 바덴 봉기를 진압한 뒤였다. 1850년 소장이 되었고 1859년에는 중장으로 진급해 육군장관 겸 군사 개편위원회 위원을 맡았으며 1861년 해군장관에 임명되었다.

육군장관 시절 프로이센 군을 개편해 1866년과 1870~71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는 데 이바지했다. 군사개편위원회에 있던 그는 군사내각의 수반 에트빈 폰 만토이펠 장군과 참모장 몰트케의 도움을 받아 군사개편안을 채택시켰다. 그의 목표는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의 체제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즉 복무기간 3년의 개병제(皆兵制)와 군대가 실전에 참여하는 동안 후방에서 국토를 방어할 상설 예비군(란트베르)을 창설함으로써 '국민보위국' 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이러한 군사개혁 때문에 그는 프로이센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오스트리아와의 7주전쟁(1866) 때 프로이센군은 신속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개편된 군대의 가치를 입증했다. 그뒤 그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드러난 군대의 약점을 보완했고, 독일은 1871년에 프랑스를 무찌름으로써 유럽의 강대국으로 등장했다. 1871년 백작이 된 론은 비스마르크의 뒤를 이어 그해 12월 프로이센 총리가 되었지만 이듬해 건강 때문에 사임했다. 야전 군인이라기보다는 노련한 군사 행정가였던 그는 '왕의 중사(中士)'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다. 그의 정적들은 그를 '악당 론'이라 불렀다(→ 민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