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커스터

랭커스터

다른 표기 언어 Edmund, 1st earl of Lancaster 동의어 Crouch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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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245. 1. 16
사망 1296. 6. 5경, 프랑스 바욘
국적 잉글랜드, 영국

요약 잉글랜드 왕 헨리 3세와 왕비 프로방스의 엘리너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살아남은 아들 중에서는 둘째).
별칭은 Crouchback.

랭커스터 가문을 창시했다. 그가 10세 되던 때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는 시칠리아를 놓고 신성 로마 황제와 다투던 중 그 섬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기 위해 에드먼드를 시칠리아 왕에 임명했다(1255. 4). 그러나 그는 이름뿐인 부재 국왕이었고 1258년 12월 교황 알렉산데르 4세는 그의 왕위를 취소했다.

1265년 레스터 백작위를 받았고 2년 뒤 랭커스터 백작이 되었다. 1271~72년에는 형인 에드워드 경(卿)을 따라 십자군에 참가했고 형이 에드워드 1세로 왕위에 오른 뒤 그에게 충성했다.

첫번째 아내가 죽고 2년 뒤인 1275년 나바라와 샹파뉴를 다스리던 앙리 3세의 미망인 아르투아의 블랜치와 결혼해 샹파뉴와 브리의 '팔라틴 백작'(왕권과 동등한 권한을 갖는 백작)이 되었다. 잉글랜드의 왕이 가스코뉴를 불법으로 몰수했다고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의 법정이 선언하자 프랑스 왕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고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1296년 가스코뉴의 부왕으로 임명되었으나 그해에 죽었고, 잉글랜드에 있는 모든 재산을 아들 토머스에게 물려주었다. 그의 별명은 '십자군'(Crossback)이었으나 뒤에 '곱사등이'(Crouchback)로 바뀌었다.

이것은 아마 그의 직계 후손인 헨리 4세가 1399년에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면서 랭커스터 백작 에드먼드가 원래 헨리 3세의 큰아들이었으나 곱사등이였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의도적으로 바꾼 듯하다.